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 정주영 타계 20주기

중동 진출·서산간척지·경부고속도로
울산 모래톱에 지은 조선소와 포니까지

상상을 현실로 만든 불굴의 도전정신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회복력'

'정주영 정신'으로 정주영을 넘어서는 게
지금, 여기, 우리
아산의 유산을 누리는 이들의 '의무'
1984년 충남 서산 간척지 조성 공사 현장에서 물막이 공사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아산사회복지재단 제공

1984년 충남 서산 간척지 조성 공사 현장에서 물막이 공사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아산사회복지재단 제공

현대 창업주인 정주영 명예회장은 2001년 3월 21일 영면했다. 오는 21일이면 세상을 떠난 지 꼭 20년이다. 세상은 아직도 그를 기억하고 추모한다. 아산사회복지재단이 최근 정 명예회장의 자서전 《이 땅에 태어나서》 독후감 대회를 열었는데 6300여 건이 접수됐다. 그의 기업가 정신은 여전히 많은 기업인은 물론 예비창업자와 젊은 학생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그의 실행력, 상상력, 회복력은 세계적 기업가들과 견줘도 탁월하다는 평가를 듣는다.

“이봐, 해 봤어?” 이 한마디로 압축되는 정 명예회장의 실행력은 남달랐다. 혹자는 나이키의 유명 광고 카피 ‘저스트 두 잇(Just Do It)’을 40~50년 먼저 실행했다고 한다. 실제 그랬다. 대부분의 사람이 지레 못 한다고 손사래 치며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을 그는 늘 했다. 울산 모래톱에 조선소를 지은 것이 대표 사례다. 박정희 정부는 1966년 정 명예회장에게 “조선소를 세우라”고 지시했다. 불가능한 얘기였다. 기술, 자본, 인력 등 어느 것 하나 갖춰진 게 없었다.

하지만 정 명예회장은 흔쾌히 이 일에 달려들었다. 있지도 않은 조선소에서 만들 배를 제시하고 선주를 구했다. 이렇게 수주한 것을 들고 해외 은행에서 조선소 건설에 필요한 돈을 빌렸다. 500원짜리 지폐에 그려진 거북선을 보여주며 한국 조선산업의 가능성을 믿어달라고 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늘 이런 식이었다. 현대건설의 중동 신화, 자동차산업 진출, 서산 간척지 조성 등 도저히 가능할 것 같지 않았던 일들을 해냈다.

정 명예회장은 ‘생각중독자’였다. 스스로 “밥풀 한 알만 한 생각이 씨앗으로 자리 잡으면 그것을 키워 커다란 일거리로 확대하는 것이 특기”라고 했다. 또 “잠잘 때 빼곤 생각할 수 있는 시간에 끊임없이 생각한다”고도 했다. 그의 상상력은 현실로 이뤄졌다. 1970년대 사우디아라비아 산업항 주베일 공사를 할 때였다. 정 명예회장은 공기를 줄이고 단가를 낮추는 데 상상력을 동원했다. 해상 구조물 고정 시 필요한 건물 10층 높이의 거대한 재킷을 울산 조선소에서 제작해 현장에선 레고처럼 조립만 했다. 약 400t에 달하는 철구조물 89개를 미리 만든 뒤 대형 바지선으로 1만2000㎞에 달하는 바닷길을 건너 사우디아라비아 항만까지 운반한다는 그의 발상은 현장에서 제작하고 설치하던 재킷 공사의 개념을 통째로 바꿨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했지만 완벽하게 해냈다. 서산 간척지를 조성할 때도 상상력이 발휘됐다. 6400m 방조제 공사 중 마지막 270m 물막이가 거센 물살 탓에 마무리되지 않자 고철로 쓰려고 사뒀던 유조선(길이 322m)을 끌어다 가라앉혀 물줄기를 막는 방법으로 간척지를 완성했다.

정 명예회장은 실패에 강했다. 좀처럼 무너지지 않고 오뚝이처럼 버텨 위기를 기회로 바꾸곤 했다. 요즘 경영학 용어로 하면 ‘회복력(resilience)’이 남달랐다. 1953년 고령교 공사는 정 명예회장에게 악몽이었다. 공사는 예상보다 더뎠고 임금은 빠르게 올랐다. 공사비를 감당하지 못 해 자동차 공장과 형제들 집까지 팔았다. 경제계에선 정 명예회장의 ‘기업가 DNA’가 제조업 강국과 유니콘기업 탄생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서산 간척지는 서산특구를 중심으로 한 기업도시로 발전해 자율주행차와 전기차 등 미래 모빌리티 산업단지로 탈바꿈할 예정이다.

정 명예회장 타계 20주기를 앞두고 후배 경영자들이 ‘큰일’을 했다. 창업 갓 10년을 넘긴 스타트업 쿠팡이 미국 뉴욕증시에 상장, 한때 시가총액 100조원을 넘겼다. 네이버, 카카오 등도 100조원을 넘길 유력한 후보로 꼽힌다. 정 명예회장 등 선대 기업인이 남긴 산업화란 유산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한정화 아산나눔재단 이사장은 “선대 기업인들이 어떻게 해서든 잘사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면, 지금의 경영자들은 세상을 뒤바꿀 만한 사업을 구상하고 실행하고 있다”고 했다. 정 명예회장을 뛰어넘는 젊은 기업가를 많이 배출해 내는 것이 현재를 사는 우리의 과제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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