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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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공시가격 현실화 정책은 종합부동산세율 인상, 부동산 정책 실패에 따른 급격한 주택가격 상승 등과 함께 납세자들에게 과도한 세금 부담을 안긴 주요 요소로 꼽힌다. 정부는 주택가격 시세가 크게 오른 올해에도 공시가격 현실화를 관철시켰다. 불 난 데 기름을 부은 격이란 지적이 많다. 공시가격 9억~15억원 공동주택의 현실화율(시세 반영률)을 작년 69.2%에서 올해 72.2%로 올렸다. 15억원 이상은 75.3%에서 78.3%로 인상했다. 9억원 이상 아파트가 많은 서울의 공시가격이 19.9%나 뛴 이유가 여기 있다.

정부가 공시가격 현실화 정책을 펴는 이유는 시세 대비 낮은 공시가격이 '비정상'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이를 시세 100%에 가깝게 올리는 게 "정의롭다"는 것이다. 작년 10월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이 했던 말이 이런 생각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당시 김 전 장관은 공시가격이 시세를 밑돌아 왔던 것을 “기본의 기본이 되는 것을 방치한 것”이라고 규정했다. 공시가격을 시세에 맞추는 작업을 “정상화를 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정의했다. 국토부는 올 1월 발표한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을 통해 현실화율을 100%로 올리는 것이 "법률상 적정가격의 취지에 부합하다"고 밝혔다. 정부는 공동주택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2030년까지 90%까지 올릴 방침이다.

'자산의 가치를 세금에 제대로 반영하기 위해 공시가격을 시세에 가깝게 맞춘다'는 말은 언뜻 정당해보인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는 공시가격의 본질을 오해한 데 따른 ‘잘못된 강박’이라고 지적한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과 교수(전 한국세무학회장)는 “공시가격도 세율과 마찬가지로 적정한 세금 부담을 산출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라며 “공시가격과 세율, 공정시장가액비율 등을 종합해서 적정한 보유세가 나오느냐가 중요한 것이지, 공시가격이 반드시 시세와 같아야 할 이유는 없다”고 지적했다.

가령 10억원짜리 주택은 보유세가 500만원이면 적정하다는 데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고 현재 세율이 10%, 공정시장가액비율은 50%라고 치자. 이때 공시가격은 시세의 10%만 돼도 보유세가 500만원 나온다. 만약 이때도 '공시가격=시세 100%'를 고집하면 재산세가 5000만원이 나온다.


선진국 실례를 보면 이런 점이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미국은 지방자치단체마다 재산세율과 과세표준 현실화율(한국의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자율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뉴욕은 재산세 명목세율은 19.99%로 높은 대신 과표 현실화율은 6%에 불과하다. 반면 워싱턴은 현실화율이 100%인 대신 명목세율은 0.85%로 낮다. 만약 세율이 높은 뉴욕에서 한국처럼 "자산 가치를 공시가격에 제대로 반영하겠다"며 현실화율을 100%로 올렸다가는 폭동 수준의 저항이 일어날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도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기계적으로 올릴 것이 아니라, 세율과 시장가격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 현재 보유세 부담이 적정하냐를 따지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

상당수 주택 보유자는 "최근 보유세가 너무 많이 올라 부담스럽다"고 호소하고 있다. 종부세 위헌 소송이 제기될 정도다. 위헌 소송을 주도하고 있는 이석연 전 법제처장은 "국민의 담세력을 훨씬 뛰어넘는 징벌적 수준의 증세가 이뤄지고 있다"며 "헌법에 명시된 신뢰보호원칙·공평과세원칙 위반, 재산권·거주이전의 자유 침해 등 소지가 크다"고 지적했다.

박훈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현재 보유세는 다주택자는 물론 1주택자까지 세금이 양도차익을 웃도는 수준이어서 납세자에게 재산 손실을 강제하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평소 보유세 강화론을 주장해온 학자다.

정부는 올해부터 2023년까지 공시가격 6억원 이하 주택에 대한 재산세율을 인하하기로 했다. 이는 "현재 보유세 부담이 높다는 걸 정부가 자인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지적이 나온다. 그런데 정부는 한편으로는 올해부터 공시가격 9억원 미만 주택도 공시가격 현실화 정책을 본격 적용하기로 했다. '병 주고 약 주는 격'이다.

정부 내부에서도 이런 정책에 대한 문제 제기가 나온다. 경제부처의 한 관계자는 "세율을 낮추면서 공시가격을 올린다는 건 명백한 모순"이라며 "세율이든 공시가격이든 '적정 세금 부담'이란 목표 하나를 놓고 정책을 펴야 하는데 공시가격은 '정의 실현' 차원에서 접근하니 이런 문제가 생긴 것"이라고 지적했다.

오히려 공시가격은 무리한 인상을 자제해야 할 합리적 이유가 있다. 공시가격은 보유세 외에도 건강보험료 등 각종 부담금과 기초연금 등 복지수급 기준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각 제도마다 적정 부담 수준과 적정 수급 기준이 있는데, 공시가격 하나를 올리면 다른 모든 제도에 영향을 줘 불합리한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지역가입자의 불만이 커지고 있는 건보료가 대표적이다. 주명룡 대한은퇴자협회 대표는 "정부가 공시가격을 대폭 올려 보유세는 물론 건보료 부담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 됐다는 분들이 많다"고 했다. 그는 "은퇴자는 집은 있어도 소득은 거의 없는 경우가 많아 부담이 더 크다"고 호소했다.

설령 정부가 아직도 적정 보유세 부과가 이뤄지지 않다고 판단해 공시가격을 올린다고 해도 문제는 있다. 현재 세금이 적정 수준이냐, 그래서 올리거나 낮춰야 하냐, 여부는 국민적 합의가 필요한 사안이다. 헌법 제59조가 "조세의 종목과 세율은 법률로 정한다"는 조세법률주의를 명시한 이유가 여기 있다. 세율은 국민의 조세부담능력을 의미하고, 국민의 조세 부담을 높이려면 국민의 합의가 필요한 국회 의결을 거치란 얘기다. 그런데 공시가격 인상은 사실상 세금 인상과 똑같은 효과를 내는데도 국회 동의가 필요없다. 국토부 장관 고시 사항이어서다.

홍기용 교수는 "공시가격 인상을 통한 보유세 부담 강화는 조세법률주의 위반 소지가 크다"며 "세 부담 강화는 국민의 합의를 거쳐야 한다는 기본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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