민물장어(뱀장어) 양식장에 ‘장수하는’ 장어들이 많아졌다. 식탁에 올라갈 만큼 크고 통통하게 자랐는데도 먹을 사람이 없어 수조에서 나오지 못하는 장어들이다. 출하 가능하지만 수조에 남아 있는 장어 수를 뜻하는 ‘1년 이상 양성물량’은 지난 2월 기준 1억609만마리. 한국해양수산개발원에 따르면 지난해보다 42.9%, 평년보다는 27.4% 많다. 보양식으로 인기가 높던, “비싸서 못 먹는다던” 장어 시장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롯데쇼핑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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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가격 급락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수산업관측센터에 따르면 지난 2월 기준 극동산 민물장어 도매가는 ㎏당 3마리 기준으로 2만4700원이다. 4만6000원이었던 1년 전보다 39.2% 하락했다. 최근 5년 내 최저가다.

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며 장어 전문점, 일식 전문점 등 외식 수요가 급감한 영향이다. 양승욱 롯데마트 수산물 MD(상품기획자)는 “본래 장어 출하량의 80~90%는 식당, 10~20%가 마트에서 판매되는데 지난해 사람들이 외식을 꺼리며 식당 물량이 확 줄었다”며 “대형마트가 정부 부처와 협업해 물량을 일부 소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형마트는 최근 잇따라 장어 할인행사를 열고 있다. 롯데마트는 지난 28일까지 밀양 민물장어 6t을 할인 판매했다. 손질된 장어 600g에 3만9800원짜리를 2만4800원으로 38% 할인했다. 이마트는 지난 3월 해양수산부와 협업해 장어를 반값에 팔았다.

○“내년 가격 급등할 것”
올해는 코로나19가 영향을 미쳤지만 장어는 본래 가격 변동폭이 크다. 매년 30~50%씩 오르내렸다. 부화부터 출하까지 전 과정을 통제하는 ‘완전양식’이 불가능한 수산물이기 때문이다. 국내외 연구시설에서 장어 인공부화를 시킨 사례는 있지만 산업화는 아직 성공하지 못했다.

한국 등의 강에서 사는 장어는 산란할 때가 되면 북태평양 마리아나 해구로 헤엄쳐 가 알을 낳는다. 정확한 위치는 베일에 싸여 있다. 알에서 나온 치어들은 해류를 따라 이동하며 강으로 올라와 자란다. 필리핀, 한국 등의 어부들은 해류가 지나는 길목에서 기다리다 치어들을 잡는다.

장어 양식업체들은 이렇게 잡힌 0.2~3g짜리 치어들을 수조에 넣는 ‘입식’ 과정을 거치고, 1년~1년 6개월 간 250~500g 짜리 장어로 키워내 음식점과 마트에 보낸다. 즉 한 해 치어 입식량이 이듬해 장어 공급량으로 직결된다. 그러나 그해 태어나는 장어 수는 통제도 예측도 할 수 없다. 자연적인 이유로 치어 수가 줄거나, 해류 방향이 바뀌어 치어를 조금밖에 못 잡으면 물량이 급감한다.

실제로 업계에서는 내년 장어 가격이 올해보다 훨씬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올해 치어를 많이 못 잡아서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에 따르면 지난해 12월부터 지난 2월까지의 치어 입식량은 3292㎏이다. 전년 같은 기간(4605㎏)보다 28.5% 적다. 업계의 연간 치어 입식량 전망치는 최대 4500㎏으로 지난해 입식량(7974kg)을 40% 이상 밑돈다. 한 장어양식장 관계자는 “보양식 시즌인 여름이 되면 장어 가격이 급등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장어 가격 변동성 잡기 나선 롯데

경남 밀양의 장어양식장 '밀양정산양만'에서 직원이 장어를 들어올리고 있다. 롯데쇼핑 제공
경남 밀양의 장어양식장 '밀양정산양만'에서 직원이 장어를 들어올리고 있다. 롯데쇼핑 제공
“머리카락처럼 가느다란 치어(실뱀장어)도 1년만 있으면 팔뚝만큼 통통하게 자랍니다.”

지난 22일 방문한 경남 밀양의 장어양식장 ‘밀양정산양만’. 윤기가 흐르는 검은색 장어들이 크기별로 분류된 수조 안에서 구불구불 헤엄쳤다. 롯데마트 행사에 맞춰 출하될 장어들이었다.

장어들을 기르는 양식장은 대낮에도 깜깜했다. 야행성인 장어의 습성에 맞췄다. 수온도 장어의 활동성이 높은 26~27도로 유지한다. 지렁이같이 생긴 3~5㎝ 길이 치어(실뱀장어)부터 50~60㎝ 길이의 장성한 장어들이 크기별로 64개 수조에 차 있었다. 임중률 밀양정산양만 대표는 “절반 이상이 ‘계약양식’되는 장어들로 올해와 내년에 출하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롯데마트는 지난해 4월 롯데상사, 밀양정산양만과 민물장어 지정양식장을 운영하는 3자 협약을 맺었다. 매년 롯데마트와 롯데상사가 협의해 필리핀에서 치어를 수입하고, 양식업체가 키워내 고정된 가격에 롯데마트로 출하하기로 했다. 올해 초에 롯데상사가 수입한 160㎏의 치어들은 내년 4800㎏의 장어로 자랄 예정이다.

계약양식은 모두에 ‘윈윈’이다. 롯데마트는 공급량이 일정한 만큼 장어를 시세에 관계없이 저렴하게 판매할 수 있다. 내년처럼 장어 값이 오르면 경쟁력이 커진다. 코로나19로 식당에 가는 대신 마트에서 손질된 장어를 사다 구워먹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올 들어 지난 29일까지 롯데마트 장어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423.4% 늘었다.

양식업체는 안정적으로 양식장을 운영할 수 있다. 장어 양식업에서는 장어가 성장하는 기간이 긴 만큼 자금 회전이 쉽지 않다. 그러나 계약양식을 하면 롯데상사가 장어를 기르는 데 필요한 비용을 대 준다. 결과적으로는 저렴하게 장어를 구매하는 소비자도 이득이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대형마트가 농산물을 계약재배하는 경우는 많지만 수산은 장어, 전복 등 일부 수산물에 한정된다”며 “밀양 지정양식장처럼 3사 협력은 롯데만의 시도”라고 말했다.

밀양=노유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