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중앙은행이 협업해야" vs "지급결제제도는 한은 고유 기능"
빅테크 내부거래 외부청산 놓고도 "소비자 보호" vs "빅브라더"
전자거래 '청산' 뭐길래…금융위 vs 한은 충돌 전금법 쟁점은
전자금융거래법(전금법) 개정안을 둘러싼 금융위원회와 한국은행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양 기관은 전금법 개정안이 한은의 고유 기능을 침해하는지를 놓고 지난해부터 대립해 왔는데, 최근에는 개정안이 '빅브라더' 법안인지 아니면 소비자에게 득이 되는 법안인지가 핵심 쟁점으로 부상한 모습이다.

21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정무위원장인 더불어민주당 윤관석 의원이 대표 발의한 전금법 개정안이 지난 17일 정무위원회에 상정됐다.

개정안은 빅테크(대형 정보통신기업)·핀테크 등의 금융업 진출을 용이하게 함으로써 디지털 금융 혁신과 경쟁을 촉진하는 동시에 이들에 대한 관리·감독 및 이용자 보호 체계를 정비하는 포괄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이 가운데 금융위와 한은 의견이 충돌하는 부분은 전자지급거래청산업의 제도화, 빅테크 내부거래의 외부청산 의무화, 오픈뱅킹 제도화 등이다.

청산이란 거래에 따라 생기는 채권·채무관계를 계산해 서로 주고받을 금액을 확정하는 것을 뜻한다.

자금 이전을 지시하는 '지급'과 금융회사가 실제 자금을 주고받는 '결제'의 중간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특정한 날짜에 A은행 고객 3명이 B은행 고객들에게 총 100만원을 송금했고 B은행 고객 2명은 A은행 고객들에게 총 50만원을 송금했다고 치자. 청산 과정을 거치면 두 은행이 번거롭게 여러 번 돈을 주고받을 필요 없이 하루치를 정산해 50만원만 주고받으면 된다.

현재 청산 업무는 금융결제원이 수행하고 있다.

금융결제원이 소액결제시스템(금융공동망)을 통해 지급지시를 중계하고 금융기관 간 주고받을 차액을 확정하면, 한은이 거액결제시스템(각 금융기관이 한은에 개설한 당좌예금계정)을 통해 최종 결제하는 구조다.

◇ "지급결제제도는 한은 고유 기능" vs "정부-중앙은행이 협업해야"
전금법 개정안은 전자지급결제청산업을 제도화하고 금융위에 전자지급거래청산기관에 대한 허가 및 감독·제재 권한을 부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금융결제원은 허가를 받은 것으로 간주한다.

한은은 "금융위가 금융결제원을 전자지급거래청산기관으로 지정해 관리·감독하는 것은 중앙은행의 고유 기능인 지급결제제도 운영·관리 업무를 감독 당국이 통제한다는 뜻이고 중앙은행의 역할은 물론 중앙은행 제도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한국은행법은 다른 기관이 운영하는 지급결제제도에 대해서도 한국은행이 해당 운영기관 또는 감독기관에 운영기준 개선을 요청하거나 자료 제출을 요구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중앙은행의 결제리스크 관리를 기반으로 하는 청산업무를 지급결제제도에서 인위적으로 분리하기 어려우므로 개정안이 통과되면 한은과 금융위의 업무 충돌이 불가피하고, 지급결제시스템의 안전성도 저해될 우려가 있다고 한은은 지적한다.

반면 금융위는 개정안이 한은의 권한을 침해한다고 보기 어렵고, 제재 수단은 공적 기능에 대한 법적 책임성 확보를 위해 필요하다는 시각이다.

