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 폭등해도 조사할 규정·주체조차 없는 '사각지대'
당국 "국제사회 논의 지켜봐야"…美·日 이미 상장·공시 등 최소규정 마련

금융팀 = 최근 한 코인(가상화폐)은 거래소에 상장돼 거래를 시작한 지 불과 30분 만에 가격이 50원에서 5만원대로 10만% 넘게 뛰었다.

주식이었다면 당장 '이상 거래'로 지목돼 상장 시초 가격이 적정했는지, 상장 전 주식 배분에 의심되는 정황은 없는지 조사가 이뤄질 사안이지만 국내 가상화폐 시장에서는 '모든 일이 가능하다'는 듯 아무 조사나 제재도 없다.

현재 관련 법규가 거의 없는 상태라 사실상 가상화폐 발행 주체인 코인 재단이 가격과 배분, 공시를 마음대로 정하고 정부 대신 수익을 추구하는 개별 거래소가 각각 다른 기준으로 최소한의 검증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상화폐의 거래소 등록과 공시 등에 관한 정부 차원의 법과 제도 정비를 촉구하는 목소리에 금융당국은 "내용을 보고 있지만 논의가 더 필요하다.

국제적 논의 상황도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코인광풍] ③상장가격·분배·공시 '맘대로'…거래소 자체검증 한계

◇ 각 거래소가 심의 거쳐 코인 상장…기준 '각각'
25일 가상화폐 업계에 따르면 특정 코인을 일반인들이 매매할 수 있도록 거래소에 상장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거래소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특정 코인을 만든 '코인 재단'이 거래소에 상장을 신청하면 거래소는 자체 심의위원회를 통해 코인 프로젝트(사업)의 사업성, 재단의 재무 투명성 등을 확인한 뒤 상장 여부를 결정한다.

예를 들어 거래소 빗썸의 경우 우선 상장 지원서를 받는데, 상장 지원서에는 프로젝트 백서(사업계획서), 기술검토 보고서, 토큰 세일 및 분배 계획서, 법률 검토의견서, 규제 준수 확약서, 윤리서약서 등의 첨부 서류가 필요하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프로젝트 백서다.

여기에 코인 가격, 발행 물량, 사업계획, 재단 구성원 등 코인과 관련한 가장 중요하고 기초적인 내용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기술·금융·법률 관련 외부 전문가를 포함해 5명 안팎의 상장심의원회가 상장 적격성을 검토·검증하고, 상장에 문제가 없다는 결론이 나면 거래소와 해당 코인 재단은 상장·마케팅 계약을 체결한 뒤 코인을 상장시킨다.

◇ 코인 발행측이 가치·분배 임의로…이상폭등 등 문제 의심돼도 '속수무책'
하지만 거래소의 이런 코인 상장 단계 검증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현행법에 따른 규제가 거의 없기 때문에 코인 관련 핵심 사항의 대부분을 코인 재단이 정해도 거래소가 문제로 삼기 어려운 구조다.

우선 코인을 발행한 재단이 평가해 백서에 명시한 코인 가치, 가격이 그대로 상장 기준가격이 되는 경우가 많다.

주식처럼 공신력 있는 증권사 등 금융기관을 통해 수요 예측 등을 거쳐 적정 상장 기준 가격 범위를 산출하는 과정이 없다.

다른 거래소에서 이미 매매가 이뤄지는 코인의 경우 상장 직전일 다른 거래소의 종가를 상장 기준가로 삼을 뿐, 첫 상장이라면 대부분 재단이 책정한 가격으로 상장되는 셈이다.

코인 배분에도 별다른 제약이 없다.

코인 재단 임원 등 관계자들이 상당수 코인을 보유하고 나머지 코인 물량은 ICO(가상화폐공개)를 통해 상장에 앞서 '프리 세일(사전 판매)' 방식으로 특정인들에게 나뉘는 게 일반적이다.

ICO는 주식회사의 IPO(기업공개)와 비슷한 절차다.

백서에는 보통 상장 전 코인 보유자들의 '락업(매각 금지·주식의 보호예수격)' 관련 내용이 들어있지만, 락업의 기간 등에 대한 구체적 규정이 없기 때문에 결국 대량 보유자가 물량을 쏟아낼 수 있는 시점도 재단의 판단에 달려있다.

한 거래소 관계자는 "재단의 재무상태, 재단 CEO(최고경영자) 등 임원진의 범법 여부, 다른 코인으로 문제를 일으킨 전력이 있는지 등은 심의 과정에서 살핀다"면서도 "하지만 정부 차원의 공통된 법이나 규정, 기준이 없는 상황에서 재단 측이 정한 코인 가격이나 분배 등을 거래소가 일일이 문제 삼아 상장을 막을 수는 없는 게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시세 변동에 대해 단속하거나 조사할 수 있는 뚜렷한 권한이나 역량이 거래소에 있는 것도 아니다.

