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서 노숙하며 양조 공부…내년 1호 K위스키 나옵니다"
문을 열면 시큼한 발효 냄새가 마스크를 뚫고 코로 들어온다. 309㎡ 규모의 증류소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것은 수십 개의 거대한 나무통들이다. 발효기, 증류기를 지나 눈길이 멈춘 한쪽 구석에는 위스키의 원재료인 보리가 한 무더기 쌓여 있다. 스코틀랜드의 증류소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주는 이곳은 경기 김포에 있는 싱글몰트 위스키 증류소 ‘김창수위스키증류소’다.

작년 10월 이 증류소를 만든 김창수 씨(36·사진)는 “다른 술은 다 국산이 있는데, 이렇게 술 좋아하는 나라에서 자국 위스키를 생산하지 않는다는 게 아쉽고 섭섭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28세에 회사를 그만두고 서울 강남·마포 지역의 유명 위스키 바 바텐더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는 “대학생 때부터 위스키를 즐겼다”며 “즐기는 것을 넘어 어느 순간 직접 만드는 꿈을 꾸게 됐다”고 했다.

김씨는 본격적으로 양조 공부를 하기 위해 2014년 자전거와 텐트만 들고 무작정 스코틀랜드로 떠났다. 경비를 아끼기 위해 노숙하며 약 4개월 동안 양조장 102곳을 전부 돌았다. 모든 증류소를 눈에 담고 온 저녁, 자축을 위해 찾은 위스키 바에서 일본의 치치부(秩父) 증류소 직원을 만났다.

김씨는 “오랜만에 만난 동양인이 반갑기도 해 먼저 말을 걸었더니 유명한 ‘벤처 위스키’를 만드는 곳의 직원이었다”며 “이것이 계기가 돼 치치부 증류소에서 연수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고 말했다. 치치부 증류소에서 양조를 배우고 온 김씨는 본격적으로 자신의 증류소를 열 준비를 시작했다. 서울 여의도에 작은 바를 잠시 열었던 것도 이 증류소를 열기 위한 발판이었다. 김씨는 “국내에서 위스키가 더 대중화되려면 과세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며 “지금은 질 좋은 위스키를 생산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말했다. 위스키에 붙는 세금은 종가세(가격에 비례해 과세) 방식인데 이를 종량세(양이나 도수에 비례해 과세)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종가세 체계에서는 값비싼 원재료를 사용하면 세금이 늘어나기 때문에 주류 고급화가 어렵다.

김씨는 “제조시설 규제도 만만찮은 벽”이라며 “원액 숙성용 나무통과 저장·제성조를 합친 총 용량이 2만5000L 이상이어야 제조 허가가 나온다”고 했다. 다양한 수제 맥주만큼 다양한 국산 위스키가 나오기 위해선 이런 규제부터 없어져야 한다는 게 김씨의 주장이다. 김창수위스키증류소에서 나오는 첫 위스키 제품은 1년의 숙성을 거쳐 내년 봄 맛볼 수 있다.

김남영 기자 ny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