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CFO Insight] '금리냐, 금액이냐' 고민 깊어지는 CFO들
기아는 지난 3일 3000억원 규모 회사채를 발행했다. 지난달 말 수요예측에서 2조200억원의 매수주문이 쏟아졌지만 증권신고서에 적은 모집금액만큼만 발행하기로 확정했다. 발행한도를 6000억원까지 잡아놓은 것을 고려하면 이례적인 일이라는 평가다. 이 회사가 수요예측을 마친 뒤 채권 발행규모를 늘리지 않은 것은 2012년 수요예측 제도 도입 이후 처음이다.
기아가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은 조금이라도 낮은 금리로 회사채를 발행하기 위해서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사는 이번 채권을 모든 만기 구간에서 연 1%대로 발행했다. 3년물이 연 1.303%, 5년물이 연 1.714%, 7년물이 연 1.955%의 금리로 발행됐다. 창사 후 최저수준이다. 만약 기아가 발행금액을 늘려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로 주문을 낸 기관들도 채권을 받아간다면 이보다 발행금리가 상승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증액보다는 원하는 금리에 자금을 빌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셈”이라고 평가했다.
SK매직도 최근 기아와 같은 이유로 증액 없이 사전에 계획한 1500억원어치의 회사채만 발행하기로 했다. 이 회사 역시 수요예측에서 모집액의 7배가 넘는 1조700억원의 투자수요를 확보했음에도 조달금액 확대 대신 저렴한 금리를 택했다. 롯데푸드 역시 11.1대 1의 청약경쟁률을 기록하고도 처음 계획했던 대로 회사채시장에서 700억원만 조달했다. 기업 대부분이 수요예측에서 흥행한 뒤 채권 발행규모를 대폭 늘린 지난 1~2월과는 다른 분위기가 펼쳐지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의 배경엔 금리 변화가 있다. 올 들어 물량 확대 우려로 국고채 금리가 지속적으로 오르는 가운데서도 회사채 금리가 빠르게 하락하면서 기관들이 금리를 대폭 낮춰가면서까지 회사채 매수에 나서기 어려워진 것이다. 지난 4일 민간 채권평가사들이 시가평가한 3년 만기 AA-등급 회사채 평균금리는 연 1.354%로 같은 만기의 국고채와의 금리 격차가 0.319%포인트에 불과하다. 지난해 6월초 해도 0.777%포인트까지 벌어졌던 금리 격차가 빠른 속도로 좁혀지고 있다. 이제는 과거처럼 대규모 투자수요가 모였다고 해서 수요예측에 참여한 기관 대부분이 발행기업의 희망금리보다 낮은 금리로 주문한다고 장담할 수 없게 됐다. 조달금액 확대와 낮은 금리를 모두 잡기가 쉽지 않아졌다는 평가다.
CFO들로선 “유동성을 최대한 끌어모으는 게 우선”이라고만 고집할 수 없게 됐다. 일단 백신 보급 등으로 코로나19에 대한 공포가 차츰 진정되면서 곳간에 비상금을 대거 축적해놓아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경기 회복 신호와 함께 나타난 인플레이션 가능성으로 금리 상승 전망에 힘이 실리는 것도 변수다. ‘지금이 사상 최저금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조달금액보다는 조달비용이 CFO의 업적이 될 수 있는 시기인 셈이다. 대형 증권사 기업금융 담당임원은 “당분간은 얼마나 저렴하게 자금을 빌려올 수 있느냐가 기업 재무담당자들의 주요 관심사가 될 것”이라며 “기관들도 앞으로는 발행기업이 증액을 하지 않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회사채 매수전략을 짤 수 있다”고 말했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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