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김선우 기자 naeej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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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을 자르거나 깎는 절삭공구 제조업체 와이지원의 창업자 송호근 회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워커홀릭’(일 중독자)이다. 평소 토요일과 일요일 등 주말은 물론 웬만한 연휴에도 사무실에 나가 업무를 챙기는 것을 거르지 않는다. 집에서도 항상 휴대폰과 태블릿을 곁에 두고 회사 일을 챙긴다. 그의 부인이 자신은 와이지원, 컴퓨터, 아이패드, 스마트폰에 이어 ‘다섯 번째 와이프’라고 푸념할 정도다.

‘열정’도 그를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수식어다. 창업 이듬해인 1982년 10월 첫 제품 개발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짐을 싸 해외 판로 개척에 나선 일화는 지금도 사내에서 회자한다. 크지 않은 체구의 그가 40㎏ 안팎의 공구 샘플을 가득 담은 가방을 들고 43일간 해외 23개 도시를 도는 강행군을 펼친 이유는 간단명료하다. “기업은 수출을 해야만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고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신념이다.

1983년 25만달러 규모의 첫 수출을 성사시킨 와이지원은 독일 일본 등 기계산업 강국에 차례로 깃발을 꽂으며 전 세계 엔드밀(금속 표면을 깎는 공구) 1위, 탭(나사를 가공하는 공구) 4위 업체로 우뚝 섰다. 지난해 회사 전체 매출의 70%가량을 수출에서 거둬들였다. 송 회장의 남은 목표는 하나다. “2035년 명실상부한 글로벌 1위 절삭공구 전문기업이 되겠습니다.”

국내 벤처 1세대

엔드밀과 탭, 드릴 등 절삭공구는 산업 필수품이다. 제조업계에선 “절삭공구가 없으면 항공기, 자동차, 전기전자 산업이 멈춰 선다”는 말이 나온다. 항공기 엔진 프로펠러를 비롯해 동체, 각종 무기,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데 절삭공구가 반드시 쓰이기 때문이다.

서울대 기계과를 졸업하긴 했지만 송 회장의 사회생활 초창기는 기계와는 거리가 멀었다. 대학 졸업 후 해외 유학을 준비하던 중 우연찮게 부친이 근무하던 태화그룹 회장의 권유로 뉴욕 지사에서 주재원 생활을 한 게 사회생활의 시작이었다. 절삭공구와의 인연은 우연히 시작됐다. 그가 1년9개월 동안 경험을 쌓고 한국으로 돌아왔을 당시 태화그룹은 절삭공구 시장에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송 회장에게 수출 업무가 주어졌다. 그는 단숨에 약 10만달러 규모의 절삭공구 주문을 따냈다. 송 회장이 절삭공구 시장의 잠재력을 인식한 순간이기도 했다.

회사가 납기를 맞추지 못해 납품을 포기한 게 그의 창업 동기가 됐다. “나라면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1981년 직접 양지원공구를 설립했다. 양지원은 ‘뜻을 기르는 동산’이라는 뜻이다. 이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과정에 ‘와이지원’으로 사명을 바꿨다. 양지의 영문 앞글자인 와이지(YG)에다 1을 붙였다. 1에는 ‘세계 1등이 되겠다’는 각오를 담았다. 송 회장은 국내 벤처 1세대로 손꼽힌다. 1980~1990년대 창업한 벤처 1세대는 20명이 채 안 된다. 지금껏 현장에서 뛰고 있는 기업인은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자신감으로 무장한 실행력

와이지원은 인천 본사를 비롯해 국내에만 5개 공장을 두고 있다. 해외에는 독일, 미국, 일본, 중국 등 13개국에서 생산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그만큼 챙겨야 할 일이 많고 결정해야 할 복잡한 사안도 수두룩하지만 송 회장은 주저하는 법이 없다. 그 스스로 “지르는 게 장점”이라고 말할 정도다.

