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순각 한양대 실내건축디자인학 교수가 서울 이태원동 복합건물 ‘리틀발코니’를 보며 그만의 건축 철학을 설명하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장순각 한양대 실내건축디자인학 교수가 서울 이태원동 복합건물 ‘리틀발코니’를 보며 그만의 건축 철학을 설명하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서울 이태원 경리단길 뒤편 언덕길을 한참 오르다보면 30~40년 된 빨간 벽돌을 두른 다세대주택 사이로 한 건물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각기 다른 크기의 상자를 여럿 쌓아올린 듯한 독특한 외관을 뽐내고 있어서다. 지하 1층~지상 4층으로 이뤄진 이 건물의 이름은 ‘리틀발코니’. 다섯 개의 블록을 절묘하게 엇갈려 쌓은 모습이다. 아래층 지붕은 자연스레 위층 발코니가 돼 매력적인 공간을 선사한다. 건물의 내부와 외부를 연결하는 접점이 되는 발코니에 발을 내딛는 순간 남산서울타워가 손에 잡힐 듯 눈앞에 펼쳐진다. 리틀발코니는 장순각 한양대 실내건축디자인학 교수의 건축 철학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장 교수는 “건축은 공간의 목적에 따른 기능에 집중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능 중심 설계에 건축적 상상력을 발휘하면 일상 속에 아름다움을 구현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기능이 형태를 만든다’는 디자인의 명제를 최우선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공간의 기능을 살린다”

2019년 완공된 리틀발코니는 북서쪽으로 남산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언덕 위에 세워진 주거형 복합건물이다. 3~4층은 복층형 주거공간이며, 2층은 사진 스튜디오, 1층은 카페로 구성됐다. 각 층의 기능에 최적화해 설계됐다. 장 교수는 “주거공간이 중심이 된 건물을 설계할 땐 일상 자체가 건축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주거공간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않으면 그곳에 살 사람들의 일상이 불편해진다”는 설명이다. 너무 디자인 중심으로 아름답게만 설계해 건축주의 일상에 불편함을 초래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리틀발코니는 각 층의 기능을 우선 고려해 설계했다. 3층은 주방, 거실, 다이닝룸 등을 중심으로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게 디자인했다. 1층 카페는 주방 공간과 테이블·의자를 놓을 공간으로 구분해 꾸며졌다. 층마다 층고를 달리하면서 다양한 부피감을 구현했다. 3층과 4층은 다이닝룸의 공간을 뚫어 개방성을 극대화했다.

이렇게 층마다 기능 중심으로 설계한 뒤 각각의 ‘덩어리’(공간)를 엇갈려 쌓아올렸다. 2층의 밑면을 정사각형으로 설계한 게 ‘신의 한 수’였다. 1층과 3층 사이에 밑면이 정사각형인 2층을 넣으니 층마다 발코니가 생겨났다. 장 교수는 “공간을 더 유용하게 쓸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어느 층에서나 발코니에서 남산서울타워의 전경을 볼 수 있는 것도 이 건물의 매력 포인트다. 그는 “쌓아올리는 과정에서 조금씩 조정해 가며 비례를 맞춰 완성체를 만들었을 때 건축가로서 희열이 크다”고 했다.

기능을 강조하면서 건축적 상상력도 가미했다. 주거공간인 3층 입구에 들어서면 자연석을 수직으로 올린 계단 벽을 만난다. 이 자연석벽을 따라 올라가면 층고가 점점 높아지고 어느덧 5층 루프톱에 이르게 된다.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 펼쳐지는 남산 전경은 가슴을 트이게 한다. 장 교수는 “수직으로 건물을 올라가는 ‘건축적 산책’의 끝을 루프톱에서 바라보는 전경으로 설계했다”고 말했다.

수직적·수평적 쌓아 올리기

박영규 작가가 찍은 ‘10큐브 남산’.
박영규 작가가 찍은 ‘10큐브 남산’.
장 교수는 이 같은 쌓아올리기를 다른 건축에도 적용하고 있다. 리틀발코니 인근 이태원 언덕 한쪽에 올린 ‘10큐브 남산’은 10개의 주거 공간을 쌓아올린 독창적인 구조의 다세대주택이다. 1인 가구의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해 가구마다 다른 특성을 부여해 설계했다. 저마다 남산을 향하고 있지만 각각의 각도를 틀어 사생활을 보호한다. 층고도 각기 다르고 각각의 발코니 형태를 달리해 차별적인 개성을 가진 10개 공간을 창조했다.

도심에선 공간이 좁아 수직으로 쌓아올리기를 택했다면 공간이 넓은 제주에선 수평으로 쌓는 방식을 사용했다. 서귀포시 남원읍에 자리 잡고 있는 ‘오드투 갤러리’는 제주 전통 항아리를 모티브로 주거공간과 전시공간을 복합적으로 조성했다. 둥근 항아리 모양 건물을 중심으로 박스 형태의 공간들을 수평 배치했다. 장 교수는 “각각의 기능을 중심으로 설계한 ‘덩어리’를 깔았다”며 “정수 기능을 갖고 있는 공간을 한쪽 끝에 수직으로 세워 변화를 줬다”고 했다.

장 교수는 프랑스 파리에서 유학한 뒤 21년째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동시에 디자인회사 제이이즈워킹에서 설계 실무도 병행하고 있다. 하나은행, KT 등 다양한 기업의 주문을 받아 설계 작업을 했다. 레드닷, IF, IDEA 디자인어워드 등 세계 3대 디자인 상을 모두 수상하며 실력을 인정받은 건축가다. “대규모 기업 프로젝트는 이제 후학들에게 물려줄 때가 된 것 같네요. 100년 이상 된 교회를 리모델링하는 것과 같은 소규모 프로젝트에 집중하고 싶어요. 저만의 색깔을 담은 실험적인 건축을 해보려고 합니다.”

서기열 기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