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지난달 18일 오후 서울 시내의 한 식당의 텅 빈 모습. 사진=뉴스1
사진은 지난달 18일 오후 서울 시내의 한 식당의 텅 빈 모습. 사진=뉴스1
기업 10곳 가운데 4곳은 번 돈으로 이자비용도 갚지 못하는 이른바 '좀비기업'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연 0.5%로 내린 데다 정부가 대출 원리금 상환유예 정책을 펴면서 좀비기업의 시장 퇴출이 더뎌진 결과다. 한은과 경제학계는 올 하반기에는 부실기업을 솎아내는 정책을 추진해 성장잠재력을 확충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폐업위기 자영업자 20만 육박

28일 한은의 ‘2021년 3월 금융안정상황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말 이자보상배율(영업이익÷이자비용)이 1배 미만인 기업 비중은 조사 대상인 상장·비상장 기업(2175개) 가운데 40.7%로 3.4%포인트 상승했다. 이자보상배율 1배 미만이라는 것은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2020년 상반기 금융안정보고서를 보면 이자보상배율 1배 미만인 기업 비중은 2016년 30.9%, 2017년 32.3%, 2018년 35.7%로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좀비 자영업자들도 급증했다. 한은에 따르면 폐업 위기에 놓인 자영업 가구(자영업자가 가구주인 가계)는 작년 말 19만2000가구로 지난해 3월 말(8만3000가구)보다 두 배가량으로 늘었다. 폐업 위기에 놓인 자영업 가구란 지난해 말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이 40%를 초과하는 동시에 모든 자산을 팔아도 차입금을 상환하기 어려운 가계를 말한다.

최근과 좀비기업과 폐업 위기 자영업자가 불어난 것은 코로나19 사태로 영업여건이 나빠진 것과 맞물린다. 여기에 한은·정부의 유동성 지원 정책으로 청산·폐업하지 않고 차입금 원리금·이자비용 상환 시점을 미룬 결과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4월부터 코로나19 지원을 이유로 중소기업·소상공인에 130조원에 달하는 대출 원리금·이자 상환을 유예하는 조치는 1년 5개월 연장한 것도 영향이 컸다.

한계기업의 퇴출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어음 부도율(어음 부도금액을 전체 어음 교환금액으로 나눈 비율)은 2019년에 비해 0.02%포인트 낮아진 0.06%를 기록했다. 지난해 부도율은 관련 통계가 시작된 1997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올해 2월에는 0.04%로 더 낮아졌다.

생산성 갉아먹는 좀비기업…"가을부터 퇴출돼야"

좀비기업이 빠르게 퇴출되지 못하면서 자원 배분이 왜곡되고 성장 여력을 갉아 먹고 있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예컨대 좀비기업에 대출이나 정부 지원, 인력이 몰리면서 그만큼 신산업으로 가야 하는 자원·자금 배분이 왜곡되고 있다는 것이다. 좀비기업은 전체 제조업의 경쟁력·노동생산성을 훼손하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좀비기업 노동생산성이 일반기업의 평균 48% 수준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은에 따르면 좀비기업 비중이 2010~2018년에 늘어나지 않았다면 일반기업의 노동생산성은 평균 1.01% 올랐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반기업의 유형자산 증가율과 고용증가율도 각각 0.5%포인트, 0.42%포인트 높아졌을 것으로 추산했다.

한국은행 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최근 발표한 '우리나라의 생산성 둔화요인과 개선방안' 보고서에서 "투명하고 신속한 구조조정으로 경쟁력이 떨어지는 기업은 조속히 퇴출해야 한다"며 "재무상황, 보유기술의 차별성을 비롯한 기업 특성을 반영한 구조조정 수단을 마련해야 한다"고 평가했다.

학계도 올해 하반기에 부실기업 퇴출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민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올가을에는 경기가 개선되면서 코로나19 사태로 가려진 좀비기업의 윤곽이 뚜렷해질 것"이라며 "정부의 금융지원 조치가 계속 이어질 수 없는 만큼 옥석 가리기에 나서야 한다"고 평가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앞으로 금융지원 정책의 연장이 불가능할 것"이라며 "산업은행과 시중은행이 올해 기업으로부터 빚을 회수하는 과정에서 구조조정의 속도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