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1년, 국가경쟁력을 다시 생각한다
(4) 국가의 역할은 어디까지인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재정지출
추가경정예산 네 차례 67조 편성
코로나 재정·금융지원 310조 달해

주요국, 재정 지출폭 줄이는데…
정부는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재정을 대거 풀고 있지만 경제 회복을 위해선 규제 완화 등의 조치가 병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아르바이트노동조합이 지난 17일 서울 명동거리에서 4차 재난지원금 선별 지급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는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재정을 대거 풀고 있지만 경제 회복을 위해선 규제 완화 등의 조치가 병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아르바이트노동조합이 지난 17일 서울 명동거리에서 4차 재난지원금 선별 지급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5월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국가 재정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경제 위기의 치료제이자 백신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민간 경제가 마비된 상태에서 정부가 전방위적 ‘해결사’로 나서야 한다는 얘기였다. 대통령의 지시는 전례 없는 재정 확대로 이어졌다. 정부는 1961년 이후 59년 만에 한 해 네 차례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했다. 총 67조원에 이르는 규모였다. 여기에는 사상 초유의 전 국민 현금 지원 사업도 포함됐다. 세금으로 만드는 재정일자리는 전년보다 70만 개 많은 154만 개였다.

재정뿐만이 아니다. 소상공인·중소기업 등을 대상으로 금융 지원도 100조원 넘게 이뤄졌다. 한국은행은 사상 처음으로 기업 회사채 등을 직접 매입하는 방식으로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정부가 코로나19 위기 대응에 퍼부은 재정·금융 지원은 310조원에 달한다. 지난해 명목 국내총생산(GDP) 1917조원의 16%에 이르는 수준이다.
경쟁하듯 돈 푸는 세계 각국
'큰정부' 만능주의…신산업 장벽 놔둔채 재정만 풀어 뉴딜 주도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정부 역할이 확대되는 것은 한국만의 얘기는 아니다. 국제통화기금(IMF) 조사에 따르면 주요 20개국(G20)이 지난해 코로나19 대응에 투입한 재정·유동성 지원 규모는 GDP 대비 16.7%에 이르렀다. 일본(44.0%), 이탈리아(42.3%), 독일(38.9%), 영국(32.4%) 등은 이 비율이 30%를 넘었다. 미국은 19.2%였다.

일본은 작년 4월 코로나19로 소득이 감소한 가구에 대한 현금 지원을 포함한 긴급 경제 대책에 39조5000억엔(약 414조원)을 퍼부었다. 유럽에서는 프랑스가 지난해 4월 1000억유로 규모의 경기 부양책을 발표하자 독일도 같은 해 6월 1300억유로의 대책을 내놨다. 미국 정부 역시 지난해 코로나19 대응에 네 차례에 걸쳐 3조7000억달러(약 4094조원)의 재정을 풀었다. 여기에 조 바이든 새 정부는 경기 부양에 1조9000억달러를 추가로 투입할 예정이다.

한국은 IMF 기준 GDP 대비 코로나19 정부 지원 규모가 13.6%였다. G20 국가 가운데 딱 중간인 10위다.
‘큰 정부’ 이어가는 한국
문제는 코로나19 위기 이후다. 전문가들은 위기 땐 정부가 재정·유동성 지원을 충분히 해야 하지만 코로나19가 진정되기 시작하면 국가 개입을 줄여 나가는 ‘정상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계속된 재정 확대로 나랏빚이 급속히 늘면 국가신용등급 하락 등 대외신인도 추락을 불러오고 미래 세대 부담이 커진다”고 지적했다. 과잉 유동성에 따른 인플레이션 우려도 커진다. 래리 서머스 미 하버드대 교수는 지난 5일 워싱턴포스트 칼럼에서 “대규모 경기 부양책이 계속되면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인플레이션 압력을 유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국가의 지속적인 시장 개입은 민간 경제를 구축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공공부문 일자리가 1% 늘어나면 민간 실업률은 2.1% 증가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세계 주요국 정부는 이런 지적을 감안해 올해부터 정상화를 모색하고 있다. IMF에 따르면 G20 국가의 작년 일반정부부채비율은 평균 15.6%포인트 뛰었다. 하지만 올해 증가폭은 1.8%포인트에 그칠 전망이다. 재정 확대 속도를 늦추기 때문이다. 최근 코로나19 백신 공급 등으로 세계 신규 확진자 수가 눈에 띄게 감소하는 점도 반영됐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딴판이다. 올해도 확장 재정을 고수한 탓에 본예산 기준 일반정부부채비율이 3.8%포인트 늘어난다. G20 평균의 두 배가 넘는다. 여기에 당정은 4월 재·보궐 선거 전에 4차 재난지원금 지급이 포함된 추가경정예산도 편성하기로 했다. 규모는 15조~30조원 수준이 될 전망이다. 이는 고스란히 나랏빚 증가로 이어진다.

올해가 끝이 아니다. 정부는 작년 9월 발표한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 2022~2024년 GDP 대비 재정 적자를 -5.6~-5.9%로 가져가겠다고 밝혔다. 작년(-6.1%)과 비슷한 규모다. 확장 재정 정책과 큰 정부를 일상화시키려 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신산업 육성도 정부 주도로
한국은행에 따르면 작년 설비투자는 전년 대비 6.8% 증가했다. 2019년(-7.5%) 부진과 비교하면 상당한 선전이었다. 비대면 경제 활성화로 반도체 수요가 크게 늘어난 영향이 컸다. 이는 코로나19 경제 위기 속에도 수요가 확대되는 분야를 잘 공략하면 경제가 회복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정부는 그런 차원에서 ‘한국판 뉴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코로나19 시대 각광받는 디지털 경제와 친환경산업을 집중 육성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사업마저도 정부 주도의 재정 확대에 치우쳐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작년 7월 2021~2025년 한국판 뉴딜 사업에 국가 재정 163조원을 쏟아붓겠다고 밝혔다. 정작 디지털 경제 성장을 가로막는 비대면 의료산업이나 빅데이터산업 규제를 개선하겠다는 얘기는 없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방향은 맞으나 방법론은 문제가 있다”며 “신산업 진입 장벽은 그대로 둔 채 재정만 대거 투입해서는 ‘뉴딜’이란 이름에 걸맞은 성과를 내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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