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 유동성이 지난 2월에만 40조원 넘게 늘었다. 월간 증가폭 기준으로 역대 최대다. 가계·기업이 실생활에서 체감하는 실질금리(명목금리-기대 인플레이션율)가 최근 4년 새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진 영향 등이 겹쳐 나온 결과다. 실질금리 하락으로 자산시장 쏠림 현상이 심해질 수 있는 만큼 기준금리 인상 시점이 앞당겨질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가계·기업 자금조달 모두 증가

한국은행이 13일 발표한 ‘2021년 2월 중 통화 및 유동성’ 자료를 보면 지난 2월 통화량(M2·평잔)은 3274조4170억원으로 1월에 비해 41조8000억원 늘었다. 관련 통계를 작성한 2001년 12월 이후 월간 증가폭으로는 최대다. M2는 현금과 요구불예금, 수시입출금식 예금, 2년 미만 정기 예·적금 등 단기 금융상품을 포함한 넓은 의미의 통화지표다.
실질금리 4년來 최저…유동성 최대폭 증가
상품별로 보면 요구불예금(11조원 증가), 수시입출식 저축성예금(9조2000억원), 머니마켓펀드(MMF·6조3000억원) 등 수시로 현금을 꺼낼 수 있는 금융상품 잔액이 26조5000억원가량 늘었다. 한은 관계자는 “가계의 주택담보대출이 불어난 데다 기업의 회사채 조달도 늘었다”고 설명했다.

가계·기업이 체감하는 실질금리가 내려가면서 차입금 조달이 증가했고, 그만큼 유동성도 늘었다는 분석이 많다. 은행의 평균 실질 대출금리(신규 취급 기준)는 2월에 연 0.74%로 집계됐다. 전달보다 0.18%포인트 하락한 것으로 2017년 1월(연 0.71%) 이후 가장 낮았다. 실질 대출금리는 2월 은행의 평균 대출금리(연 0.74%)에서 향후 1년 동안의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나타내는 기대 인플레이션율(2%)을 뺀 수치다.

실질금리는 미국 경제학자 어빙 피셔의 이론(피셔 방정식)을 바탕으로 하며, 한은과 경제학계가 주로 참고하는 지표로 통한다. 최근 국고채 3년 만기 금리 등 명목금리가 오름세를 보이는 것과 달리 실질금리가 내려가고 있다. 경기 회복 기대가 퍼지면서 2월 기대 인플레이션율(2%)이 2019년 8월(2%) 후 최고치를 기록한 결과다.

힘 얻는 연내 기준금리 인상론

가계가 체감하는 실질 대출금리가 낮아진 만큼 자산 매입 유인이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당국이 부동산 대책을 줄줄이 내놓고 있지만 실질금리 하락으로 자산시장 불안이 해소되지 않을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는 실질금리 하락과 이에 따른 금융안정 위협을 주목하고 있다. 지난 2월 25일 열린 금통위 의사록을 보면 한 금통위원은 “기대 인플레이션을 고려할 때 실질금리가 더 하락할 것”이라며 “민간 레버리지가 커지는 등 금융 불균형 누적 가능성에 대해 지속적 경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위원은 “경제가 본격적 회복 국면으로 들어서면 지금보다 금융안정에 더 무게를 둔 통화정책 운영을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이들 위원이 앞으로 금리를 인상해야 한다는 ‘소수 의견’을 내세울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연내 기준금리 인상론도 힘을 받고 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은이 금융안정 등의 흐름을 고려해 올 하반기에 기준금리를 올릴 수 있다”고 내다봤다. 허태오 삼성선물 연구원도 “미국 중앙은행(Fed)이 6~9월에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을 구체화할 가능성이 있다”며 “한은도 연내 기준금리를 인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