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성용 단국대 교수
천성용 단국대 교수
■ 천성용 단국대 교수

‘모든 인간은 합리적으로 행동한다.’
이는 경제학의 주요 전제이다. 전통적인 경제학은 ‘합리적 인간’이라는 대전제 하에 주요 이론을 설명한다.

하지만 우리가 알다시피 인간은 그렇게 합리적이지 않다. 우리는 미리 주어진 정보에 영향을 받기도 하고, 어떤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때 그때 태도가 달라지기도 한다.

때문에 최근에는 기존의 경제학에 심리학 개념을 도입한 ‘행동경제학(Behavioral Economics)’ 분야가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행동경제학에 워낙 다양한 개념과 이론이 등장하지만, 그 중에서도 필자가 특별히 소개하고 싶은 개념은 ‘희망적 사고(Wishful thinking)’이다. 희망적 사고란 미래가 불확실한 사건에 대해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예측하지 않고, 내가 희망하는 대로 혹은 원하는 대로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예측하는 현상을 말한다.

가장 흔한 예로 우리는 월드컵 축구 경기에서 우리 국가대표 팀의 승률을 객관적인 승리 가능성 보다 높게 예측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사실 모든 스포츠 경기에서 자신이 사랑하는 팀을 응원할 때 자주 나타나는 현상이다. 중요한 정치인을 뽑는 선거에서도 내가 지지하는 후보의 당선 확률을 객관적 예측치보다 더 높게 예측한다.

희망적 사고는 때론 인간의 소소한 행복에 도움을 준다. 왠지 모를 희망적 사고는 우리의 지루한 일상을 활기차게 만들기도 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복권을 구매할 때 1등에 당첨될 확률이 매우 낮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복권을 살 경우 왠지 1등에 당첨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희망적 사고를 한다. 덕분에 우리는 잠시나마 행복한 상상에 가득한 일주일을 보낼 수 있다.

그런데 희망적 사고가 절대로 나타나지 말아야 할 곳이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사회의 ‘부정적 결과’에 대한 지나친 희망적 사고이다. 실제로 희망적 사고는 긍정적 결과 뿐만이 아니라 부정적 결과에 대해서도 발생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자연 재해나 질병의 가능성에 대해서 “나는 괜찮겠지, 설마 나한테도 그런 일이 일어나겠어”와 같은 희망적 사고를 종종 한다.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우리 사회에는 특히 ‘안전’에 대해 지나친 희망적 사고가 팽배해 있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 앞 골목길을 운전할 때 설마 어린 아이들이 갑자기 뛰어 나오겠어라는 생각에 자동차의 속도를 줄이지 않는다. 아직 초록불로 깜빡이는 횡단보도를 지날 때도 설마 사람들이 갑자기 건너겠어라는 생각에 정차하지 않고 무심코 지나간다. 심지어 신호등을 너무 정확히 지키는 운전자에게 답답하다며 핀잔을 주는 사람까지 있다.

이 외에도 안전에 대한 희망적 사고는 곳곳에 널려 있다. 더 이상 짐을 실으면 위험할 수 있는 화물차와 여객선에 설마 사고가 나겠어라는 생각에 과다 적재를 일상적으로 한다. 음주를 하고도 설마 오늘 음주 단속이 있겠어라는 생각에 용감하게 운전대를 잡는다. 어린 아이들의 안전벨트도 확인하지 않은 유치원 통학 버스가 설마 사고가 나겠어라는 생각에 빠르게 출발한다. 의심스러운 상처가 보이는 어린이를 보고도 설마 별일 있겠어라는 생각에 아동 학대 피해 어린이를 무심코 지나친다. 이처럼 안전에 대한 우리 사회의 지나친 희망적 사고는 매번 가슴 아픈 사고의 원인이 된다. 우리는 안타깝게도 이 때문에 이미 소중한 생명을 수 차례 잃었다.

일부 선진국에서는 아이들이 탑승한 스쿨버스를 추월조차 할 수 없다. 심지어 스쿨버스가 학생들의 승하차를 위해 길가에 정차하면 반대 쪽에서 오던 차들까지 반드시 정차해야 한다.
스쿨버스가 정차했을 때 반대편 자동차까지 정차한 모습 / 사진=GETTY STOCK IMAGES(PHOTO BY TOM CARTER)
스쿨버스가 정차했을 때 반대편 자동차까지 정차한 모습 / 사진=GETTY STOCK IMAGES(PHOTO BY TOM CARTER)
필자가 미국 연구년 생활동안 운전할 때 가장 무서운 것도 스쿨버스였다. 스쿨버스 규정에 익숙하지 않은 채 운전했다가 이 법규를 어기면 최소 수십만원의 벌금부터 면허 정지까지 각오해야 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전에는 미국이 과연 선진국이 맞나라는 생각도 몇차례 한 적이 있었다. 세계 최고의 도시 뉴욕조차 때로는 우리나라의 1980년대가 떠오를 만큼 낙후된 시설도 많았고, 너무 느리고 비효율적인 관공서의 행정 시스템에 답답한 적도 한두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어린이, 노인, 장애인 등과 같은 사회적 약자의 안전에 대해서만큼은 매우 확실한 우선순위와 시스템을 갖추었다는 것을 수차례 느꼈다. 유치원이나 동네 놀이터에서도 아이들의 안전은 항상 최우선 순위였다. 아이들이 무심코 안전을 지키지 않는 행동을 할 경우 평상 시엔 너무 자상한 유치원 선생님들도 아이들에게 매우 엄한 주의를 주었다. 장애인이 버스에 탑승할 경우 아무리 바쁜 시간에도 버스 운전 기사는 장애인의 안전을 지나칠 정도로 재확인한 후 운행을 시작하였다.

