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양그룹의 지주회사인 삼양홀딩스는 지난달 26일 의약바이오 사업을 전문으로 하는 자회사인 삼양바이오팜을 전격 흡수합병하기로 결의했다. 시장에서 미처 예상하지 못한 결정이었다. 통상 바이오 업계에선 사업부를 떼내 자회사를 설립한 뒤 상장을 통해 몸집을 불려왔다. 더욱이 삼양바이오팜은 연간 100억원대 영업이익을 내는 알짜회사였다. 김윤 그룹 회장이 직접 경영을 챙길 정도로 애정도 많았다.

하지만 삼양그룹은 2011년 삼양사 의약사업부문에서 물적분할한 지 10년 만에 삼양바이오팜을 되레 합병하기로 했다. 대규모 투자가 시급한 상황에서 천천히 규모를 키우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봤다. 올해 그룹 창립 97주년을 맞아 바이오·헬스 분야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통해 새로운 100년을 주도할 핵심 사업을 키우겠다는 김 회장의 의지가 반영됐다는 설명이다.
삼양의 '100년 큰 그림'…화학 이어 바이오·헬스로 영토확장

바이오 등 대규모 투자계획

22일 재계에 따르면 삼양홀딩스는 삼양바이오팜 합병을 계기로 신약 개발과 해외 공장 증설 등 바이오·헬스 분야 등에 대한 대규모 투자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해외 업체 인수도 검토 중이다. 삼양홀딩스 관계자는 “중장기 투자에 필요한 재원을 안정적으로 조달하기 위해 삼양바이오팜 합병을 결정했다”며 “조만간 투자계획을 공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삼양바이오팜은 글로벌 생분해성 봉합사 원사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과 헝가리에 해외 법인도 잇달아 세웠다. 지난 10일엔 인도네시아 의료업체와 리프팅 실 공급계약을 맺는 등 동남아시아 시장 진출도 준비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글로벌 의약품 수탁개발생산(CDMO) 사업 확대를 위해 항암주사제 공장을 대전에 증설 중이다.

다만 삼양바이오팜이 독자적으로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기에는 자금력이 부족하다는 것이 시장의 평가다. 비상장사인 삼양바이오팜이 2019년 말 기준 보유한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243억원에 불과하다.

이번 합병은 김 회장의 강력한 의지에 따른 것이다. 김 회장은 그룹의 미래 동력으로 바이오·의약·헬스 분야를 육성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올해 신년사에서도 “그룹의 핵심 사업을 헬스 앤드 웰니스(health & wellness)와 친환경 분야로 옮겨가야 한다”고 말했다.

“새로운 100년 준비할 것”

삼양그룹의 모태는 창업주인 고(故) 수당 김연수 회장이 1924년 설립한 삼수사다. 농장 경영을 하던 삼수사는 1931년 사명을 삼양사로 변경한 뒤 방적 사업에 진출했다. 1939년 만주에 설립된 남만방적은 국내 기업이 최초로 세운 해외생산법인이었다. 1955년 제당 등 식품 사업에 진출한 데 이어 1960년대엔 화섬, 1980년대엔 화학 사업까지 보폭을 넓혔다.

삼양그룹이 바이오·헬스 분야에 진출한 건 1990년대다. 하지만 그룹의 주력 사업은 삼양사가 영위하는 식품·화학 분야다. 2004년 김 회장이 취임한 뒤에도 주력 사업의 비중은 변하지 않았다.

두 분야가 그룹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90%에 이른다. 이렇다보니 대부분의 소비자가 삼양그룹 하면 떠올리는 것이 식품 통합브랜드 큐원이다.

김 회장은 식품·화학에 이은 신사업을 육성해야만 그룹이 또 다른 100년을 영위할 수 있다고 봤다. 주력 회사인 삼양사는 최근 몇 년간 부진한 실적으로 성장이 정체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삼양사 매출은 2017년부터 몇 년째 2조원대 초반에 머물러 있다. 연간 영업이익도 1000억원 안팎 수준에 머물고 있다. 김 회장이 틈날 때마다 바이오 등 신사업 투자를 강조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김 회장은 식품·화학 등 기존 사업은 고부가가치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스페셜티 기술을 앞세워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이다. 화학산업의 핵심은 친환경 바이오플라스틱이다. 삼양그룹은 전북 군산에 연산 1만t 규모의 이소소르비드 공장을 올해 말까지 완공할 예정이다. 이소소르비드는 식물에서 추출한 전분을 가공해 만든 소재다.

그룹 관계자는 “창립 100주년을 맞는 2024년까지 바이오와 헬스 앤드 웰니스 분야에 대규모로 투자해 기반을 쌓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