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반도체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미국의 ‘진격’이 거세다. 정부는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하고, 대표 메모리 기업인 마이크론은 낸드플래시 세계 2위 업체인 일본 키옥시아(옛 도시바메모리) 인수를 추진하는 등 전방위적으로 나서고 있다. 지난달 인텔의 파운드리 진출 선언에 이어 메모리에서도 영토를 넓히고 있다는 분석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8년간 2조3000억달러를 퍼붓는 대형 인프라 부양책을 발표하면서 반도체산업에 500억달러(약 56조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별도로 반도체와 첨단 컴퓨팅·통신·에너지·바이오기술을 집중 개발하는 국립과학재단 설립·운영에도 500억달러를 투입하겠다고 했다.

이날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은 복수의 관계자를 인용해 마이크론과 웨스턴디지털이 각각 키옥시아 인수를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키옥시아의 기업가치는 300억달러(약 33조9600억원) 수준으로 평가된다. 지분구조는 SK하이닉스가 참여한 한·미·일컨소시엄 49.9%, 도시바 40.2%, 호야 9.9%로 이뤄졌다.

국내 반도체업계는 충격에 빠졌다. 2002년부터 낸드플래시 시장 1위를 지켜온 삼성전자가 선두 자리를 뺏길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이크론(5위), 웨스턴디지털(3위) 중 어느 한 곳이 키옥시아를 인수하면 생산능력에서 삼성전자를 추월할 가능성이 높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인수 검토에는 미국 정부의 입김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업계에서는 2018년 약 4조원을 들여 키옥시아의 전환사채(지분 15% 상당)를 갖고 있는 SK하이닉스의 움직임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한편 블룸버그통신과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인수 협상에 별 진척이 없으며 키옥시아가 올여름 기업공개(IPO)를 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보도했다.

전문가들은 각국 정부가 국가의 명운을 걸고 반도체 전쟁을 벌이고 있는 만큼 한국도 발 빠른 지원책을 마련해 국내 산업을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소재 부품 장비 기업을 육성하기 위해 특별법을 제정한 것처럼 반도체 특별법이 필요하다”며 “환경평가 패스트트랙, 원스톱 행정 등을 통해 생산설비를 빠르게 지을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수빈 기자/워싱턴=주용석 특파원 ls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