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반도체 공장은 안보적 측면이 더 강조될 겁니다. 미국이 삼성전자, 대만 TSMC 등에 현지 공장을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이유입니다." (반도체 업계 고위 관계자)
미국 텍사스 오스틴에 있는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전경. <삼성전자 제공>
미국 텍사스 오스틴에 있는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전경. <삼성전자 제공>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전세계 주요 반도체 기업들에 미 현지 투자를 요청하는 사실상 '반도체 동맹'을 요구한 가운데 국회가 뒤늦게 국내 반도체 산업 지키기에 나섰다. 해외 정부가 국내 반도체 기업들에 현지 투자를 위한 '당근책'을 적극 제시하자 "이러다 우리 반도체 기업들이 전부 해외에 공장 짓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이 여당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는 설명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21일 '반도체 기술 패권 전쟁 특별위원회'를 발족하고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임원 출신인 양향자 의원을 위원장에 선임했다.

위원회는 올 상반기 안으로 'K-반도체벨트' 전략을 세워 재정과 세제지원, 인력 양성 방안을 포함한 종합지원정책을 발표하기로 했다. 다음달에는 반도체 산업 지원을 위한 특별법 제정도 추진할 계획이다. 특별법은 지난해 미국 정부가 자국 내 반도체 공장 설립을 장려하기 위해 100억달러의 연방 보조금과 최대 40% 세액 공제를 제공하는 '칩스 포 아메리카(CHIPS for America Act)' 법안을 벤치마킹해 이른바 '칩스 포 코리아'를 제정하겠다는 계획이다.

칩스 포 아메리카는 미국의 반도체 공급망에 대한 위기감 때문에 등장했다. 한때 미국은 세계 최대 반도체 생산국이었다. 반도체산업협회(SIA)에 따르면 1990년 미국의 글로벌 반도체 제조 시장 점유율은 37%에 달했다. 그러나 현재는 12% 수준으로 떨어졌다. 대신 한국, 대만 등 동아시아 국가들이 대부분 점유율을 가져왔다.

그러자 이 법안을 통해 삼성전자, TSMC 같은 해외 기업들과 인텔, 글로벌파운드리스 등 자국 기업들에 대해 미 주(州) 정부가 나서고 연방정부가 뒤에서 지원하기로 했다. 자국 반도체 생산 비율을 높이겠다는 전략을 세우고 차근차근 이행 중이다.

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1위 기업 TSMC는 360억달러(약 41조원)를 들여 애리조나주 등 미국에서만 5나노급 이하 첨단 반도체 공장 6곳을 추가로 짓겠다고 최근 1분기 실적 발표회에서 밝혔다. 올해 당장 공사를 시작한다.

이처럼 TSMC가 지난해 계획을 세우고 채 1년도 안 돼 '첫 삽'을 뜰 수 있었던 데는 애리조나 주정부의 적극 지원이 있었다. TSMC가 기존 120억달러에서 투자금액을 최대 360억달러까지 크게 늘린 것 역시 애리조나주 피닉스시가 지자체 예산까지 투입하며 부지제공·용수 및 전기 사용·세제 등에서 대규모 인센티브를 주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기업인 인텔 역시 애리조나에 200억달러(약 22조원)을 들여 5나노급 이하 반도체 양산을 할 수 있는 파운드리 공장 2곳을 짓기로 했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공장 운영에서 사후 신고제를 채택하는 미국이나 아예 규제 법안이 없는 대만과 비교해 국내에는 까다로운 규제들이 많다"며 "자본의 논리를 쫓자면 기업 입장에선 해외에 공장을 짓는 게 낫다"고 말했다. 양향자 의원실 관계자는 "국내 반도체 공장 운영은 대부분 '허가제'로 규제가 까다로워 기업들이 신규 공장 설립에 부담을 느낀다. 이를 사안에 따라 '신고제'로 단순화하는 등의 조치는 우선 시행령만으로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노정동/조준혁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