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인베브, 디아지오, 하이네켄과 같은 주류 회사들은 의외로 ESG 등급이 높다. 소비자의 건강을 위협하는 상품을 제조해 파는 회사가 높은 점수를 받는 게 의아해 보일 수 있다. 글로벌 평가기관들은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술을 빚는 데다 사회에 대한 기여도 상당해 점수를 낮게 주기 어렵다”고 설명한다.
12일 ESG 평가기관 등에 따르면 스카치 위스키 ‘조니 워커’ 등을 제조하는 글로벌 주류기업 디아지오는 MSCI 기준 ESG 등급에서 최고인 AAA를 받았다. 2017년 7월부터 같은 등급을 유지하고 있다. 버드와이저, 호가든 등을 생산하는 세계 최대 맥주 기업 AB인베브도 같은 기간 AA등급을 유지 중이다. 네덜란드 주류 기업 하이네켄도 AA등급을 받았다.
이들 기업의 ESG 등급이 높은 이유는 제조 과정에서 친환경적인 방법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AB인베브는 태양광에너지로 맥주를 생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2025년까지 100% 재생에너지를 사용하고,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5% 감축한다는 목표도 내놨다. 디아지오는 탄소 배출이 많은 유리병 대신 종이로 만든 병에 위스키를 담아 판매한다. 하이네켄은 재활용되지 않는 폐기물의 비중을 지속적으로 낮추고 있다.
IBS컨설팅 관계자는 “글로벌 담배 제조사와 카지노 업체의 ESG 등급도 평균 이상”이라며 “술, 담배, 도박 등과 관련한 이른바 ‘죄악기업’을 어떻게 평가할지는 ESG 자금을 운용하는 연기금과 자산운용사의 몫”이라고 설명했다.
한국경제신문과 IBS컨설팅은 이번 조사에서 카지노를 운영하는 강원랜드와 담배를 생산하는 KT&G를 제외했다. 죄악기업 논란을 감안해서다. 이 두 곳은 사회(S) 부문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지만 환경(E), 지배구조(G) 관련 지표는 전체 평균을 웃돌았다.
BGF리테일은 조사에 포함했다. 편의점을 통해 술을 팔긴 하지만 본업이 주류 유통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회사의 평가 등급은 ‘B’다. 비정규직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고 ESG 관련 정보를 부실하게 제공했다는 것이 약점으로 꼽혔다. 온실가스 배출량 등 환경 지표는 대체로 양호했다. S 부문에서는 지역 대학과 연계해 인재를 채용하는 등 지역 경제 성장을 돕는다는 점 등이 긍정적으로 평가됐다.
“한국형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평가모델에 대한 기대가 큽니다.” “ESG 등급을 높일 방법을 안내해주세요.”한국경제신문과 연세대, IBS컨설팅이 지난 11일 공개한 업종 대표 기업의 ESG 등급에 대한 기업의 반응은 뜨거웠다. 한국 기업의 특수성을 반영한 ESG 평가모델에 근거한 등급이 나오자 각 기업에는 비상이 걸렸다. ESG 실무자들은 46개 평가 대상 중 절반이 C등급을 받을 만큼 냉정한 평가에 놀랐다며 등급을 올리기 위해 어떤 점을 개선해야 하는지를 집중적으로 물었다.이번에 나온 ‘한국형 ESG 모델’은 국내 100대 기업 중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발간하는 46개사를 분석한 결과다. 글로벌 최고 기업을 기준점으로 놓고 이에 95% 이상 근접한 역량을 보유한 곳은 ‘A’, 80%대에 머물고 있는 곳은 ‘B’, 격차가 상당한 곳은 ‘C’로 분류했다. IBS컨설팅 관계자는 “국내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ESG 경영에 나서고 있지만 글로벌 기업과 비교하면 차이가 크다”고 말했다. ‘ESG 등급 인플레이션’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온정주의적 평가가 이뤄지고 있는 기존 평가 방식과는 다른 차원의 잣대를 적용했다는 설명이다.종합등급 A를 받은 기업은 세 곳에 불과했다. 글로벌 톱클래스 기업에 근접했다고 판단되는 곳만 A를 부여한 결과다. 업종별로 특성이 다르다는 점도 평가에 반영했다. 업종에 따라 다른 지표를 적용하거나 반영 비율을 조정하는 방식을 썼다. 