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기술(IT) 대기업 A사에서 공정 엔지니어로 근무하던 김모 책임은 지난해 경영지원실 인사팀 총무그룹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의 학부와 대학원 전공은 HR(인력관리)과 거리가 먼 화학공학. 김 책임은 “수시채용 도입 후 지원자의 직무 적합성을 검증할 각 분야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회사 방침에 따라 엔지니어들이 인사팀으로 배치되고 있다”고 전했다.

정기 공개채용이 사라지고 수시채용이 확산하면서 각 기업의 인사부서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통상 HR을 총괄하는 인사부서는 재무·기획과 함께 경영지원 직군의 ‘꽃’으로 불린다. 인적 구성도 인문계를 나와 공채로 입사한 ‘충성도 높은’ 사원들로 채워지는 게 보통이다. 웬만해선 외부 인력을 받아들이지 않는 순혈주의도 강했다.

하지만 수시채용으로 전환되면서 반도체 IT 등의 제조업을 영위하는 기업을 중심으로 엔지니어 등 현업 출신이 대거 영입되고 있다. 인사담당자들의 ‘실력’이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규모 공채 제도에서 인사팀은 주로 자기소개서 필터링, 시험 출제, 시험장 섭외, 면접 등의 역할을 맡았다. 수시채용 시대엔 채용 과정을 관리하는 역할보다 현업 부서와의 긴밀한 소통 능력이 더 중시되고 있다.

한 대기업 인사팀 관계자는 “현업 부서의 권한과 역할이 수시채용 제도에선 더 커지고 있지만, 채용 과정을 종합 관리·감독하는 최종 책임은 인사부가 진다”며 “기술적인 지식과 전문성 없이는 현업 부서에 휘둘릴 수 있다”고 말했다. 사업부와 해당 팀이 인력을 제대로 선발하고 있는지 검증하기 위해서도 일정 정도의 전문성을 갖춘 인사담당자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최근엔 신입사원이 바로 인사부서에서 일하는 사례도 점점 줄고 있다. 인력 충원이 필요하면 신입사원 대신 현업에서 근무하는 선임이나 책임급 엔지니어를 데려오는 일이 많아졌다.

대규모 정기 공채와 달리 수시채용 시대에는 인사팀의 ‘파워’도 예전같지 않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과거엔 현업 부서장들이 인력 충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인사팀 대리·과장에게 쩔쩔매기도 했지만, 요즘은 충실한 관리부서로서 위상이 재정립되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