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가 단체교섭 과정에서 회사의 특정 임원이 퇴직하는 것을 합의 조건으로 단체협약 부속 합의서에 서명했다면, 이 협약은 유효하고 회사는 합의 내용대로 이행해야 한다는 판결이 지난달 5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나왔다.

회사 측은 사용자의 인사권에 해당하는 사항은 원칙적으로 단체교섭 대상이 아닌 데다, 회사 측 교섭권을 위임받은 노무 이사가 노조 위원장과 결탁해 체결한 합의여서 무효라고 항변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단체 교섭 담당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아 판결문에 소개된 대법원 판례와 함께 자세히 살펴본다.
“특정 임원 퇴사해야...” 인사권 제한하는 단체협약도 유효
전국관광서비스노동조합연맹 소속의 S사 노조 위원장 K씨는 회사 측 노무 이사와 2018년 10월 단체협약서에 서명했다. 이날 합의된 임단협에는 비공개 부속 합의서가 더 있었다. 회사 측 총지배인 C모씨가 퇴사하지 않으면 임단협 합의 자체를 무효로 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부속 합의서 내용과는 달리 C모씨가 퇴사하지 않고 계속 근무하자 노조 위원장 K씨는 부속 합의서를 근거로 임단협 합의는 무효라며 회사 측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회사는 K씨의 이 같은 주장을 반박했다. 첫째, 사용자의 고유한 인사결정권에 관한 사항으로 단체교섭 대상이 될 수 없고 둘째, 근로조건과 무관한 내용이어서 부속 합의서는 단체협약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또 회사 측 교섭 대리인이던 노무 이사가 노조 위원장 K씨와 결탁해서 ‘특정 임원 퇴사’에 합의한 것은 K씨의 사적 이익을 위한 것이므로 이 합의는 사회질서에 어긋나 무효라고도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회사 측의 주장을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서울중앙지법은 대법원 판례를 인용했다.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 포레시아배기컨트롤시스템코리아 사건에 대해 2014년 3월 대법원이 내린 판결이다. 정리해고나 조직 통폐합 등 경영권에 관한 사항은 원칙적으로 단체교섭 대상은 아니지만, 노사가 임의로 단체협약을 체결하는 것은 가능하고, 이 협약은 강행법규나 사회질서에 위배되지 않는 한 효력이 인정된다는 게 판결 요지다.

지난해 8월, 기아자동차 사건에서 내린 대법원 판결도 언급됐다. 산재 유가족을 특별 채용하기로 한 단체협약 조항은 사용자의 채용 권한에 해당하는 사항이지만 노사가 합의한 이상 유효하다는 판결이다.

사용자의 인사권을 제한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특정 임원이 퇴사하기로 합의하는 경우는 이번 서울중앙지법 판결이 거의 유일한 것으로 보인다는 게 노동법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임단협 교섭에 직접 참여하는 업무 담당자들은 눈여겨봐 둘만 하다.
최종석 전문위원 js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