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켐스 여수공장
휴켐스 여수공장
반도체칩을 만들기 위해선 원료인 웨이퍼에 묻은 이물질을 제거하는 세정 공정이 필수적이다. 이때 반드시 필요한 화학물질이 질산(HNO3)이다. 질산은 산화작용을 통해 웨이퍼 표면을 매끄럽게 깎아주는 역할을 한다. 국내 질산 시장은 한 업체가 90% 이상을 공급하는 구조다. 태광실업의 정밀화학 자회사인 휴켐스다. 휴켐스는 코로나19 여파에도 독보적인 생산능력을 앞세워 견조한 영업이익률을 보이고 있다. 반도체 슈퍼사이클과 맞물려 수요가 급증하면서 향후 실적도 개선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국내 질산 사실상 전량 공급

'반도체 품귀'에 뒤에서 웃는 휴켐스
11일 화학업계에 따르면 휴켐스는 전남 여수산업단지에 조성하는 질산 6공장에 대한 기술 관련 업체 선정 및 설계를 마무리했다. 1500억원이 투자되는 신규 질산공장의 생산능력은 40만t가량으로 2024년 공장이 완공돼 가동에 들어가면 생산능력이 150만t으로 늘어난다. 아시아 최대 규모로 국내 시장에 필요한 질산을 전량 공급할 것으로 회사는 기대하고 있다.

정밀화학기업인 휴켐스는 2006년 태광실업이 남해화학으로부터 인수한 회사다. 휴켐스 지분 39.95%를 보유하고 있는 태광실업은 고(故) 박연차 회장이 창업했다. 지난해 박 회장 타계 후 장남인 박주환 기획조정실장이 새 회장에 선임됐다.

휴켐스는 화학업계에서 숨은 ‘알짜기업’으로 손꼽힌다. 휴켐스의 최근 몇 년 새 평균 영업이익률은 20%에 육박한다. 국내 화학업종의 평균 영업이익률(6.8%·2019년 기준)을 훨씬 웃도는 알짜기업이다.

휴켐스는 질산을 토대로 DNT, MNB, 초안을 생산한다. 질산에 톨루엔을 결합하면 DNT, 벤젠을 섞으면 MNB, 암모니아를 더하면 초안이 생성된다. DNT와 MNB는 자동차와 가구·건설 내장재로 쓰이는 폴리우레탄 재료로 활용된다. 초안은 반도체 세정제와 폭약제조에 쓰인다. 휴켐스는 한국바스프, ㈜한화, 한화케미칼, OCI 등과 장기공급 계약을 맺고 질산을 공급하고 있다. 휴켐스가 매년 두 자릿수 영업이익률을 꾸준히 낼 수 있는 비결이다.

올해 실적 대폭 개선 예상

독보적인 질산 생산능력을 갖췄지만 휴켐스도 약점은 있다. 경기에 민감한 반도체와 자동차 및 가구·건설 내장재가 질산 수요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화성이 높은 위험물질인 질산은 장기간 운반이 어려워 대부분 역내 수요에 의존한다. 실적이 국내 경기와 직결된다는 뜻이다. 2017년 21.3%에 달했던 영업이익률이 지난해 16.0%까지 줄어든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올 들어 코로나19가 진정세를 보이면서 질산 수요가 다시 치솟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반도체 수요 증가로 질산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휴켐스의 설명이다. 6공장 가동을 3년가량 앞두고 있는데도 각 업체들이 휴켐스와 신규 공장 물량에 대한 장기계약을 서두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휴켐스의 올해 실적을 견인하는 숨은 요인은 탄소배출권이다. 휴켐스는 연간 160만t의 탄소배출권을 보유하고 있다. 국내 단일 기업으로는 최대 수준이다. 2000년대 중반부터 저감 시설을 설치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여온 데 따른 것이다.

올해부터는 기업이 의무적으로 돈을 내고 구매하는 탄소배출권이 세 배 이상 증가하면서 배출권 가격도 오를 전망이다. 휴켐스가 탄소배출권 판매로만 수백억원의 매출을 거둘 수 있을 것으로 증권업계는 예상하고 있다. 신진용 휴켐스 대표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도 강화해 사회적 책임과 의무 이행에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