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반도체, 미·중 사이서 '샌드위치'
"지정학적 리스크에 무리한 투자 요구"
삼성전자 중국 시안 반도체 공장 전경. 사진=삼성전자

삼성전자 중국 시안 반도체 공장 전경. 사진=삼성전자

삼성전자(80,100 +2.04%)가 미국으로부터 사실상 '반도체 동맹' 요구를 받으면서 'K-반도체' 기업들의 지정학적 셈법이 복잡해졌다. 반도체·모바일 사업에서 중국의 눈치를 살펴야하는 삼성전자 입장에선 향후 중국 정부의 투자 요구까지 수용해야 하는 난감한 처지에 놓이게 됐다.

1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이정배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장(사장), 이석희 SK하이닉스 사장 등 국내 대표 메모리 반도체 기업들의 최고경영자(CEO)들은 오는 15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열리는 확대경제장관회의에 참석해 미국에 더 공격적 투자를 주문한 이른바 '바이든 청구서'에 대한 대응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13일(한국시간) '반도체 공급망 점검 회의'를 열고 삼성전자를 비롯해 대만 TSMC, 인텔 등 전세계 반도체·통신·자동차 기업 19곳을 초청해 사실상 '반도체 동맹'을 요구했다. 그는 "오늘 내가 여기 있는 이유는 우리가 어떻게 미국 내 반도체 산업을 강화하고 미국의 공급망을 보장할 것인지 말하기 위한 것"이라며 "우리의 경쟁력은 당신들이 어디에 어떻게 투자하느냐에 달렸다"고 했다.

미국에 더 적극적으로 투자해줄 것을 요청한 셈이다.

미국은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을 '안보'와 직결된 이슈로 보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희토류를 포함해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등 핵심 품목의 공급망 검토를 지시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글로벌 파운드리 1위 TSMC의 모국인 대만 당국에도 증산을 요청하는 등 반도체 부족을 중요 과제로 인식하고 대응해왔다.

백악관이 세계 주요 반도체 기업들을 불러모으자 중국 정부는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중국 관영 매체 '환구시보'의 영문판인 글로벌타임스는 전날 "(미국의 반도체 공급망 회의는) 중국의 성장을 가로막으려는 또 하나의 정치 공작"이라고 비판했다. 이 매체는 "미국이 19곳의 기업들을 불러 모은 회의에 중국 기업들을 배제했다"며 "미 의회도 중국을 겨냥한 제재 법안을 밀어붙이고 있다"고 했다.

글로벌타임스는 "미국이 반도체 분야에서 동맹국들에 중국을 배척하라고 압박하는 것도 미국이 (반도체에서 중국에 대응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라며 "중국 기업에 대한 제재가 별 효과가 없자 미국 기업이 아닌 대만(TSMC)과 한국(삼성전자) 같은 동맹국에 무리하게 중국과 떨어져 지낼 것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국과의 관계도 고려해야 하는 삼성전자 입장에선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됐다. 미국뿐 아니라 중국 정부 역시 무리한 투자를 요구할 수 있어서다.

현재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과 쑤저우에 낸드플래시와 반도체 후공정(패키징)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올 초 증설을 진행한 시안2공장이 예정대로 가동되면 올 중순부터 월 13만장의 낸드플래시를 생산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삼성전자가 전 세계에서 생산해내는 양의 40%에 해당한다. 업계에선 이미 충분한 생산능력(CAPA)로 보고 있다.

그럼에도 앞서 중국 정부는 지난 3일 푸젠성 샤먼에서 열린 한·중 외교정상회담에서 우리 정부에 반도체와 5세대 통신분야에서 협력해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공급망이 위태로운 건 중국도 마찬가지"라며 "미국이 움직이는 데 중국이 가만히 있겠는가. 중국 역시 삼성전자에 투자 압박을 해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중국은 'K-반도체' 기업들에는 최대 고객이다. 지난해 국내 반도체 전체 수출량 가운데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40%에 달한다. 중국 본토 외에도 홍콩까지 더해지면 수출 비중은 60%까지 치솟는다.

손루원 한국화웨이 사장은 전날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5년간 화웨이가 한국에서 구매한 반도체 누적액수가 40조원"이라며 이 점을 상기시켰다. 쑤 즈쥔(영문명 에릭 쉬) 화웨이 순환회장도 최근 중국 선전에서 열린 '화웨이 애널리스트 서밋'에서 "글로벌 반도체 공급난은 미국의 제재 때문이지, 중국 탓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