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폭탄주' 소맥의 원조, 1980년대 통폐합酒라는데…
한국인의 대표 술 하면 당장 뭐가 떠오를까. 아마 ‘소맥’이라고 답하는 사람이 꽤 있을 것이다. 회식 자리의 대표 술이기 때문이다. 소주는 못 마셔도 소맥은 마신다는 사람도 상당히 많다. 한국인은 왜 소맥을 좋아할까. 소맥이란 폭탄주는 언제 시작됐을까.

1924년 등장한 조선무쌍 신식요리제법에 따르면 탁주와 소주를 섞어 마시는 술이 등장한다. 이름은 ‘혼돈주’. 소주인지, 탁주인지 너무나도 헷갈린다는 의미다. 하지만 많이 마셔 빨리 취하는 폭탄주 문화와는 조금 거리가 있었다. 막걸리의 앙금이 가라앉은 다음 맑게 떠오른 소주를 마시는 것인데 의외로 시간이 걸린다. 적어도 기다림의 미학이 있는 술이었다.

일제강점기 시절엔 새로운 폭탄주가 등장한다. ‘비탁’이다. 당시 맥주는 일본에서 건너온 비르(맥주)라고 불리기도 했다. 이 비르와 탁주를 섞어 비탁이라고 불렀다. 비탁은 대통령이 좋아한다는 소문에 힘입어 1970년대까지 상당한 명맥을 유지했다.

소맥의 역사는 의외로 길지 않다. 1980년 정부에 의해 강제적으로 언론이 통폐합될 때 생겨났다. 해고된 언론인들이 “언론이 통폐합되는 마당에 소주랑 맥주도 통폐합시키자”고 했다. 그래서 태어난 술의 이름이 통폐합주. 마셔서 없애버리겠다는 ‘웃픈’ 현실을 담은 술이었다.

소맥이라는 용어는 2000년대 이후 등장했다. 이전까지 소맥은 소주와 맥주가 아닌 소맥(小麥), 밀가루를 뜻했다. 백세주의 등장으로 소맥이 탄생했다. 처음엔 백세주에 소주를 섞어 마셨다. 이후 백세주의 이름이 바뀐다. 백세주 50%, 소주 50%를 섞으면 50세주, 백세주가 75%면 75세주라고 불렀다. 백세주를 25%만 넣으면 25세주라 했다.

맥주업체들이 이런 트렌드를 포착해 맥주에 소주를 타는 문화를 퍼트렸다. 소맥은 기존에 섞어 마시는 술과 달리 인기가 사그라들지 않았다. 일단 섞게 되면 흰 거품이 보였고, 술 비율에 따라 맛도 달라졌다. 각자 자신만의 레시피로 소맥을 만들었다. 소주를 잘 못 마시는 사람은 맥주량을 늘렸다. 이런 문화가 취향을 만들었다.

소맥은 이후 한국 주류 시장의 헤게모니를 잡았다. 이전까지는 소맥 외에 백세주, 산사춘, 매취순, 복분자주 등 다양하게 마셨지만 소맥이 등장한 이후 달라졌다. 20도의 소주와 5도의 맥주를 섞는 순간 알코올 도수는 10~13도 정도가 된다. 약주, 과실주의 도수와 비슷하다. 결국 비교적 가격이 비싼 약주와 과실주를 외면하고, 소맥을 찾게 됐다. 최근 이런 트렌드도 바뀌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홈술’ 문화 확산 때문이다. 메뉴를 통일해야 했던 회식과 달리 취향대로 마시는 시대가 열렸다. 홈술 문화는 음주 문화의 다양성 확대에 기여했다. 먹고 마시는 모든 것을 사진 찍거나 기록하는 트렌드도 확산하고 있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주류 디자인이 중요해지게 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