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전셋값 인상' 논란으로 불명예 퇴진하면서 김 전 실장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의 운명이 극명하게 대비되고 있다.

진보 성향 학자 출신인 김 전 실장은 현 정부 개혁 정책의 '대표주자'였다. 문재인 대통령의 전폭적인 신임 속에 현 정부 초대 공정거래위원장,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승승장구했다. "재벌, 부자, 자산가의 기득권을 타파하자"는 개혁 정책을 진두지휘했다. 정책실장에서 물러나도 경제부총리 등으로 계속 중용될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반면 홍 부총리는 현 정부에서 국무조정실장, 기재부 장관 등 중책을 맡긴 했으나 개혁의 대상 중 하나인 '보수적 관료주의'를 대표하는 얼굴이란 한계가 있었다. 이 때문에 2019년부터 주요 정책 결정 과정에서 부총리가 배제되는 '패싱'이 공공연하게 일어났다. "경제 관료로서 자질 부족이 의심된다(이재명 경기지사)", "정말 나쁜 사람(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여권의 공격에 끊임없이 시달렸다. 작년부터 주기적으로 교체설이 나왔고 지난해 11월 사의를 표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 사람은 아직까지 '경제수장'의 자리를 지키고 있고 한 사람은 쫓기듯 공직에서 물러났다.

두 사람의 운명을 가른 건 '사인으로서의 처신'에 있었다. 김 전 실장은 작년 7월 29일 '전월세 5% 상한제' 시행 이틀 전에 자기 아파트 전세보증금을 14% 올려 계약했다. 보증금을 5% 이상 올리지 못하게 되기 전 서둘러 사익을 챙긴 것이다. 보증금 인상 시점은 해당 법안의 국무회의 처리 하루 전이기도 해 '미공개정보 이용'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는 공직자 지위를 이용한 '반칙'으로, 김 전 실장이 공직자로서 개혁하려 했던 기득권의 편법, 악습이기도 하다.

반면 홍 부총리는 '사익 챙기기'를 멀리 했다. 오히려 정부가 추진한 부동산 규제 정책의 피해자가 됐다. 그가 서울 마포구에 살던 전셋집은 작년말 집주인이 실거주하겠다며 집을 비우라고 통보해 졸지에 '전세 난민'이 됐다. 집주인이 정부가 도입한 세입자 계약갱신청구권 행사를 피하려 한 탓이다. 자가 보유하던 경기도 의왕시 아파트는 세입자가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해 매각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홍 부총리는 세입자에게 수천만원의 퇴로위로금을 줘 간신히 집을 팔았다. 그는 이제 세종시에 있는 주상복합 분양권 하나만 보유한 1주택자가 됐다.

결과적으로 홍 부총리는 도덕성을 갖춘 전문 관료라는 평판을 지키며 다음달 1일이면 최장수 기재부 장관으로 기록된다. 김 전 실장은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586세대 어두운 단면을 상징하는 대표 사례로 기억될 가능성이 크다. 현 정부가 경제·사회 개혁과 함께 그토록 강조하던 도덕성을, 기득권의 한 축인 기재부 고위관료는 모범적으로 실천한 반면 개혁의 기수였던 인물은 외면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하지만 홍 부총리의 사인으로서 모범적인 처신이 경제수장의 역할을 잘 수행했는지 여부까지 담보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현 정부의 경제 정책 실패 부작용이 커지고 있어 홍 부총리의 책임도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동산 시장의 혼란과 집값 급등, 2018~2020년 '양질의 일자리'인 전일제 근로자 195만명 감소가 보여주는 고용난 등이 대표적이다. LH(한국주택토지공사) 투기 사태도 일부 공직자의 개인적 일탈로만 치부하긴 어렵다.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지 못한 정부, 나아가 홍 부총리의 '방기'도 큰 문제였다는 지적이다.

이런 정책 실패와 더불어 최근 청와대 정책실장, 경제수석, 경제정책비서관 등 경제 라인이 일제히 교체되면서 홍 부총리도 4월 재·보궐 선거 이후엔 개각 대상이 되지 않겠냐는 전망이 나온다.

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