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때 한국의 미래 전략을 수립하기 위해 설립된 민관 공동기구 ‘중장기전략위원회’가 민간 자문기구로 쪼그라든다. 이에 따라 긴 호흡으로 미래 변화를 예측하고 선제적으로 미래 및 재정 전략을 수립할 수 있는 정부 역량이 크게 위축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장기간을 아우르는 국가 비전 없이 정부 정책이 부처별로 단기화·표피화하고 심한 경우 서로 충돌하는 사례가 증가할 것이란 전망도 제기된다.

9일 관련 부처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지난 5일 중장기전략위원회를 민간 자문기구로 바꾸는 내용 등을 담은 ‘중장기전략위원회 규정 전부 개정령안’을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은 ‘위원회에 기재부 장관, 교육부 장관, 고용노동부 장관 등 국무위원을 당연직 위원으로 둔다’는 기존 조항을 삭제했다. 대신 기재부 장관이 위촉한 위원장 1인과 20인 이내의 민간위원으로만 위원회를 구성하도록 했다.

위원회의 목적도 ‘국가 발전을 위한 중장기 전략의 수립, 원활한 재정정책의 수립·조정, 관계 중앙행정기관 간 협의가 필요한 사항에 대한 심의’에서 ‘기재부 장관의 자문’으로 축소됐다. 위원회의 위상이 ‘심의·조정기구’에서 ‘자문기구’로 낮아진 것이다.

기존에는 분기 개최가 원칙이던 회의 횟수도 반기별 개최로 바뀌었다.

과거 정부는 미래 흐름을 예측하고 국가 장기전략을 수립하려는 노력을 꾸준히 기울여왔다. 노무현 정부는 2030년까지의 장기 성장·복지 전략을 담은 ‘비전 2030’을 발표했다. 이명박 정부는 중장기전략위원회를 설립했고 박근혜 정부도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가 2014년 중장기전략위원회를 재가동했다. 하지만 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 중장기전략위원회는 2018년부터 작년까지 3년간 본회의를 단 한 차례도 열지 않아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로 방치돼 있었다.

다만 기재부 측은 "중장기전략위원회 기능을 축소하기보다 오히려 강화하기 위해 개편하려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민간위원들이 허심탄회하게 여러 정책 의견을 내면 추후 부처 간 협의를 통해 정책 반영 여부를 조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