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현장에 삼표 특수 레미콘이 타설중인 장면. 삼표 제공
건설현장에 삼표 특수 레미콘이 타설중인 장면. 삼표 제공
‘주52시간 근무제, 사고·환경 규제 강화, 잦은 파업, 이상 한파, 소음관련 민원…’

국내 건설사들이 공사 현장에서 헤쳐나가야할 변수들이 점차 늘면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그렇다고 환경이 바뀌길 기다리기만 할 수도 없는 노릇. 건설기초자재 선두기업인 삼표그룹은 이러한 장벽들을 기술로 뛰어넘은 특수 콘크리트 신제품을 잇따라 내놓으면서 건설사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콘크리트만 바꿨더니 공기가 단축되고 영하권 날씨에도 공사가 가능해지며, 공사 소음과 인명 사고도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삼표의 특수 콘크리트 제품들은 최근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공사 현장을 비롯해 현대건설, SK건설 등 건설 현장에 잇따라 투입되면서 판매가 전년보다 2.5배로 급증했다. 각종 규제와 노조 갈등에 따른 파업, 이상 기후에도 판매가 더 늘어난 것이다. 전방산업인 건설 업황이 가라앉으면서 전국 레미콘 출하량은 2017년부터 계속 내리막길인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석홍 삼표산업 부사장은 “올해 판매 목표치는 지난해의 3배 수준”이라고 밝혔다.

아시아 최고의 '얼지않는 레미콘' 기술 타설 기간도 2분의 1로 단축

올들어 50인 이상 기업까지 주52시간 근무제가 확대 시행되면서 대부분 공사 현장에선 줄어든 작업시간에 따른 공기 지연을 피하기위해 '시간과의 싸움'을 벌이고 있다. 삼표는 ‘빨리 굳는 콘크리트’로 승부수를 던졌다. 보통 골조 공사 과정에선 철근을 배치한 뒤, 거푸집을 설치하고 나면 굳지 않은 상태의 콘크리트(레미콘)를 안에 붓는 레미콘 타설 작업이 이뤄진다. 레미콘은 열을 내며 서서히 강도가 높아지는 ‘양생’과정을 거쳐 콘크리트로 굳어진다. 보통 일반 레미콘은 2~3일의 양생 기간이 필요하지만 삼표의 특수 콘크리트 ‘블루콘 스피드’는 18시간만에 굳어 버린다. 삼표에 따르면 일반 콘크리트를 이용해 아파트 1개 층 골조 공사를 마치는 데 보통 10일 정도 소요된다. 하지만 이 제품을 사용하면 5일 밖에 안 걸려 2분의 1수준으로 단축된다. 삼표가 2018년 개발해 2019년 국내 첫 상용화한 이 제품은 지난해 현대건설, 현대엔지니어링, SK건설 등 대형건설사 공사 현장에 본격 공급되면서 판매량이 전년의 2배 수준으로 뛰었다.

보통 영하권 날씨에선 레미콘이 굳지 않고 내부 수분이 얼기 때문에 레미콘 타설이 불가능하다. 다만 갈탄을 태워 레미콘의 온도를 인위적으로 높이면 현장 작업이 가능하지만 갈탄 연소에 따른 근로자 질식 사고와 대기오염 문제가 남게 된다. 하지만 ‘역대급 한파’를 기록한 지난 겨울에도 삼표의 특수 콘크리트는 건설 현장에서 날개 돋힌 듯 팔렸다. 영하 10도의 날씨에도 얼지 않는 ‘블루콘 윈터’ 덕분에 중단없이 공사를 계속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판매량은 전년의 2.5배 수준이다. 이로인해 건설사들은 공정 속도가 예년에 비해 20~30%가량 빨라졌고 아파트를 지을 때 수천만원의 원가를 절감할 수 있었다고 한다. 국내에서 영하급 날씨에도 공사 현장에서 사용이 가능한 레미콘은 이 제품이 국내 유일하다. 관련 기술 면에선 아시아 최고 수준이라는 게 삼표측 설명이다. 이석홍 부사장은 “지난 겨울, 시장 수요가 너무 많아 이에 대응할 기술 인력이 모자를 정도였다”며 "각종 규제에 파업도 늘고 이상기후까지 겹치는 등 건설 현장의 공기지연 요인이 늘어 수요가 큰 제품"이라고 소개했다.
경기도 광주 삼표 기술연구소에서 직원들이 영하 10도에도 얼지않는 특수 콘크리트 ‘블루콘 윈터’ 시제품 품질을 점검하고 있다.
경기도 광주 삼표 기술연구소에서 직원들이 영하 10도에도 얼지않는 특수 콘크리트 ‘블루콘 윈터’ 시제품 품질을 점검하고 있다.
도심지 건설 현장의 또 다른 리스크는 주변 주택가의 소음 민원 제기다. 민원 대부분은 레미콘 타설시 굉음(90㏈)을 내는 바이브레이터 때문에 발생하는 사례가 많다. 바이브레이터란 레미콘 타설시 내부 콘크리트 조직상 공기 기포가 남지않도록 빈틈없이 눌러 채워주는 역할을 하는 장치다. 그러나 삼표의 ‘블루콘 셀프’는 바이브레이터가 필요 없는 특수 콘크리트로 현장 소음을 20%가량 줄였다. 이 제품은 높은 유동성을 가져 일반 레미콘은 못들어가는 촘촘한 철근 사이도 모두 비집고 들어가 공간을 스스로 채운다. 복잡하고 정밀한 구조의 건물일수록 활용도가 높다. 이 제품은 최근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건설 현장에 상당량 공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레미콘 타설시 다지는 작업이 필요가 없어 인건비도 아낄 수 있다.

삼표는 블루콘 스피드·윈터·셀프 등 특수콘크리트와 관련해 5개의 특허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모두 삼표가 지난해 최초로 상업화한 제품들이다. 이밖에 아파트 지하주차장 바닥의 잦은 균열 문제를 해결한 특수 콘크리트 ‘블루콘 플로어’도 인기가 높았다. 아파트 입주민들의 잦은 민원제기로 고급 아파트를 짓는 대형건설사들의 수요가 커지면서 판매량이 전년의 10배가 넘었다고 삼표측은 밝혔다.
현대건설 CTO 출신인 삼표산업 이석홍 부사장
현대건설 CTO 출신인 삼표산업 이석홍 부사장
삼표가 이같은 특수 콘크리트 개발에 나선 것은 건설 경기가 하락하고 있는 가운데 운송차주 파업에 따른 운반비 인상, 주52시간 근무제 확대 시행 등 수익성 악화 요인들이 갈수록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도원 삼표그룹 회장은 이러한 난국을 타개하고자 손실을 각오하면서 특수 콘크리트 기술 개발에 지난 5년간 100억원 가량을 쏟아부었다. 현대건설 최고기술경영자(CTO) 출신인 이석홍 부사장을 2019년 영입한 것도 정 회장의 결단이었다. 삼표가 판매하는 특수 콘크리트 4종의 가격은 일반 제품보다 최고 1.3배 수준으로 높지만 판매가 급증해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석홍 부사장은 "올해 특수 콘크리트 관련 예상 매출은 수백억원 수준이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수천억원 수준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삼표가 현재 개발에 매진하고 있는 미래형 기술은 일반 콘크리트보다 강도가 10대 높은 초고강도 콘크리트(UHPC)다. 이 부사장은 "벙커버스터(벙커 관통 폭탄)도 못 뚫을 정도의 강도"라며 "높은 강도를 구현하기위해 벽을 두껍게 만들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환경도 살리는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