주요 글로벌 평가기관도 한경과 똑같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은 업종별 기준표가 140여 개에 이른다. 한경 ESG 모델, 하반기부터 대상기업 확대A 받으려면 세계 상위 5% 돼야…평가등급도 세분화 계획E(환경) 부문에선 동일 업종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환경관리 역량을 보유한 실제 글로벌 기업을 기준으로 삼았다. 정보기술(IT) 업종에선 대만 파운드리 업체 TSMC, 화학 기업은 일본 도레이와 비교하는 식이다. 오염물질 배출과 관련해서는 매출 대비 배출량 지표를 활용했다. 친환경 기술을 선제적으로 도입한 기업일수록 좋은 점수를 받았다. 생산 공정에서 신재생에너지를 사용한 기업에도 가점을 부여했다.S(사회) 부문 비교 대상은 동일 업종에서 모든 지표가 상위 5%인 가상의 국내 기업이다. 한국 사회에서 중시하는 △장애인 고용률 △최고관리자 중 여성 비율 △상근임원 중 여성 비율 △비정규직 비율 등을 비중 있게 반영한 것도 한경 ESG 평가모델의 특징으로 꼽힌다. 고용 다양성에 꾸준히 신경 써온 기업이 S 부문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는 의미다.G(지배구조) 부문 비교 대상 역시 S와 동일하다. 종합등급 반영 비율은 E와 S보다 다소 낮다. 한국은 기업 지배구조의 하한선을 법률로 규정한 나라로 기업 간 평가가 크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중점적으로 반영한 요소는 ESG 전담부서 유무, ESG 관련 정보공개 노력 등이다. 최고경영자(CEO)의 보수를 산정할 때 ESG 등 비재무적인 목표 달성 여부를 반영하고 있는지도 들여다봤다.업종별로는 은행과 건설업에서 등급이 낮게 나왔다. 글로벌 톱클래스 기업과 견줘보면 부족한 부분이 적지 않았다는 게 평가를 담당한 실무자들의 설명이다. 은행 업종의 경우 녹색채권 발행액, ESG 대출 등 실질적인 ESG 활동을 따지는 항목의 점수 차이가 컸다. IBS컨설팅 관계자는 “일부 은행이 ESG 상품으로 홍보하고 있는 소상공인 대출 등은 은행의 본업으로 판단해 ESG 활동으로 분류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이번 조사엔 2019년 데이터를 활용했다. 한국경제신문과 연세대, IBS컨설팅이 개발한 ESG 평가모델을 알리고 타당성을 검증하는 것이 목적이다. 민간 기업에 대한 정식 평가는 2000년 ESG 데이터를 담은 지속가능보고서가 나오는 하반기에 이뤄질 예정이다.정식 평가에선 평가 대상 기업을 ‘데이터가 있는 주요 상장사’로 확대하고 들여다보는 지표의 숫자도 늘릴 예정이다. A부터 C까지 3단계로 구분한 평가등급도 세분화할 계획이다.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평가 사업에 가장 먼저 뛰어든 곳은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와 같은 글로벌 지수 사업자다. ESG 열풍이 거세지면서 컨설팅 업체, 언론사 등도 ESG 평가에 가세했다. 지난해 말 세계 5000개 기업을 대상으로 ESG 수준을 평가한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12일 경제계에 따르면 ESG 평가에 나서는 기관이 늘면서 기업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여러 기관이 제시한 점수의 차이가 상당해서다. 안드레스 기랄 연세대 경영대학 부학장은 지난해 11월 한경아카데미 주관으로 열린 ‘ESG의 국제적 흐름과 한국 기업의 과제’ 세미나에서 “MSCI와 톰슨로이터의 ESG 평가 상관계수는 0.38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평가기관의 점수가 ‘최소한의 상관관계가 있다’고 여겨지는 0.5에도 미치지 못했다는 얘기다.국내에서 착한 기업으로 언급되며 ‘갓뚜기’라는 별명까지 얻은 오뚜기는 2019년 MSCI로부터 C등급을 받았다. 같은 기업을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B+로 평가했다. 우리은행은 한국기업지배구조원에선 C를 받았지만, 톰슨로이터에선 A~B+에 해당하는 점수를 받았다.한국의 대표적 플랫폼 기업으로 꼽히는 네이버는 2020년 한국기업지배구조원에서 7단계 중 두 번째로 높은 A등급을 받았다. MSCI에서도 세 번째인 A등급을 받았다. 