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4월07일(05:12)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사진=구글 플레이의 Wattpad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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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훌륭한 후보들 연락이 많아서…조금 시간을 두는 건 어떨까요”. 네이버가 제시한 가격 제안을 받아든 왓패드 측의 예상치 못한 답변에 실무진들은 눈 앞이 깜깜해졌다. 3주간 밤을 새가며 사업부 실사를 마치고 세부 협상만 앞뒀던 네이버에겐 허탈한 소식이었다.

즉각 IB업계에선 페이스북·아마존·넷플릭스·바이트댄스·스포티파이 등 글로벌 플랫폼 공룡들이 왓패드의 새로운 인수 후보로 합류한다는 소식이 속속들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이 중 ‘틱톡(TikTok)’을 운영하는 바이트댄스와 미국계 음원업체 스포티파이(Spotify)가 유력한 경쟁 후보로 합류했다. 바이트댄스가 중국 자본이란 한계 탓에 유력 인수 후보에서 밀려났지만, 미국 나스닥 상장사이자 네이버보다 시가총액규모가 더 큰 스포티파이는 인수전 막바지까지 가장 위협적인 경쟁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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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내부에선 인수 포기까지 테이블에 올려두고 고민에 빠졌다. 경쟁이 치열해지며 인수 초기 예상했던 가격 범위를 넘어서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인수 이후 사업을 총괄할 김준구 네이버웹툰 대표는 "인수 이후 가치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에 집중했다. 지금 가격에 인수해도 충분하다는 결론이었다. 네이버는 자사주를 활용하는 묘수도 냈다. 기존 주주들에게 현금으로 즉각 6532억원을 받거나, 7081억원 규모 자사주를 교부받을 수 있는 선택지를 제시했다. 즉각적인 현금 유출 부담을 줄이면서 성장성을 공유해 기존 경영진을 설득하겠다는 포석이었다. 결국 네이버가 새해 첫 대형 경영권 거래에서 축포를 쐈다. 스포티파이와 가격 격차는 불과 200억원 내외에 불과했다는 후문이다.

네이버가 왓패드 인수 협상에 돌입한건 지난해 8월 경이었다. 왓패드 내 일부 주주들이 투자 회수를 희망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협상에 나서던 중, 전체 지분 인수로 협상 범위가 넓어졌다. 인수에 성공할 경우 왓패드가 보유한 9천만명의 사용자 기반과 10억편에 달하는 콘텐츠를 단번에 확보할 수 있는 만큼 네이버 입장에선 최적의 매물이었다. 웹소설을 네이버가 꾸려온 웹툰으로 재생산할 수 있는 점에서 시너지도 분명했다.

네이버는 내부적으로 김준구 네이버웹툰 대표와 사업부 내 엔지니어, M&A 전담 인력 등 10여명의 인력으로 구성된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인수전에 돌입했다. 해당 시기 네이버 M&A 총괄로 영입된 김남선 이사도 첫 ‘데뷔전’이었다. 김 이사는 네이버 합류 이전 맥쿼리 PE에서 ADT캡스‧LG CNS 지분 인수 등을 지휘하며 M&A 업계에서 이름을 알린 인물이다. 코로나집단감염증 여파로 모든 거래절차와 경영진 미팅 등도 ‘줌(Zoom)’을 통해 원격으로 진행됐다.

M&A 업계에선 네이버가 단행한 첫 대형 경영권 인수 거래이자 글로벌 기업 인수인 점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그간 네이버 중소형 벤처 투자, 지분 투자 등엔 활발히 나섰지만 M&A에선 좀처럼 존재감을 보이지 못했다. 이 때문에 1000억원 이상 대형 거래에서 역량을 발휘할 수 있을지 의문으로 남았다. 뚜껑을 열어보니 데뷔전에서 유수의 글로벌 IB 도움 없이 독자적으로 거래 발굴에서 기업가치 책정, 협상 마무리까지 속전속결로 마무리지으며 세간의 우려를 말끔히 씻어냈다.

네이버 특유의 기업문화가 플랫폼 M&A에서 타 기업을 압도하는 강점으로 나타났다는 평가도 나온다. M&A는 '사내 재무·전략 인력 들이 담당하는 업무'라는 기존 기업들의 관행과 달리, 네이버에선 인수 이후 사업을 책임져야할 사업부 내 경영진들이 직접 거래에 관여하고 결과를 책임지는 문화가 정착했다. 매각 측에 왓패드의 주력 사업인 웹소설 분야와 네이버가 보유한 웹툰이 어떤 시너지를 보일 지 '스토리'를 제시해 설득에 나선 것도 김준구 대표를 포함한 경영진의 몫이었다. 음원 사업자인 스포티파이 대비 시너지가 분명한 탓에 왓패드 창업자들도 네이버 합류를 더 희망했다는 후문이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국내에서 네이버보다 더 인터넷 플랫폼 비즈니스를 이해하고 시장 규모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곳은 없을 것”이라며 “기존 대기업들의 M&A과정에서 흔히 볼 수 있던 IB들이 만든 수백~수천장의 보고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연속된 보고가 없는 점이 네이버가 M&A시장에서 앞으로 보일 '파워'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차준호 기자 cha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