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농단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8일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에 참석하고 있다. 2021.1.18. / 강은구기자 egkang@hankyung.com
국정농단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8일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에 참석하고 있다. 2021.1.18. / 강은구기자 egkang@hankyung.com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패권 경쟁이 격화하면서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사면 요구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가운데 정부와 여당 내에선 부정적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어서 단순히 경제적 측면에서만 볼 수 없다는 시각이다.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면론과 관련 "이 문제는 (국정농단 사건으로 수감 중인) 박근혜 전 대통령과도 연결돼 있다"며 "사면 문제를 경제 영역으로만 판단할 사항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대통령이 가진 사면권은 최소화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도 "엄정한 법 집행을 담당하는 법무부 장관으로서는 (이재용 사면을) 고려한 바 없다"고 밝혔다.

앞서 청와대는 지난 27일 경제 5단체가 이재용 부회장의 사면을 공식 건의한 데 대해 "이 부회장의 사면 건의와 관련해 검토한 바 없으며, 현재로서는 검토할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도 지난 21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이재용 부회장 사면 가능성에 대해 "특별사면은 국민적 공감대가 없으면 쉽지 않다"며 공감대가 마련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지난 27일 대한상공회의소, 경총, 중소기업중앙회, 한국무역협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5단체 명의로 이재용 부회장의 사면 건의서를 제출했다.

이들 단체는 "치열해지는 반도체 산업 경쟁 속에서 경영을 진두지휘해야 할 총수 부재로 과감한 투자와 결단이 늦어진다면 그동안 쌓아 올린 세계 1위의 지위를 하루아침에 잃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들 단체는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정부와 기업이 손을 잡고 글로벌 산업의 주도권을 갖기 위해 함께 나아가야 할 중요한 시기"라면서 "과감한 사업적 판단을 위해선 기업 총수 역할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고 했다.

이 부회장에 대한 사면 건의는 재계를 넘어 종교계, 기타 단체 등으로 이어지는 상황이다. 대한불교조계종 25개 교구 본사 주지들은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서를 정부에 제출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박병석 국회의장, 정세균 당시 국무총리 등에 보낸 탄원서에는 "이 부회장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시길 부탁드린다"는 내용이 담겼다.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 출신인 양향자 민주당 의원도 "반도체 전쟁 속에서 정부는 부처별로 정책이 분산되고, 전쟁터에 나간 우리 대표기업은 진두지휘할 리더 없이 싸우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오규석 부산 기장군수는 지난 2월에 이어 이달 15일에도 이 부회장 사면을 요청하는 호소문을 청와대로 보냈다.

국내 최대 노인단체인 대한노인회도 최근 "전세계 반도체 경쟁에 대비하고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백신 확보 등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특별사면을 건의했다.

하지만 참여연대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등 시민단체들은 지난 28일 공동성명에서 "이 부회장 사면 논의는 사면 제도의 취지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우리 사법제도와 경제범죄에 대한 원칙을 뒤흔들 수 있는 만큼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들 단체는 "국정농단 범죄 사면은 국민적 공감대가 필요한 정치적 사안이 아닐뿐더러 우리 경제와 삼성그룹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라며 "사익을 위해 삼성그룹과 국민연금에 손해를 입히고 정권 실세에 불법 로비를 한 중범죄자에게 사면은 어불성설"이라고 했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반도체는 시간과의 싸움이 중요하다는 경제적 논리와 삼성전자는 이미 이 부회장이 아닌, 전문 경영인 시스템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아무 문제 없다는 입장이 맞고 있다"며 "김부겸 국무총리 후보자와 이철희 청와대 신임 정무수석이 쓴소리를 듣고 민심을 대통령께 잘 전달하겠다고 밝힌 만큼 청와대의 고심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강경주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