국회 정무위원회 이용준 수석전문위원은 개정안 검토보고서에서 "금융위는 지급결제제도는 정부·중앙은행·금융결제원 등 운영기관·은행 등 참가기관 등 간의 유기적인 협조가 필요한 금융시장의 핵심 인프라"라며 "빅테크 등 비은행기관이 차지하는 비중이 계속 증가하고 있어 지급결제제도의 안정적 관리를 위해서는 정부와 중앙은행의 협업이 더욱 중요하다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또 금융위는 이미 주무관청으로서 민법상 비영리기관인 금융결제원에 대해 검사·감독을 보유하고 있으며, 증권결제시스템을 운영하는 한국거래소, 예탁결제원에 대해서도 동일한 수준의 제재 권한을 갖고 있으므로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금융위는 개정안 부칙에 '금융결제원의 업무 중 한은이 결제기관으로서 청산대상업자의 결제 불이행 위험을 감축하는 장치를 마련한 업무에 대해서는 보고, 자료제출, 검사 대상 등에서 제외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는 점도 거론한다.

그러나 한은은 "기본적으로 금융위에 지급결제청산업 관할권을 주고 금융결제원 일부 감시 업무만 한은에 위임하겠다는 것"이라며 "금융위는 여전히 금융결제원에 대해 강력한 감독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 페이끼리 주고받는 축의금·상거래, 외부 청산기관 거쳐야 할까 "빅브라더" vs "소비자 보호"
금융위와 한은은 개정안이 빅테크의 내부거래에 대해 외부 전자지급거래청산을 거치도록 한 것을 두고도 상반된 시각을 나타내고 있다.

내부거래란 네이버페이, 카카오페이 등 한 기관에서 외부 은행으로 송금이 이뤄지는 게 아니라 해당 기관 내의 다른 이용자 계정으로 거래가 이뤄지는 것을 말한다.

카카오페이 이용자 A씨가 축의금 보내기 기능을 통해 다른 카카오페이 이용자인 B씨에게 보내는 식이다.

이러한 내부거래를 투명하게 관리하고, 기관 파산 시 등 필요할 때 예치금 주인을 제대로 찾아주려면 전자지급거래기관을 통해 거래 기록을 남길 필요가 있다는 게 외부청산 의무화의 취지다.

개정안은 이용자 예탁금을 외부에 예치 또는 신탁하고, 파산 시 이용자에게 우선 변제하도록 하는 조항을 담고 있는데 이것이 실효성 있게 작동하려면 외부청산이 필요하다고 금융위는 설명한다.

금융위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빅테크 3사(네이버파이낸셜·카카오페이·토스)를 통해 하루 1천400만건 이상의 간편결제·송금이 이뤄졌는데 이 중 66%인 약 930만건이 내부거래였다.

금융위는 "빅테크에 은행 수준의 규제를 적용하는 것보다는 외부청산을 하도록 하는 것이 금융혁신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소비자를 보호하는 최적의 방안"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한은은 "개정안이 통과되면 금융위가 금융결제원을 통해 네이버와 같은 빅테크 업체들의 모든 거래정보를 별다른 제한 없이 수집하게 된다"며 개정안이 '빅브라더법'에 해당한다고 지적한다.

개정안에 따르면 금융위는 "이용자 보호 또는 건전한 거래질서를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자료 제출을 요청할 수 있다.

한은은 또 빅테크 업체의 내부 회계처리로 종결되는 거래까지 청산 대상에 포함하는 것은 세계 어느 정부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이고, 파산 시 이용자 보호와 관련해서는 지급결제시스템을 건드리지 않고도 다른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금융위는 정부가 제한 없이 상시로 금융결제원이 가진 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니고, 지금도 은행 간 거래 등 수많은 거래 정보가 필요에 따라 금융결제원을 거치고 있다고 설명한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지난 19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빅브라더법이란 것은) 지나친 과장"이라며 "사건이 있을 때 금융당국이 법에 의해 자료를 받아 누가 자금의 주인인지를 보려는 것이지, 그걸 누가 매일 CCTV 보듯 보겠는가"라고 말했다.

금융위는 법안이 통과되면 빅테크가 도산했다거나 분식회계 등 사건·사고가 발생했을 때 자료 제출을 요청하는 방향으로 하위 규정을 마련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