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관된 실체 외면에도 과세는 미·일 등 거론하며 발빠르게
은성수 "내재가치 없다"…홍남기 "체계적으로 되면 금융자산으로 과세도 검토"

[※ 편집자 주 = 국내 가상화폐 투자 거래대금이 주식시장 거래대금을 웃도는 등 코인 '광풍'이 일고 있습니다.

이에 가상화폐 투자에 대한 정부의 입장, 투자 실태, 코인 투자 관련 제도의 허점 등을 나눠 송고합니다]

금융팀 = 하루 거래대금이 20조원을 넘을 만큼 가상화폐 시장에 돈과 사람이 몰려들고 있지만, 정부는 여전히 가상화폐의 실체나 가치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런 정부의 입장이 현재 가상화폐발(發) 금융시스템 교란이나 투자자 피해 등을 막을 수 있는 법이나 규정, 제도가 사실상 전무(全無)한 근본 이유다.

하지만 당장 내년부터 가상화폐를 통한 소득에 세금이 매겨질 예정으로, '내재가치가 없는 대상에 과세하는' 정부의 모순적 태도에 대한 논란과 비난은 갈수록 커질 전망이다.

[코인'광풍] ① 딜레마 빠진 정부…'내재가치 없지만 세금은 걷겠다'

◇ "가상화폐 인정 못해. 투자는 자기 책임"…정부, 일관된 입장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22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가상화폐에 대해 "인정할 수 있는 화폐가 아니다", "암호화폐(가상화폐)는 투기성이 강한 내재가치가 없는 가상자산"이라고 말했다.

은 위원장은 가상화폐 투자자 보호 문제와 관련해서도 "가상자산에 투자한 이들까지 정부에서 다 보호할 수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화폐나 투자 대상으로서 가상화폐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으니, 원칙적으로 가상화폐 투자는 투자자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시각은 은 위원장의 개인적 의견이라기보다 현 정부의 일관된 '정책 기조'다.

앞서 7일 가상화폐 관련 관계부처 회의를 주재한 당시 문승욱 국무2차장도 "가상자산은 법정화폐·금융투자상품이 아니고, 어느 누구도 가치를 보장하지 않기 때문에 불법행위·투기적 수요, 국내외 규제환경 변화 등에 따라 높은 가격 변동성으로 큰 손실이 발생할 수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 역시 은 위원장과 마찬가지로 "가상자산 채굴, 투자, 매매 등 일련의 행위는 자기 책임하에 신중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통화정책 수장인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암호자산(가상화폐)이 지급 수단으로 사용되는데 제약이 아주 많고, 내재가치가 없다는 입장에 변화가 없다.

팩트(사실)라고 생각한다"고 단언했다.

◇ "일본은 정부 승인 코인만 상장"…한국에선 거래소·은행이 '알아서'
이처럼 가상화폐를 인정하지 않는 정부가 가상화폐 규제·관리·육성 등에 관한 법이나 제도 등을 촘촘히 만들었을 리가 없다.

특정금융거래정보법(특금법)과 시행령은 자금세탁방지 시스템을 비롯한 가상화폐 거래소의 안전성 검증을 사실상 시중은행에 떠맡겼다.

투자자 보호 차원에서 어떤 종류의 코인이 어떻게 생성됐고, 어떤 목적으로 쓰이는지 등이 투자자들에게 제대로 전달돼야 하지만 이 가상화폐 '공시' 관련 규정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개별 코인이 공시를 자유롭게 직접 게시판 형태로 올리고 사후에 사실이 아닐 경우 페널티(처벌)를 받는 등의 방식으로 각 거래소가 공시를 자체 관리하는 게 전부다.

상장을 거쳐 거래될 수 있는 코인을 심의하는 일도 가상화폐 거래소의 몫이다.

한 가상화폐 거래소 관계자는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어떤 상품(코인)이 된다, 안된다'에 대한 가이드가 불명확하다"며 "일본의 경우 금융청에서 승인한 '화이트리스트' 코인을 상장한 거래소만 운영이 가능하다.

최소한의 가이드는 어느 산업에서나 꼭 필요한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이렇게 관련 법·제도가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하루 거래대금이 20조를 넘나들 정도로 가상화폐 투자 '광풍'이 불자, 부랴부랴 정부도 6월까지 범정부 차원의 특별 단속에 나서기로 했다.

가상화폐의 실체는 외면하고 싶은 정부라도, 가상화폐가 자금세탁·사기 등 범죄에 악용될 가능성이 커지자 현행법을 동원해 어쩔 수 없이 통제에 나선 것이다.

"(투자자들이 가상화폐 시장에) 안 들어왔으면 좋겠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라는 은성수 위원장의 말은 이런 곤혹스러운 정부의 현재 입장을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

[코인'광풍] ① 딜레마 빠진 정부…'내재가치 없지만 세금은 걷겠다'

◇ "가상자산 과세는 세계적 추세"…내년부터 20% 세율 적용
가상화폐가 우리나라 법체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실체를 인정받는 곳은 소득세법이다.

특금법에서 '가상자산'과 '가상자산 사업자'가 거론되지만, 특금법 자체는 자금세탁방지를 위한 법률이기 때문에 자금세탁방지 의무 대상에 가상화폐 거래소 등 사업자를 끼워 넣은 정도다.

지난해 말 국회를 통과한 소득세법 개정안은 가상자산을 팔아 얻은 '기타소득'이 연 250만원을 넘으면 20%의 세율로 분리 과세하도록 규정했다.

시행은 내년 1월 1일부터로, 예를 들어 2022년 한해 가상화폐 소득이 400만원이라면 2023년 5월 종합소득세 신고 시점부터 250만원의 공제액을 뺀 150만원의 20%를 소득세로 내야 한다.

기획재정부는 당시 이런 소득세법 개정의 배경에 대해 "그동안 과세되지 않은 가상자산 거래 이익에 대한 과세를 정상화하는 것"이라며 "해외 주요국들은 이미 가상자산에 대해 과세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기재부에 따르면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은 가상자산 관련 소득을 자본소득(미국·영국·프랑스), 잡소득(일본), 기타소득(독일) 등으로 분류하고 세금을 매기고 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해 10월 기재부 국정감사에서 국민의 힘 서일준 의원이 '공신력이 입증된 가상자산은 금융상품으로 보고 과세해야 한다'고 지적하자 "가상자산도 거래내역이 거의 완벽히 파악되고 체계적으로 되면 금융자산으로 과세하는 것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소득세법에 따라 가상화폐 거래소는 내년 1월부터 거래자별로 가상화폐 거래명세서를 분기별, 연도별로 과세당국에 제출해야 한다.

홍 부총리의 "금융자산으로 과세하는 것도 검토할 수 있다"는 발언은 "내재가치가 없는 가상자산"이라는 은성수 위원장의 발언과는 결이 다르다.

정부 안에서 가상화폐를 보는 시각에 온도차가 있는 셈이다.

금융위 상임위원 출신인 이종구 한국블록체인협회 자율규제위원장은 "가상화폐 투자자가 몇백만이고, 거래 규모가 하루 몇십조원에 이르는데도 아직 가상자산에 대한 일관되고 통일된 법이나 규제가 없는 실정"이라며 "단순히 정부가 가상자산 투자 조심해라, 사기 등 처벌하겠다고 경고하는 정도인데 그것만으로는 투자자 보호나 가상자산·블록체인 기술의 산업적 발전이 불가능하다.

가상자산만을 위한 별도의 업권법을 만들어야 할 때"라고 조언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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