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만든 틀을 거부한 '마이웨이 CEO'

"전임자에게 묻지마라"
"책임감 있는 리더만 따른다"
일러스트=김선우 기자  naeeju@hankyung.com

일러스트=김선우 기자 naeeju@hankyung.com

“전임자들에게 묻지 좀 말라.”

최창수 NH농협손해보험 대표가 직원들에게 새로운 임무를 맡길 때마다 강조하는 말이다. 남들이 세운 ‘업무의 틀’에 갇혀 매너리즘에 빠지지 말라는 이유에서다. 그는 “업무가 막히면 예전 담당자에게 전화부터 거는 사람이 많다”며 “자기만의 고민을 하지 않으면 고통은 없겠지만 창의적인 해법도 나올 수 없다”고 말했다. 전임자에게 조언을 구하려다 최 대표에게 걸린 직원들은 어김없이 “실수도 해보고 깨져봐야 한다”는 핀잔을 들어야 했다.
전임자에게 물으면 매너리즘에 빠져
최 대표는 농협에 입사한 이후 전임자에게 뭔가를 묻는 일이 거의 없었다고 했다. 규정과 관련한 질문은 더더욱 드물었다. 그는 농협금융그룹에서 손꼽히는 ‘기획전략통’으로 평가받은 배경을 혼자서 애를 쓰는 습관에서 찾는다. ‘맨땅에 헤딩’하는 과정에서 유연한 사고를 하게 됐다는 얘기다.

‘스스로 해법을 찾자’는 마음가짐은 1987년 1월 농협 전남 함평군지부에서 처음으로 실무를 맡을 때부터 시작됐다. 반강제적인 환경에서였다. 신입사원 연수를 마치고 공제(보험) 업무를 맡았는데 담당자가 회사를 떠나면서 누구에게도 도움을 구할 수가 없었다.

“보험 관련 규정을 읽고 또 읽으며 체계와 원리를 깨달았더니 어떤 문제가 생겨도 해결책이 머릿속에 떠오르더군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다음 부서에도 전임자가 없어서 남에게 의존하지 않는 업무 스타일을 갖추게 됐습니다.”

2019년 말 농협금융그룹 임원추천위원회에서 손해보험 대표 후보로 면접을 볼 때였다. 면접관이 “보험부문 경력이 별로 없다”고 지적하자 최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어차피 저는 전임자의 길을 따라가지 않고 새로운 길을 만들 겁니다.”
“지역조합 통폐합 업무로 많이 힘들었다”
최 대표는 1997년 농협중앙회 종합기획조정팀 과장으로 기획실에 입성해 경영전략팀장 미래전략혁신팀장 전략기획팀장을 거치는 등 기획 업무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기획조정팀 차장으로 있을 때 농협과 국회, 정부를 연결해주는 대관 업무와 농협중앙회장의 연설문을 작성하는 역할을 주로 맡았다”며 “4급 직원에게 농협의 전체적인 모습을 조망할 기회는 정말 소중했다”고 말했다.

당시 농협이 가장 많이 상대한 정부 부처 가운데 한 곳은 기획예산처였다. 최 대표가 잊지 못하는 농림예산담당 서기관이 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다. “농림 예산 비중이 지금보다 훨씬 컸던 때여서 찾아오는 사람도 많고 바빴을 테지만 ‘홍 서기관’이 따뜻하게 맞아주던 일이 기억나요. 방문규 한국수출입은행장이 후임으로 왔는데 그분도 친절하게 대해주셨습니다.”

물론 만나기 곤혹스러운 사람들도 있었다. 조합경영진단국 경영평가관리팀장으로 일할 때였다. 최 대표는 1400여 개 지역조합을 평가해서 사업성이 떨어지거나 자산건전성이 나쁘다는 등의 이유로 존속이 어렵다고 판단되면 다른 곳과 통폐합하는 ‘칼잡이’였다. 자신들의 조합을 없애려는 그가 좋게 보일 리 없었다. 그는 “싸우기도 참 많이 했다”고 했다.

