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당착에 빠진 부동산정책…고민 깊어진 정부

종합부동산세 기준 9억원을 어떻게 할 것인가.

말 많고 탈 많은 '판도라의 상자' 뚜껑이 마침내 열렸다.

재·보궐 선거에서 참패한 여권에서 종부세 기준(공시가 9억원. 시가로는 12억∼13억원) 상향 등 그간 금기시됐던 종부세 완화를 추진하면서 정치권과 학계, 시장에서 백가쟁명이 벌어지고 있다.

서울의 아파트 중위가격이 9억원을 돌파할 정도로 집값이 많이 오른 터여서 13년 전 정한 종부세 부과 기준을 손질해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문제는 간단치 않다.

여권은 1가구 1주택자 종부세와 함께 재산세 인하, 공시가격 현실화 속도 조절, 대출 규제 완화 등도 추진하고 있다.

이는 지난 4년간 견지해온 부동산 정책의 틀을 흔들어 정책 불신과 시장 불안을 키울 수 있다.

◇ '용기 있는 선택'이냐 '정책 우선 순위의 전도'냐
국무총리 직무대행인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지난 19일 국회에서 여당이 제기한 공시가격 동결론에 대해 "정말 공시가격을 동결하는 게 사회적 정의에 맞느냐"고 반문했다.

주택 공시가는 종부세, 재산세 등 보유세의 기준이 된다.

따라서 홍 부총리의 발언은 종부세 완화론에 제동을 건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정치적 측면서 보면 핵심을 잘못 짚었다.

지금 여권에서 봇물을 이루는 종부세 완화론은 공정이나 정의 등 가치의 문제가 아니라 표를 의식한 것이다.

부동산 민심 탓에 4·7 재보궐 선거에서 패배했으니 세금 인상에 분노한 민심을 달래 내년 대선과 총선에서 득표를 늘리겠다는 계산으로 보인다.

이게 아니라면 재보궐 선거 이전까지만 해도 철옹성 같았던 종부세 기준에 손을 댈 이유는 없을 것이다.

종부세 완화에는 더불어민주당의 정청래 의원과 김병욱 의원이 가장 적극적이다.

정 의원은 전통적으로 민주당 텃밭인 마포, 김 의원은 중산층 주거지인 성남시 분당을 각각 지역구로 두고 있다.

이들 구는 종부세 대상자가 많이 늘면서 선거 판도가 흔들릴 수 있는 지역이다.

정 의원은 1주택자 종부세 기준을 공시가 '9억원 초과'에서 '12억원 초과'로 상향하는 법안을 준비하고 있고, 김 의원은 이미 종부세와 재산세 인하를 담은 법안을 발의했다.

일각에서는 종부세 부과 기준을 금액 대신 '상위 1∼2%'로 하자는 의견도 있는데 이는 소수 고가 주택에만 종부세 폭탄을 안긴다는 점을 강조해 '정치적 효과'를 노리자는 취지로 읽힌다.

이런 흐름에 대한 당내 반론도 나오고 있다.

진성준 의원은 페이스북에 "어째서 고가주택 소유자들의 세금부터 깎아주자는 얘기가 먼저 고개를 드느냐"면서 "선거 패배의 원인 진단과 처방, 정책 우선순위가 완전히 전도돼 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김병욱 의원은 MBC 라디오에서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나 여론을 주도하는 층이 서울·수도권 위주라는 점도 중요한 요소"라며 "정책 효과가 의도대로 나오지 않을 때 일부 수정하는 것은 지혜롭고 용기 있는 선택"이라고 주장했다.

당 지도부는 신중론을 견지하고 있다.

지난 19일 출범한 부동산특별위원회는 당내에서 분출하는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종부세 개편 방안을 만들 전망이어서 어떤 형태로 종부세를 완화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 자가당착에 빠진 부동산 정책
1가구1주택 종부세 부과 대상인 공시가격 9억원 초과 공동주택은 전국 기준 3.7%인 52만4천620호, 서울에선 전체의 16.0%인 41만2천970호다.

여권에서는 그동안 비싼 집에 사는 사람들에게 세금을 많이 걷는 것은 당연하며 이게 공정이고 형평이라고 강조해왔다.

세금 내기 싫으면 집을 내놓으면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조세 정의를 실현하면서 세원을 확보할 수있을 뿐더러 매물이 많아지면 이 정부의 아킬레스건인 집값 급등을 진정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세금 확보에는 재미를 봤을지 모르나 집값을 잡는 데는 실패했고, 강력한 조세저항에 부딪혀 선거에서 깊은 내상을 입었다.