“실패해도 배울 수 있으니까 일단 지르고 봅니다. 많이 실수할수록 배우는 것도 늘어나기 마련이지요. 일단 자동차 먼저 팔고 길 뚫는 고민은 나중에 하는 식이라고 할까요.(웃음)”

미련을 두지도 않는다. 여러 해외 지사를 거느린 만큼 시행착오도 많이 거쳤지만 ‘지나간 일에 대해선 후회하지 않는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일어나지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는 스타일도 아니라고 한다. 송 회장은 “과거는 히스토리, 미래는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미스터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걱정하며 불안해하기보단 현재를 즐기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라고 했다. 그는 “경영자는 실행력과 결단이 있어야 한다”며 “결혼도 선보고 하루 만에 결정했다”고 웃었다. 송 회장의 과감한 결정의 밑바탕에는 자신감이 깔려 있다. ‘무조건 할 수 있다’, ‘반드시 될 것이다’는 강한 긍정이다. 송 회장은 “한 분야에서 세계 1등을 하는 건 어렵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누구든 열심히 하면 정상에 설 수 있다”고 항상 직원들을 독려한다. 태화그룹의 미국 주재원 생활이 이런 자신감을 심어줬다. 타지에서 처음 홀로서기에 나선 당시 노력한 만큼 결실을 맺어 본 경험이 고스란히 자신감의 원천이 됐다.

“코로나19 때문에 불안해하는 직원들도 있고 저도 힘들 때가 있지만 자신감을 잃으면 안 되지 않겠습니까. 건강하기 위해서 꾸준히 운동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는 매일 아침 국내 공장 다섯 곳 중 세 곳을 걷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하루평균 걸음 수가 1만 보를 훨씬 웃돈다.

2035년 세계 1위 도전

와이지원은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이 투자한 회사로도 유명하다. 와이지원은 2012년 8월 세계 최대 절삭공구 업체 중 하나인 이스카(ISCAR)를 상대로 312억원 규모의 3자 배정 유상증자를 한다고 발표해 주목받았다. 이스카는 버핏의 벅셔해서웨이가 지분 80% 이상을 보유한 IMC의 대표 자회사 중 하나다.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IMC의 와이지원 지분율은 7.85%다.

당초 버핏은 이보다 1년 앞서 훨씬 큰 규모의 투자를 제안했다. 송 회장은 “관심은 고맙지만 사양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그는 “절삭공구 분야 세계 1위 기업으로 성장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사양한 이유를 에둘러 설명했다. 직접 그의 손으로 와이지원을 절삭공구 분야 글로벌 최고 기업으로 키워야 한다는 사명감에 거액의 투자는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얘기다. 와이지원은 2035년 매출 5조원을 올리며 세계 1위 절삭공구 업체로 거듭난다는 계획을 세웠다. 지난해 12월 인천 송도국제신도시 신사옥으로 본사를 이전한 게 새로운 출발점이다. 신사옥은 세계 19개국에 진출해 있는 총 29개 현지 공장과 해외 지사 영업망, 연구소 및 기술교육원을 통합 운영하는 전진기지다.

와이지원은 올해 창립 40주년을 맞았다. 송 회장은 “신사옥 이전은 세계 1위로 나아가는 첫걸음이란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2035년 전문적이고 다양한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는 글로벌 최고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목표를 향해서다.

■ 송호근 회장은

△1971년 서울고 졸업
△1976년 서울대 공과대학 졸업
△1977년 태화기계주식회사 입사
△1981년 양지원 공구 창업
△1988년 한국공구공업협동조합 이사(현)
△1994년 한국공작기계산업협회 이사(현)
△1997년 인천경영자총협회 부회장(현)
△2012년 한국무역협회 부회장(현)
△2012년 한국무역협회 출자법인 코엑스 사외이사
△2013년 중견기업연합회 부회장(전)


김병근 기자 bk1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