결국 어떤 사회를 선진국으로 만드는 것은 빠른 인터넷망과 높고 현대적인 건물의 유무가 아니었다. 함께 살아가는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가치를 확실하게 지키는 것, 그리고 이를 위해 오랜 기간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쌓아온 노력, 바로 그것이 선진국으로 가는 필수 조건이었다.

우리 나라의 경우 유치원 통학버스 차량 사고로 인해 이미 수많은 소중한 생명을 잃었다. 어린 아이들이 탑승한 차량에는 반드시 운전자 이외의 인솔자가 동행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를 지키지 않는 학원 차량들이 많다.

이른바 ‘세림이법’(13세 미만 어린이 통학 차량에 동승자 탑승을 의무화하는 법)이 2017년 1월부터 시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학원들은 예산 부족 등의 이유로, 혹은 설마 내가 걸리겠어라는 지나친 희망적 사고로 여전히 아이들을 위험에 노출한 채 운행하고 있다. 이렇게 느슨한 어린이 안전 제도가 유지되는 한 우리 사회의 불행한 사고는 그치지 않을 것이다.

최근 발생한 정인이 사건도 마찬가지이다. 가장 큰 잘못은 양부모에게 있음이 분명하지만, 우리 사회에 더 확실한 안전 장치가 마련되어 있었다면 최악의 비극만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필자 역시 어느덧 우리 사회의 모습에 책임을 져야할 기성 세대가 되어 이번 사건에 마음이 무척 무겁다. 이는 단지 한 두 사람만의 책임이 아닐 것이다. 경찰의 대응이 조금 개선된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다.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적어도 안전에 대해서는 희망적 사고를 철저히 버려야 하고, 이때 동반되는 불편함을 사회 구성원 모두가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시민 의식과 제도적 장치를 갖추어야 한다.

그렇다면, 과연 이 문제의 해결에도 마케팅 개념이 활용될 수 있을까. 필자의 개인적 의견이지만 이 경우 지불의 고통(pain of payment)이라는 개념을 적극 응용할 수 있다.

마케팅에서 지불의 고통은 우리가 어떤 제품을 구매하고 돈을 지불을 할 때 느끼는 ‘심리적 고통’을 의미한다. Prospect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기본적으로 같은 양의 ‘이익(gain)’을 좋아하는 정도에 비해 같은 양의 ‘손실(loss)’에 대해 더욱 가슴 아파한다. 다시 말해 같은 1000원이라고 하더라도, 1000원을 얻는 기쁨보다 1000원을 잃는 아픔이 더 크다.

지불의 고통은 실제로 우리의 소비에도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많은 학자들이 ‘신용카드’로 지불할 때보다 ‘현금(cash)’으로 지불할 때 사람들이 더 가슴 아프게 느낀다는 결과를 보고하였다.

왜냐하면 신용카드 결제는 일반적으로 한달 후에 여러 다른 비용과 합쳐 빠져나가기 때문에 구매 순간 지불의 고통을 느끼기 어렵지만, 현금으로 물건을 살 경우 당장 내 지갑에서 현금이 빠져나가는 것이 눈에 명확히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소비자들은 일부러 현금을 더 많이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적어도 지불의 고통 관점에서는 소비를 줄일 수 있는 현명한 전략이다.

이를 응용해 우리 사회의 안전 문제에도 개인이 느끼는 지불의 고통을 더욱 강화하는 정책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우선, 안전 사고와 관련된 처벌과 벌금을 지금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 현재 세림이법을 위반했을 경우 벌금은 고작 20만원 정도이다. 학원 운영자 입장에서 기껏해야 20만원 정도의 벌금이라면, 굳이 인건비 높은 동승자를 고용해야 할 경제적인 이유가 있을까 의심스럽다. 더군다나 경찰이 전국의 모든 학원 버스를 일일이 단속하기 어려운 현실적 사정까지 감안하면, 벌금 20만원에 대한 확률적 기댓값은 더욱 낮은 수준이다. 이는 ‘내가 단속될 리 없을거야’라는 희망적 사고를 적당히 눈 감아주는 정도라고 생각된다.

만약 벌금을 내야 할 경우 이를 즉각 현금으로 납부하게 하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일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 각종 벌과금을 신용카드로도 납부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심지어 할부 구매처럼 분할 납부까지 가능하다. 이는 국민의 편익 증진이라는 측면에서는 도움이 되겠지만, 지불의 고통은 완화시켜주는 부작용이 있다. 사회적 안전과 관련된 벌과금의 경우 신용카드 납부를 금지하는 정책을 도입하는 것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또한, 이와 함께 벌금 납부 기한을 최대한 짧게 설정할 필요가 있다. 이는 사회적 안전을 위반한 결과로 지불하는 비용의 심리적 고통을 더 눈에 띄게, 그리고 심리적으로 더 크게 만들 수 있는 전략이다. 한편, 이렇게까지 하는 것이 지나치다는 생각도 들지만, 우리 모두의 안전을 위해 한 번쯤 실험적으로 시도해볼 만한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선진국의 안전에 대한 높은 관심은 결코 시민의 자발적 참여와 선의에 의해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높은 시민 의식을 뒷받침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이 함께 도입되어야 하고, 희망적 사고지불의 고통과 같은 마케팅, 심리적 요인들도 적극 활용될 필요가 있다. 마케팅은 결코 기업의 이익에만 도움이 되는 학문이 아니다. 독자 여러분들도 마케팅을 통해 나의 인생, 그리고 우리 사회의 안전과 행복을 다시 한번 새롭게 바라보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