하지만 S&P 글로벌은 네이버의 ESG 점수를 100점 만점에 10점으로 제시했다. 동종 기업 23개 중 최하위 수준인 22위에 해당한다. S&P는 네이버에 대해 “S&P가 요구한 설문에 참여하지 않았음을 전제로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기업들의 불만은 이것만이 아니다. 업종 분류 기준, 사용 데이터, 방법론 등이 평가기관에 따라 제각각인 탓에 ESG 전략을 수립하기 어렵다고 토로한다. 한 대기업 ESG 담당자는 “A기관은 ‘2시 방향’으로, B기관은 ‘4시 방향’으로 갈 것을 주문하는 식”이라며 “추가로 비용을 치르고 평가기관에서 피드백을 받아도 뾰족한 답이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MSCI 평가의 한계현재 글로벌 기업과 금융기관이 가장 많이 활용하는 지표는 MSCI의 ESG 평가다. 평가 기관 중 최대인 700개 안팎의 기초 데이터를 활용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MSCI는 산업 분류에 따라 기업을 에너지, 소재, 금융, 정보기술 등 11개의 대분류로 나눈 뒤 세부 산업군을 다시 나누고, MSCI 나름의 가중치를 부여해 등급을 도출한다. 평가 방식이 복잡하다 보니 탄소 배출량 등 주요 개별 지표의 변별력이 생각만큼 높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매출이 가파르게 증가하는 기업도 MSCI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얻기 어렵다. 탄소 배출량을 얼마나 줄이는지를 평가하는 데 ‘배출 총량’ 지표를 쓰기 때문이다. 주문이 늘어 공장 가동률을 높인 기업은 불이익을 피하기 힘든 구조다.국내에도 ESG 평가기관이 적지 않다. 한국 사정에 밝다는 장점이 있지만 조직 역량 면에서 한계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조사의 충실도를 따지면 글로벌 평가기관을 따라가기 힘들다는 얘기다. 데이터 수집이 어려운 E(환경), 기준의 적절성 논란이 있는 S(사회) 관련 지표를 상대적으로 덜 반영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평가기관이 개별 기업에 매긴 점수는 연도가 달라져도 크게 바뀌지 않는 경향이 있다. 매년 방법론을 미세조정할 뿐 큰 틀은 그대로 두기 때문이다. 지난 3년간 MSCI ESG 등급을 받은 국내 60개 기업 중 등급이 두 단계 이상 오르내린 기업은 한 곳도 없다. 기업 실무자들 사이에서 ESG 경영을 강화해도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불만이 나오는 배경이다.김대훈 기자 daepun@hankyung.com
한국경제신문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의 모든 것을 담은 무크(부정기 간행물) 《ESG 개념부터 실무까지 K-기업 서바이벌 플랜》(사진)을 발간합니다.ESG가 경영계의 화두로 급부상했지만 참고할 만한 자료는 전무하다시피 합니다. 기업 실무자를 위한 전문 서적은커녕 ESG의 총론을 다루는 참고 서적조차 찾아보기 힘듭니다. 새로 ESG 업무를 맡은 실무자들이 어려움을 호소하는 이유입니다.한국경제신문은 ESG 실무자의 갈증을 풀어주기 위해 서적 형태의 콘텐츠를 준비했습니다. ESG 경영의 개념과 최신 트렌드, 사례 분석, 투자 지침까지 포괄하면서 주요 기업에서 오랜 기간 사회공헌과 ESG 실무를 맡아온 전문가들의 노하우를 담았습니다.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잘 작성하는 방법부터 투자자의 질문에 답하는 요령까지 실무자를 위한 ‘원포인트 레슨’이 가득합니다. ESG에 관심이 많은 일반 독자를 위한 콘텐츠도 많습니다. 국내외 주요 기업의 ESG 데이터를 집중 분석하고, 파리기후협약을 비롯한 주요 ESG 관련 이슈에 대해서도 설명합니다.포털사이트 검색창에 ‘한경무크 ESG’를 치면 예약 주문 페이지에 접속할 수 있습니다. 사전 주문은 12일 시작됩니다. 주요 대형 서점에선 15~16일부터 한경무크 ESG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가격은 2만원. 자세한 사항은 전화와 이메일로 안내합니다. (02)360-4859, moo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