稅감면 美 40% vs 韓 3%…'세금 족쇄' 차고 뛰는 K반도체
세계 최대 반도체 기업 인텔은 지난달 23일 “미국 애리조나주에 200억달러(약 22조원)를 투자해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하면서 제프 리트너 CGO(최고대관담당 책임자)의 별도 성명을 함께 공개했다. 인텔은 미국 상원이 올해 초 통과시킨 ‘미국 반도체산업 지원법(CHIPS for America Act)’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은 뒤 말미에 “법안에 근거해 인텔에 투자비를 지원해달라”고 요구했다. 인텔의 대규모 투자는 연방정부 차원의 대규모 지원을 전제로 한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EU “반도체 투자비 40% 돌려준다”

稅감면 美 40% vs 韓 3%…'세금 족쇄' 차고 뛰는 K반도체
1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최근 미국 등 각국 정부의 반도체 기업 육성 정책이 속속 발표되고 있다. 과거 ‘은근하게’ 기업을 지원했던 것과 달리 노골적으로 자국 반도체 기업에 투자 인센티브를 주는 내용이 많다.

미국의 반도체산업 지원법은 파격적인 수준의 세제 혜택을 앞세우고 있다. 반도체 기업이 자국에 시설투자를 하면 투자액의 최대 40%를 법인세에서 공제한다. 2024년까지 200억달러(약 22조6000억원)의 시설투자를 계획 중인 인텔은 최대 80억달러(약 9조원) 범위에서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미국 정부는 법안을 위해 370억달러의 예산을 확보할 계획이다.

유럽연합(EU)은 역내 반도체 생산량을 세계 20% 수준까지 늘리기 위해 반도체 기업에 ‘투자액의 20~40%’를 보조금 형태로 돌려주는 정책을 마련하고 있다. 중국은 2030년까지 65㎚(나노미터, 1㎚=10억분의 1m) 이하 공정을 보유한 반도체 기업이 장비뿐만 아니라 원자재, 소모품 등을 수입할 때도 ‘무관세’를 적용하기로 했다고 지난달 29일 발표했다.

대만은 반도체 연구개발(R&D) 투자비의 15% 한도 안에서 세금을 깎아주고 기업이 반도체 인력을 육성할 때 보조금을 별도 지급한다. 오윤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대만 정부는 반도체 R&D와 인력 양성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며 “반도체 국산화를 위해 2억5000만대만달러 규모 기금을 조성, 패키징 공정 테스트 비용의 40%를 부담한다”고 설명했다.

한국 지원은 OECD ‘최저’ 수준

한국 정부도 반도체 지원에 손을 놓고 있는 건 아니다. 최근 정부는 2030년까지 지능형 반도체 개발에 총 1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하지만 반도체 대기업에 주는 세제 혜택은 초라한 수준이란 게 업계의 평가다. 시설투자세액공제가 대표적 사례다. 조세특례제한법에 따르면 대기업의 시설투자세액공제는 기본 1%다. 올해부터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 지능형 마이크로 센서 등 ‘신성장기술분야’ 시설투자에 대해 공제율을 3%로 올렸지만 미국, EU에 비해선 ‘새 발의 피’ 수준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25% 수준인 법인세율도 독일(15%) 대만(20%) 미국(21%) 일본(23.2%)보다 높다.

반도체 기업에 대한 정부 지원 역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소속 기업 중 ‘최저’ 수준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OECD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14~2018년 삼성전자의 매출에서 정부 보조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0.8%, SK하이닉스는 0.5%에 그쳤다. 같은 기간 TSMC, 인텔의 정부 보조금 비중은 각각 3.0%였다.

TSMC “113조원 투자…격차 벌릴 것”

경제계에선 반도체 패권 전쟁의 최일선에 있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한국 기업들이 ‘과도한 세금’이란 모래주머니를 차고 싸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 지원을 등에 업은 해외 경쟁업체들과의 기술 경쟁 등에서 뒤처질 것이란 우려도 끊이지 않고 있다. 안기현 반도체협회 전무는 “메모리 반도체 기술 격차가 줄면서 한국의 1등 리더십에 대한 우려가 생겼다”고 말했다.

최근 해외 업체들은 정부 지원을 등에 업고 공격적인 투자에 나서고 있다. 향후 3년간 1000억달러(약 113조원)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한 대만 TSMC가 대표적 사례다. 인텔, 마이크론, 웨스턴디지털 등 미국 반도체 기업들도 정부의 파격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투자를 늘리고 있다. 법인세 인하를 통해 최소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도 바로잡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홍대순 글로벌전략정책연구원장은 “정부가 글로벌 반도체 패권 경쟁을 ‘기업 간 대결구도’로 오판해선 안 된다”며 “다른 국가들은 정부가 판을 움직이고 있는데 기업이 알아서 대응하라는 식으로는 반도체산업 기반 자체를 잃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황정수/이수빈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