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에 있는 폐쇄회로TV(CCTV) 카메라 전문 업체 W사는 마이크로컨트롤러유닛(MCU)을 구하지 못해 초비상이다. 반도체 품귀로 유통시장에서 지난해 개당 8달러 하던 MCU가 최근 50달러로 여섯 배 이상으로 뛰었지만 필요한 물량을 확보할 수 없을 정도다. MCU는 정보기술(IT) 기기의 두뇌 역할을 하는 칩으로 중소 IT업체들은 해외 반도체기업의 대리점을 통해 구매한다. W사 관계자는 “재고가 바닥을 보여 가격 불문하고 계속 주문을 넣고 있지만 구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18일 IT업계에 따르면 반도체 품귀로 국내 산업현장이 ‘대혼란’을 겪고 있다. 자동차에서 시작된 칩 부족이 스마트폰을 거쳐 TV, 생활가전, PC, 소형 전자기기 등 IT산업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 가격이 제품별로 많게는 30배 이상 뛰었지만 웃돈을 얹어줘도 확보가 쉽지 않다.

구매력에서 밀리는 중소 IT업체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이들 업체는 구매 물량이 많지 않아 반도체업체 본사가 아니라 중간대리점과 거래하는데, 최근 이들이 가격 상승을 노리고 ‘물건 잠그기’에 나섰기 때문이다. 한 의료기기업체 관계자는 “요즘 MCU 유통업체들이 ‘슈퍼 갑(甲)’ 행세를 하고 있다”며 “ST마이크로 등 독일 기업 본사에 문의해도 리드타임(주문 후 공급까지의 기간)이 기본 40주, 일부 품목은 2년까지 늘었다고 한다”고 말했다.

대기업도 마찬가지다. 삼성전자 LG전자조차 디스플레이 구동칩(DDI), 파워반도체(PMIC) 등을 원활하게 조달하지 못해 TV와 가전제품을 계획 물량보다 10~20% 이상 적게 생산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HP도 반도체 부족으로 교육용 컴퓨터 수요를 맞추지 못하고 있고, 중국 생활가전업체 로밤은 칩 부족 때문에 오븐 신제품 출시를 4개월 늦추는 등 세계 IT업계가 홍역을 치르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의 제재를 받고 있는 중국 IT업체들이 사재기에 나서면서 가수요까지 붙어 개당 1달러에 거래되던 특정 반도체 가격이 32달러로 폭등하는 등 수급체계가 완전히 무너지고 있다. 한 중견 반도체업체 고위 관계자는 “칩의 원재료인 웨이퍼까지 ‘쇼티지(공급 부족)’ 상황으로 가고 있다”며 “반도체 대란이 언제 해소될지 가늠조차 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