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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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집값 상위 20%와 하위 20%간 차이가 역대 최대 수준으로 벌어지면서 자산 양극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이후 '소득주도성장'을 표방하며 '소득 양극화'를 해소하는데 정책 방점을 찍었지만 한쪽에선 '자산 양극화'가 더 크게 심화되는 양상이다. 상·하위간 소득 격차는 800만원 수준에 그치지만 집값 차이는 9억원에 달하기 때문이다. 저소득 하위 20%의 경우 사실상 무주택자가 다수인데다 고소득층의 경우 금융자산 비중이 많은 점을 감안하면 빈부 격차는 더 벌어질 전망이다.

소득 격차는 주춤하지만...

월평균 가계소득 5분위 배율 및 1·5분위 격차. 5분위 배율은 통계청 조사방법이 바뀐 2019년도 후 소폭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2017년도에 700만원 안팎 수준이던 1·5분위 격차는 2018년 이후로 통계작성법 적용 전이나 후나 대체로 800~900만원 사이를 오가고 있다. /그래프=신현보 한경닷컴 기자
월평균 가계소득 5분위 배율 및 1·5분위 격차. 5분위 배율은 통계청 조사방법이 바뀐 2019년도 후 소폭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2017년도에 700만원 안팎 수준이던 1·5분위 격차는 2018년 이후로 통계작성법 적용 전이나 후나 대체로 800~900만원 사이를 오가고 있다. /그래프=신현보 한경닷컴 기자
5일 한경닷컴 뉴스랩이 통계청 가계소득 동향을 분석한 결과, 최근 수년간 고소득자와 저소득자간 소득 격차는 크게 벌어지지 않고 주춤한 양상이다. 정부가 최근 가계 분배 지표가 개선됐다고 자평했던 점도 이 대목 때문이다.

가장 최신 통계치인 지난해 3분기 가계동향조사에서는 대표적인 분배 지표인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5분위 배율(상위 20%인 5분위의 평균 소득을 하위 20%인 1분위 평균 소득으로 나눈 값)은 4.88배를 기록했다. 우리나라 소득 상위 20%가 하위 20%보다 약 5배 가량 더 번다는 얘기다.

2017년 이 수치는 5.18배이었다. 그 사이에 통계 표본과 조사 방식이 바뀐 점을 감안하더라도 악화됐다고 보기는 힘들다는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소득 상위 20%와 하위 20%간 소득 차이도 2018년 후 대체로 800만~900만원 사이에서 머물고 있다. 고소득층의 소득이 크게 늘었지만 근로장려금, 아동수당 등 정부 보조금과 공공 일자리 영향으로 저소득층 가구의 소득도 늘어난 영향으로 풀이된다.

부동산 상·하위 20% 간 격차 사상 첫 9억원 돌파

전국 평균 주택가격 5분위 배율 및 1·5분위 비교. 지난 1월 전국 평균 주택가격의 상하위 20%간 격차는 9억원을 돌파하며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그래프=신현보 한경닷컴 기자
전국 평균 주택가격 5분위 배율 및 1·5분위 비교. 지난 1월 전국 평균 주택가격의 상하위 20%간 격차는 9억원을 돌파하며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그래프=신현보 한경닷컴 기자
문제는 자산 가격 차이가 극심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KB국민은행의 월간 주택가격동향조사에 따르면 전국 평균 주택 1분위(하위 20%)와 5분위(상위 20%)간 차이는 9억895만원으로 집계됐다. 집값 상하위간 차이가 9억원을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17년에는 지금의 절반 수준인 4억8653만원이었다. 그러다가 2018년 9월 처음으로 6억을 넘었고, 지난해 3월에는 7억, 8월에는 8억원을 넘어서면서 격차를 벌어졌다.

최근 집값 상승세 기간 동안 상대적으로 고가 주택 상승폭이 컸던 데 따른 영향이다. 전국 평균 주택가격의 5분위 배율은 8.7배로 2017년 5.1배보다 약 3.6배포인트 증가했다. 주택 소유주 중에서도 상위 20%는 하위 20%보다 9배 가량 비싼 집을 보유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와 별도로 자산 소득 5분위 배율도 계속 상승하는 추세다.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2017년도 당시 1·5분위 간 자산 격차는 7억674만원이었으나 작년에는 8억4425만원으로 20%(1억3751만원) 늘었다. 자산 5분위별 배율은 같은 기간 6.7에서 7.2로 커졌다.

"자산 양극화, 한번 극심해지면 돌이킬 수 없다"

정부는 출범 초기 소득주도성장을 표방하며 저소득층의 소득 증가를 꾀했다. 소비성향이 높은 이들의 가처분 소득을 늘리면 소비가 살아날 것으로 봤다.

하지만 오히려 가파른 집값 상승과 이어지는 전·월세 고공행진이 저소득층의 소비를 크게 위축시킨 것으로 분석된다. 최저임금 등을 늘려 저소득층 소득을 늘려주려 했지만 자산 양극화 속도가 더 빨랐던 것이다. 정부가 소득 양극화에 집중하다가 자산 양극화를 간과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자산 양극화가 장기적으로 사회에 미치는 충격은 소득 양극화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고 우려하고 있다. 한번 격차가 발생하면 간극을 좁히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소득 양극화는 경기가 좋아지거나 최저임금 정책, 노동권 강화 등을 통해서 비교적 쉽게 개선이 가능한 반면, 자산 양극화는 한번 극심해지면 돌이킬 수가 없다"며 "'열심히 일해봤자 무슨 소용인가'라는 인식이 팽배해지면서 생산성을 떨어트린다"고 지적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부동산 시장 안정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격차가 더 발생할 것"이라며 "정부는 시장경제 관점에서 자산 양극화를 해소를 위한 개선 방안 논의를 서둘러야한다"고 강조했다.

신현보 한경닷컴 기자 greaterf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