앞서 예를 든 '상장 반 시간 10만% 급등' 코인에 대해 해당 거래소 관계자는 "이렇게 많이 오른 경우가 없기 때문에 우리도 당황스럽다"면서도 "시세조정 등의 가능성이 거론되지만, 요즘처럼 장이 좋을 때는 다른 코인들도 급등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가격 상승만으로 뭔가 조처를 취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상장이 쉬우니 한 거래소에 많게는 약 170개에 이르는 코인들이 난립하고, 이들 가운데 상장 폐지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올해 들어 4대 거래소(빗썸·업비트·코인원·코빗)에서만 시린토큰·크레드·하이콘 등 약 20개 코인이 사업 지속성, 유동성 등 상장 유지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폐지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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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게시판식 공시…거래소조차 "투자자보호 위해 공시규정만이라도"
상장 후 코인과 관련된 정보 공시도 '사각지대'에 있다.

투자자 보호 차원에서 해당 코인이 어떻게 생성됐고, 어떤 목적으로 쓰이는지, 최근 어떤 변화가 있는지 등이 공시를 통해 투자자들에게 지체 없이, 정확하게 전달돼야 하지만 아직 가상화폐 허위 공시에 대한 처벌 규정이 없다.

이런 법적 공백 상태에서 모든 공시의 진위를 일일이 확인하기 어려워지자, 거래소 업비트의 경우 이달 2일부터 아예 개별 코인 재단이 공시를 자유롭게 직접 게시판 형태로 올리고, 사후 사실이 아닐 경우 페널티(처벌)를 받는 방식을 도입했다.

4대 거래소 가운데 나머지는 가상자산 관련 정보공시 플랫폼인 '쟁글'(Xangle)을 활용하고 있다.

2019년 4월 처음 공시 서비스를 시작한 쟁글은 자체 기준(52개)을 통해 프로젝트들의 공시를 검증하고 있다.

현재 쟁글에는 2천여개의 코인 프로젝트 관련 정보가 있고, 공시도 8천건이 넘는다.

하지만 '고육지책'일 뿐, 거래소들조차 투자의 기본인 공시 제도에 대한 공통된 규정만이라도 정부가 마련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거래소 업계 관계자 역시 "공시 관련 법이 없으니까 문제들이 터질 수밖에 없다"며 "소비자 보호 측면에서 규제는 당연히 있어야 하고, 그래야 거래소들도 안전하게 사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조진석 한국디지털에셋(KODA)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앞서 9일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주최한 가상자산업권법 태스크포스(TF) 세미나에서 "사기나 탈법 등의 시작점이 공시"라고 강조했다.

그는 "업권법으로 (코인) 상품이나 서비스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려주고, 공시해주는 절차를 만들어줘야 불법적 사기 행위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 금융당국 "보고 있다"…美·日 등 이미 상장·공시 등 규정 마련
이처럼 가상화폐 상장, 공시, 거래소 등을 더는 '무법지대'로 방치해선 안 된다는 지적에 대해 여전히 금융당국은 소극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우리도 내용을 보고 있다.

하지만 우선 글로벌 차원의 논의가 이뤄지는 것을 봐야 한다"며 "국제사회가 가상화폐 시장이 커지고 지급수단으로서 활용되는 상황을 쫓아가면서 감독과 규제를 어떻게 할지 논의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가상화폐 시장 말고도)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시장은 매우 많은데, 그 가운데 제도화가 필요한 시장이 무엇인지 판단해야 하는 문제"라고 덧붙였다.

금융당국은 현재 우리 정부의 가상화폐에 대한 입장이 다른 주요국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주장하지만, 우리보다 앞서 최소한의 규제와 제도를 마련해 둔 경우도 적지 않다.

미국 뉴욕주의 경우 2015년 세계 최초로 가상자산 특화 법률인 '비트 라이선스(BitLicense)를 제정해 이용자 보호, 공시의무, 불법 자금세탁행위 예방 등을 규제하고 있다.

워싱턴주는 가상자산 취급업소에 기존 자금송금업법을 유추해 적용한다.

일본 역시 많은 논의 끝에 가상자산을 지불수단으로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규제하고 있다.

가상자산 교환업자에 대해서는 라이선스(면허)를 발급하는데, 작년 7월 기준으로 등록된 가상자산 사업자는 24곳이다.

가상자산으로 상장하려면 반드시 금융청의 사전 심사를 거쳐야 하고, 새 가상자산 취급 등 사업자의 변경 사항도 의무 신고 대상이다.

업계 자율 규제도 병행되는데, 일본가상자산거래업협회(JVCEA)는 특정 가상자산 교환업자가 규율을 어기면 주의나 경고를 주거나 회원 제명까지 할 수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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