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5대 은행에서 ‘갈 곳 잃은 돈’이 30조원가량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월간 기준 최대 증가세다. 국내 증시가 주춤하고 시장금리까지 꿈틀대면서 소비자들이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 시장에 진입하기 위한 대기 자금도 몰려들고 있다는 분석이다.

은행 요구불예금 한달새 30조 급증
3일 국민 신한 하나 우리 농협 등 5대 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말 이들 은행의 요구불예금(MMDA 포함) 잔액은 668조726억원으로 전월보다 30조2170억원 늘어났다. 코로나 사태 이후 요구불예금이 가장 많이 불어난 지난해 2월(26조1107억원)보다 증가 폭이 컸다. 앞서 지난 12월과 1월 사이에는 요구불예금이 9조9840억원 줄어들며 감소세로 돌아섰으나 다시 가파르게 상승하는 모양새다.

요구불예금이 급격하게 늘어난 것은 갈 곳을 잃은 ‘부동 자금’ 규모가 그만큼 커졌다는 방증이다. 지난 1월까지 주식시장이 활황을 보이면서 요구불예금은 줄어들고 증시로 자금이 몰렸다. 그러나 2월부터 국내 증시는 박스권에서 등락을 반복하고 있다. 시장금리도 최근 상승세로 돌아섰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백신 보급 이후 글로벌 경기가 좋아지면 금리가 더 오를 가능성이 상당하다”며 “유동성이 줄면 증시가 지금보다 더욱 약세로 돌아설 수 있다는 우려에 투자자들이 주저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비트코인 랠리’에 올라타기 위해 대기 중인 자금이 상당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주식시장이 횡보세로 접어든 이후 암호화폐 상승세가 두드러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암호화폐거래소인 업비트에서 비트코인 거래 대금은 19조8400억원에 달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암호화폐 실명 계좌 제도가 시행되면서 은행 계좌가 있어야 거래가 가능해졌다”며 “우선 은행 요구불예금에 자금을 뒀다가 추이를 보고 암호화폐로 갈아타려는 투자자도 많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5대 은행의 정기적금은 지난달 한 달 새 4조933억원이 빠져나갔다. 정기적금 잔액은 지난 2월 말 36조5555억원으로 전월 대비 4조933억원 줄었다. 지난해 12월(-1067억원), 지난 1월(-6722억원)보다 감소폭이 훨씬 컸다.

지난해 2월 하나은행이 출시한 ‘하나 더 적금’의 ‘만기 효과’가 컸다. 지난달 하나은행에서 정기적금 잔액 가운데 87%(3조5678억원)가 감소했다. 연 5%의 파격적인 금리를 내건 이 적금은 당시 은행 서버가 마비되고 총 137만 개가 판매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1년짜리 적금이어서 지난달 대부분 만기가 끝났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요즘 웬만한 고금리를 주지 않는 이상 고객들이 적금을 새로 가입하는 경우는 드물어졌다”고 설명했다.

정소람/오현아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