최 대표는 “일단 기준에 못 미친다는 평가를 받으면 합병을 100% 유도했다”며 “다른 팀장이 그쪽 논리에 설득 당하고 오면 다시 찾아가서 통합을 마무리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당시 치통이 심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일했다. “잇몸에서 고름을 짜내고 염증약을 먹어가면서 통폐합 대상 조합원들과 소주를 마셨어요.”
밤 10시 소주 한 병씩 마시고 퇴근
농협의 금융(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을 나누는 ‘신경분리’ 실무 팀장으로 일할 때는 2년간 하루도 쉬지 않았다. 사업구조 개편안을 고민하면서 노동조합의 반대도 넘어야 했다. 매일 야근이었다. 밤 10시가 되면 팀원들과 소주를 한 병씩 500mL 맥주잔에 부어서 들이켠 뒤에 퇴근했다.

어느날 저녁 술자리에서 소리 내 운 까닭은 너무나 분해서였다. “신경분리 총책임을 담당하던 분이 저녁을 사주겠다더니 사람들 앞에서 ‘최 팀장 때문에 곤혹스러워졌다’며 혼을 내는 겁니다. 농협중앙회 이사들에게 신경분리를 설명하는 자리에 자신을 불러 난처하게 했다는 이유였어요. 그동안 고생한 것들이 무의미한 것처럼 느껴져 정말 서러웠습니다.”

최 대표는 그때 리더의 책임감을 진지하게 생각했다. “리더를 맡으면 누구에게도 책임을 떠넘기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사람들은 책임감 있는 리더만을 따른다는 사실도 절감했고요.” 분루를 삼키긴 했지만 최 대표는 신경분리 작업에서 고생했다는 점을 인정받아 승진할 수 있었다.
다음을 생각하고 준비하는 습관
승진 발탁 인사로 함평군지부 금융지점장에 배치될 때는 탄탄대로가 기다릴 것 같았지만 시련이 찾아왔다. 함평군 금융지점장으로 조금 지내다 금방 농협중앙회로 돌아올 것으로 기대했지만 아니었다. 일선 지점 근무가 6년간 계속됐다. 조직에 대한 실망감과 서글픔에 잠이 안 오던 시절이었다. ‘여기에서 끝이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몸은 달랐다. 신문 스크랩을 계속했고 한 달에 다섯 권씩 책을 읽었다. “영업점에 있으면서 서울의 어떤 구(區)에서는 주유카드 사업권을 땄고, 지방에서는 모 은행으로부터 어느 학교 금고 사업을 뺏어오기도 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다음을 생각하고 준비하는 습관이 몸에 밴 것 같아요.”

최 대표는 2016년 미래전략부 경영전략 태스크포스(TF)단장으로 농협중앙회에 복귀했다. 4년간 농협중앙회장 비서실장, 농협은행 경영기획부문장(수석부행장), 농협금융지주 부사장을 거쳐 지금 이 자리에 서게 됐다. 취임 1년 만에 다산금융상도 받았다. 기업체질 개선에 따른 실적 증가, 디지털 기반 보험사로의 전환 노력을 높이 평가받았다. “전례를 따르기보다 새로운 시도를 한 결과”라고 했다.

그는 야구에서 경영 전략의 힌트를 찾는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공격 루트를 찾아내고 리스크를 줄이는 방식이 보험과 매우 닮았어요. 보험도 온갖 숫자 가운데서 이익을 찾는 게임이거든요. 그리고 저는 야구에서 큰 교훈을 하나 얻었습니다. 희생플레이에 적절한 보상을 해준다는 점이죠. 희생번트나 희생플라이가 되면 득점에 도움을 줬다는 사실만 인정하고 타율을 계산할 때는 손해가 없잖아요.”

■ 최창수 대표는

△1961년 전남 나주 출생
△광주 살레시오고, 조선대 중문학과 졸업
△1986년 농협중앙회 입사
△2007년 미래전략혁신팀장
△2009년 기획실 구조개혁팀장
△2016년 미래전략부 경영전략 TF단장
△2016년 농협중앙회장 비서실장
△2018년 농협은행 경영기획부문장(부행장)
△2019년 농협금융지주 경영기획부문장(부사장)
△2020년 NH농협손해보험 대표


박종서 기자 cosm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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