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광화문글판 특별판은 방탄소년단(BTS)의 노래 ‘런(Run)’ 가사를 실었다.   교보생명 제공
지난해 8월 광화문글판 특별판은 방탄소년단(BTS)의 노래 ‘런(Run)’ 가사를 실었다. 교보생명 제공
서울의 중심 광화문 사거리를 지날 때면 누구나 한 번쯤 눈길이 가는 곳이 있다. 교보생명빌딩 외벽에 걸린 가로 20m, 세로 8m의 ‘광화문글판’이다. 길어야 서른 자를 넘지 않는 짧은 글귀로 바쁜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때론 웃음을, 때론 위로를 건네는 공간이다.

광화문글판은 1991년 1월 고(故) 신용호 교보생명 창업주의 제안으로 시작했다. 첫 문안은 “우리 모두 함께 뭉쳐 경제활력 다시 찾자”. 초창기 문구들은 지금 같은 느낌이 아니었다. “훌륭한 결과는 훌륭한 시작에서 생긴다” “개미처럼 모아라, 여름은 길지 않다” 등 계몽적 성격의 표어나 격언이 많았다.

감성적인 문구가 나오기 시작한 것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부터. 고통과 절망을 겪는 국민이 많아지자 신 창업주는 “기업 홍보는 생각하지 말고, 시민들에게 위안을 주자”고 했다. 그해 봄 교보생명빌딩 외벽에는 고은 시인의 작품 ‘낯선 곳’에서 인용한 “떠나라 낯선 곳으로, 그대 하루하루의 낡은 반복으로부터”라는 구절이 걸렸다. 광화문글판이 시민들 입에 본격적으로 오르내리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2004년에는 디자인 측면에서도 실험적인 시도에 나섰다. 문안의 의미가 더욱 잘 전달될 수 있도록 글씨체와 배경 등을 멋지게 꾸몄다. 광화문글판 자체가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거듭나게 된 계기였다.

1년에 네 번 옷을 갈아입는 광화문글판의 문구는 시인, 소설가, 카피라이터, 언론인 등으로 구성된 ‘광화문글판 문안선정위원회’와 시민 참여를 통해 선정된다. 교보생명 홈페이지에 올라온 시민들의 공모작과 선정위원들의 추천작을 놓고 치열한 토론과 투표를 거친다.

지금까지 이 글판을 수놓은 글귀는 90편이 넘는다. 공자, 헤르만 헤세, 파블로 네루다, 서정주, 도종환, 김용택 등 70명에 이르는 동서고금 현인과 시인의 작품이 실렸다. 광화문글판이 서른 살을 맞았던 지난해에는 방탄소년단(BTS)의 노래 가사를 발췌한 ‘특별편’으로 국내외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교보생명 측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어떤 글귀가 등장할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을 만큼 광화문글판은 하나의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고 소개했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