홍 부총리는 "국민 중 종부세 대상자는 3∼4%밖에 되지 않는다.

심지어 저도 종부세를 내본 적 없다"며 "전 국민에게 떨어지는 세금 폭탄으로 오해되는 것이 안타깝다"고 했지만, 위기감이 팽배한 여당에서 먹힐 것 같지 않다.

문제는 이로 인해 예상되는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여권 일각에서 거론되는 것처럼 종부세 기준을 공시가 9억원에서 12억원으로 올릴 경우 1주택자 기준으로 약 20여만명이 과세 대상에서 제외될 전망이다.

선거공학적 측면서 보자면 20만명의 분노를 다스릴 수 있고, 잠재적 종부세 대상자들에게도 안도감을 줄 수 있겠지만, 정부가 내세워온 공정이나 정의와는 거리가 있기에 무주택자나 저가 주택에 사는 서민층에겐 불만스러울 수 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서울서는 득표에 약간 도움이 되겠지만 그보다 훨씬 기반이 넓은 핵심 지지층 이탈이라는 문제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정부가 그동안 견지한 부동산 정책의 틀이 흔들 수 있다는 점은 간단치 않은 파장을 예고한다.

집값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시장이 종부세 완화를 그동안 강경 일변도였던 부동산세제 정책 변경 신호로 받아들일 경우 고가 아파트의 매물이 줄어들고, 공시가 9억원과 12억원(시가로는 15억∼16억원대) 사이 구간의 주택 가격을 자극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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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문가들도 찬반양론…고민 깊어진 정부
전문가들의 의견은 갈린다.

참여연대는 지난 20일 성명에서 "종부세 부과기준 완화는 부동산 불평등이 심각해지는 현재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면서 종부세 완화 시도의 즉각 중단을 요구했다.

"아직 공시가 9억원을 넘는 주택은 극히 일부분인데다 무주택 가구가 40%에 이른다"면서 "조세부담의 형평성을 제고하고 부동산 가격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종부세의 목적을 감안해야 한다"고 했다.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 소장은 "여당이 부동산 민심을 잘못 짚었다"면서 "오히려 다주택자의 종부세를 강화하는 등 보유세에 대한 의지를 천명해 세제 완화에 대한 투기 세력의 기대감을 없앤 뒤 공시가 현실화율의 속도 조절이나 1주택자나 무소득 노년층의 세 부담 완화를 검토하는 것이 순서"라고 했다.

우병탁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 팀장은 "최근 몇 년 새 집값 상승과 세율 인상, 공시가 현실화가 맞물리면서 세 부담 증가 속도가 가팔랐던 만큼 일부 완화는 필요하다"면서도 "이를 급하게 추진하기보다는 세제나 시장 영향 등을 면밀히 따져보고 충분한 의견수렴을 거처야 할 것"이라고 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 원장은 "집값이 올라 재산이 증가할 경우 세 부담을 늘리는 것은 형평이나 공정성 측면에서 맞는 방향이지만 세 부담을 빠르게 올릴 경우 가처분소득 감소로 내수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면서 "특히 1주택자나 소득이 끊긴 노년층의 세감면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아예 이참에 누더기가 된 부동산 세제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심교언 교수는 "징벌적 세금을 통한 부동산가격 안정은 그 효과가 없다는 것이 이미 입증됐다"면서 "세계적으로도 가격을 기준으로 종부세를 매기는 국가는 거의 없고 재산세에 묶어 누진세율로 조정하는 만큼 우리나라도 이를 받아들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여론조사업체인 리얼미터에 의하면 18세 이상 500명에게 종부세 완화에 대한 입장을 물은 결과 44%는 찬성했고, 38%는 반대했다.

찬성이 좀 높긴 하지만 종부세가 어느 한 편에서 일방적으로 보기 어려운 아주 미묘한 난제임을 보여준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21일 부동산시장 관계장관회의에서 기존 부동산 정책의 원칙을 강조하면서도 "시장 불확실성을 조속히 걷어낸다는 측면에서 그동안 제기된 이슈에 대해 짚어보고 당정 간 협의하는 프로세스는 최대한 빨리 진행해 나가겠다"고 전향적 입장을 밝혔지만, 종부세 해법을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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