샴페인처럼 톡 쏘고 요구르트처럼 떠먹는 이토록 '힙'한 막걸리
1931년 설립한 독일 유명 스포츠카 제조회사가 있다. 일반 차량은 수명이 다하면 폐차장으로 가지만 이 제조사의 차만큼은 박물관으로 간다고 할 정도의 뛰어난 기술력을 자랑하는 슈퍼카 제조사 포르셰다. 포르셰는 1990년대 세계적인 경기불황이 이어지자 경영난에 허덕였다. 위기 탈출을 위해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카이엔’을 선보였다. 포르셰 하면 슈퍼카 911을 떠올리던 팬들의 비난이 쏟아졌다. 카이엔은 영국 신문사 텔레그래프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못생긴 자동차 100대’ 중 15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포르셰는 카이엔 덕분에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2000년 4만5000대에 불과했던 포르셰 자동차 판매량은 2020년 27만 대로 늘었다. 이 중 70%가 SUV 차량이었다. ‘포르셰=스포츠카’란 고정관념을 깬 혁신의 결과였다. 포르셰는 기존 SUV와 차별화했다. 일반적인 SUV는 차체가 높아 급격한 코너링 시 차체가 출렁거리고 고속 주행 시 땅에 착 달라붙는 승차감이 적었다.

포르셰는 이런 단점을 보완해 날카로운 핸들링, 코너링에서의 안정감, 5초대의 제로백 등 기존 SUV에서 찾아볼 수 없던 포르셰의 정체성을 SUV에 담았다.

최근 우리 전통주에서도 이런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기존엔 페트병 막걸리, 호리병 소주, 담금주, 차례주 등 뻔한 전통주뿐이었다. 하지만 최근 2030세대가 적극적으로 창업에 뛰어들면서 전통주산업이 바뀌고 있다. 전통주를 마시는 곳이 학사주점, 민속주점에서 전통주 레스토랑, 한식 주점, 전통주 바 등으로 확대됐다. 한복을 입은 명인이 빚는 게 아니라 젊은 세대가 만들고 있다. 전통주 소믈리에도 등장했다.

대표적인 예가 울산의 복순도가다. 생막걸리는 특유의 터짐 현상 때문에 고급화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던 10년 전 오히려 터지는 현상을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로 마케팅해 샴페인 애호가의 눈길을 끌었다. 잘못 열면 터질 수 있다는 아슬아슬함이 오히려 재미가 됐다. ‘샴페인 막걸리’란 별명도 붙었다.

요구르트처럼 떠먹는 막걸리도 화제다. 안동 장씨가 기록한 ‘음식디미방’ 등에 레시피가 나와 있는 이화주를 용인에 있는 양조장 술샘이 수저로 떠먹는 형태로 만들었다. 떠먹는 술을 과일에 찍어 먹기도 하고, 빵에 발라먹기도 했다. 물과 꿀을 넣어 한국식 칵테일로 즐기기도 했다. 최근에 등장한 방배동 서울양조장의 막걸리 ‘서울’(사진)은 크래프트 막걸리라는 콘셉트로 관심이 높아졌다. 100% 쌀로 만든 이 제품은 열대과일향이 난다. 막걸리가 보유한 투명함과 탁함을 오묘하게 연결, 청주와 탁주 모두 디켄터로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익숙한 전통주에 새로움을 입힌 다양한 시도들이다.

전통주의 변화와 포르셰 카이엔을 관통하는 철학은 ‘본질을 살리되 변화를 추구한다(Change it, but do not change it)’는 것이다. ‘혁신(革新)’이란 단어를 가장 잘 설명하는 문구로 마케팅 전략을 짤 때 늘 유념해야 한다.

명욱 < 주류문화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