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자동차 판매 1위 폭스바겐이 ‘배터리 독립’을 선언했다. 한국 중국 일본에 편중된 지금의 배터리 공급망에 의존해서는 급팽창하는 전기차 시장의 주도권 확보가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전기차 시장을 선도하는 테슬라에 이어 폭스바겐까지 배터리 자체생산 확대를 선언함에 따라 ‘K배터리’ 위상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 와중에 LG와 SK는 배터리 기술 분쟁 해결은커녕 전선을 날로 확대하며 갈등을 키우고 있다.

폭스바겐, K배터리 의존도 줄인다

폭스바겐이 15일(현지시간) ‘파워 데이’란 행사에서 공개한 배터리 로드맵은 크게 세 가지다. 차종과 모델별로 각각 다른 배터리 유형을 ‘각형’으로 통일하고, 스웨덴 등 유럽에 6개 배터리 공장을 지어 전기차 300만 대에 탑재할 수 있는 연 240GWh 규모의 생산능력을 확보하기로 했다. 또 배터리 제조단가를 10년 내 최대 50% 낮추겠다고 공언했다. 모두가 한국 배터리 기업엔 부정적 영향을 주는 내용이란 평가다.

폭스바겐은 우선 각형의 ‘통합형 셀(Unified Cell)’을 개발해 2030년까지 자사 전기차의 80%에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각형은 중국 배터리 업체들이 강점을 보이는 분야다. 세계 1위 중국 CATL과 BYD가 각형 배터리를 주력으로 생산한다. 한국 업체들의 주력은 파우치형이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이 폭스바겐으로부터 수주한 배터리도 모두 파우치형이다. 삼성SDI가 각형 배터리를 일부 생산하지만 폭스바겐 수주 물량은 미미하다.
폭스바겐도 "전기차 배터리 직접 만들겠다"…비상 걸린 K배터리
폭스바겐이 짓겠다는 배터리 공장도 K배터리엔 위협이다. 폭스바겐의 첫 번째 공장은 스웨덴 배터리 기업 노스볼트와의 합작을 통해 2023년 가동된다. 노스볼트는 전날 140억달러(약 16조원)어치 배터리 수주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폭스바겐은 중국에선 배터리 기업 궈쉬안, 미국 전고체 배터리 업체 퀀텀스페이스 등에 지분을 투자했다. 나머지 5개 배터리 공장도 이들 기업과 합작해 건설할 것으로 업계는 예상한다.

폭스바겐이 배터리 가격을 최대 50% 낮추겠다고 밝힌 것도 악재다. 지금은 배터리 수요에 비해 공급이 크게 부족해 높은 가격에 구매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어떻게든 단가를 후려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폭스바겐 발표에 국내 배터리 기업 투자자들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16일 유가증권시장에서 LG에너지솔루션의 모기업 LG화학(-7.76%), SK이노베이션(-5.69%), 삼성SDI(-0.87%) 등 ‘배터리 3사’의 주가는 일제히 하락했다.

끝 안 보이는 LG·SK 배터리 분쟁

폭스바겐에 앞서 테슬라도 작년 9월 배터리 독립을 선언했다. 2022년까지 배터리 공장을 짓고 2023년 ‘반값 전기차’를 내놓겠다고 공언했다.

완성차 업체들의 이 같은 움직임은 배터리 기업과의 힘겨루기에서 중장기적으로 밀리지 않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자동차 배터리는 현재 ‘공급자 우위’ 시장이다.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간다. 안정적인 공급망 확보에 단기적인 사활이 걸려 있다.

폭스바겐도 "전기차 배터리 직접 만들겠다"…비상 걸린 K배터리
세계적 배터리 기업인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 간 기술 분쟁도 영향을 미쳤다. 두 회사 간 싸움으로 폭스바겐은 실질적 타격을 입었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SK 배터리에 대해 ‘미국 내 10년 수입금지’ 조치를 내리자 배터리를 공급받기로 한 폭스바겐은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수입금지 조치를 보류해 달라”고 미국 행정부에 요구했을 정도다.

완성차 업체의 배터리 독립이 속도를 내고 있는 와중에 배터리 분쟁은 더 격화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LG에너지솔루션이 미국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투자계획을 발표하고 사실관계를 왜곡했다”고 주장했다. LG에너지솔루션의 최근 5조원대 미국 투자 계획 발표와 조지아주 SK 공장 인수 가능성 언급 등을 들며 “분쟁의 목적이 SK를 미국에서 축출하고 LG의 독점적 지위를 구축하는 데 있음을 드러낸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시장 성장에 발맞춘 정당한 투자계획을 폄하하고 본질에서 벗어난 주장을 되풀이한다”고 반박했다.

안재광/최만수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