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 - 판매 부진의 늪 빠진 3사

벤츠·BMW, 르노·쌍용 제치고 지난달 판매 '톱5' 진입
국내 車시장 '현대차·기아·벤츠·BMW' 빅4 체제로

르노 영업점 방문 절반 급감…한국GM도 경쟁력 약화
라인업 부족·낮은 경쟁력·애매한 브랜드 이미지가 '발목'
중견 완성차 3사의 지난해 판매량이 처음으로 수입차 브랜드에 못 미치는 부진의 늪에 빠졌다. 지난해 11월 노동조합의 부분파업으로 생산라인이 멈춰선 르노삼성자동차의 부산공장.    르노삼성  제공

중견 완성차 3사의 지난해 판매량이 처음으로 수입차 브랜드에 못 미치는 부진의 늪에 빠졌다. 지난해 11월 노동조합의 부분파업으로 생산라인이 멈춰선 르노삼성자동차의 부산공장. 르노삼성 제공

지난 10일 서울 용산의 한 메르세데스벤츠 전시장. 점심시간이 되자 2층 규모의 전시장에 4~5팀이 줄지어 방문했다. 팀마다 딜러가 한 명씩 붙어 차량 소개부터 견적·시승까지 ‘맞춤형 코칭’을 해줬다. 한 딜러는 “주말에는 30팀 가까이 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같은 시간 인근의 한국GM 쉐보레, 르노삼성자동차, 쌍용자동차 대리점을 찾는 고객의 발길은 뚝 끊겼다. 점심시간은 물론 하루 내내 방문객이 한 명도 없을 때가 많다. 쌍용차 대리점 직원은 “최근에는 1주일에 한 대도 못 팔고 있다”며 “공장마저 멈춰서면서 재고가 있는 모델만 판매하고 있는 처지”라고 설명했다.
쌍용차, 1대도 못파는 매장 속출…중견 3사 판매, 수입차에도 밀려

벤츠·BMW, ‘빅5’ 진입
수입차 브랜드가 중견 완성차 3사의 자리를 넘보고 있다. 공격적인 신차 출시, 프리미엄 브랜드 이미지로 무장한 수입차들이 승승장구하는 사이 이들 3사는 판매 부진의 늪에 빠졌다.

16일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벤츠와 BMW는 각각 5918대, 5717대를 판매했다. 쌍용차(5648대)와 르노삼성차(3534대)를 제치고 현대자동차·기아, 한국GM에 이어 판매 ‘톱5’에 이름을 올렸다. 벤츠와 BMW가 동시에 톱5에 진입한 건 2018년 2월 후 처음이다. 업계에선 벤츠·BMW가 현대차·기아와 함께 ‘빅4 체제’를 굳힐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3위인 한국GM(6106대)과 두 수입차 브랜드의 격차는 200~400대에 불과하다. 벤츠·BMW가 언제든지 중견 3사를 제치고 3, 4위로 발돋움할 수 있다는 의미다.

수입차와 중견 3사의 판매량은 이미 뒤집히는 추세다. 지난해 수입차 판매량은 27만4859대로 중견 3사(26만6783대)를 처음으로 넘어섰다. 10년 전만 해도 중견 3사의 판매량은 수입차의 세 배를 넘었지만 판매 감소세가 이어지면서 결국 수입차에 따라잡혔다.
중견 3사, 왜 뒤처졌나
중견 3사가 뒤처진 배경은 복합적이다. 먼저 ‘부족한 제품 라인업’이 원인으로 꼽힌다. 한국GM과 르노삼성차는 각각 11종, 8종의 차량을 판매하고 있다. 월 판매량이 10대도 안 되는 차량을 제외하면 그마저도 9종, 5종으로 줄어든다. 벤츠(23종), BMW(51종)에 비해 제품 종류가 턱없이 적다. 한 차종만 판매량이 줄어도 전체가 타격을 입는 구조다. 쌍용차도 판매 차종이 티볼리, 코란도, 렉스턴, 렉스턴 스포츠 등 4종에 불과하다.

판매하고 있는 제품마저 다른 브랜드에 비해 품질·가격 면에서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견 3사는 지난해 일제히 트레일블레이저, XM3, 티볼리 에어 등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출시해 인기를 끌었지만 최근 들어 다른 브랜드의 동급 모델에 밀리는 모양새다. 기아 셀토스는 LFA(차로유지보조) 등 최첨단 옵션을 기본으로 적용했지만 가격대는 중견 3사 모델과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셀토스는 지난달 소형 SUV 중 유일하게 판매량이 전월 대비 증가했다. 최근에는 폭스바겐이 3000만원대 초반의 소형 SUV 티록을 내놓는 등 가격 경쟁력을 갖춘 수입차 모델도 늘고 있다.

브랜드 정체성이 모호하다는 것도 문제다. 벤츠와 BMW 등 수입차는 프리미엄 브랜드로 인식된다. 현대차는 고급차 브랜드인 제네시스부터 ‘디자인 혁신’을 보여준 아반떼까지 국내 1위 업체로서의 이미지를 확고히 다지고 있다. 기아는 K5, 스팅어 등을 통해 젊고 역동적인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반면 중견 3사는 마땅한 차별화 지점이 없는 탓에 ‘구매 프리미엄’이 사라졌다는 설명이다.

소비자는 구매 전부터 외국계 본사 철수를 걱정해야 할 처지다. 최근 아반떼를 구입한 김모씨(26)는 “XM3를 사려 했지만 본사가 한국에서 철수하면 당장 사후서비스(AS)부터 중고차 가격까지 걱정해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어서 구매를 포기했다”고 말했다.
“앞으로가 더 문제”
올해엔 중견 3사와 수입차 브랜드의 격차가 커질 전망이다. 이 같은 브랜드 이미지를 확 바꿀 신차 계획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올해 한국GM과 르노삼성차는 본사로부터 신차 물량을 배정받는 데 실패했다. 쌍용차는 자금난에 공장도 제대로 돌리지 못하고 있는 처지다. 이에 비해 수입차 브랜드는 갈수록 커지는 한국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연초부터 신차 출시에 나섰다. 벤츠는 7세대 S클래스를 시작으로 올해 9종의 신차를 내놓을 계획이다. BMW도 신형 4시리즈를 포함, 올해 신차 10종을 선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전기차·자율주행차 등 미래차 시대가 앞당겨지면 이 같은 현상이 심해질 것”이라며 “중견 3사가 살아남으려면 지금부터라도 안정적인 노사 관계를 바탕으로 연구개발(R&D)에 전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선아/도병욱 기자 su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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