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노베이션이 헝가리 코마롬에서 가동 중인 전기차 배터리 공장 전경.  /SK이노베이션 제공
SK이노베이션이 헝가리 코마롬에서 가동 중인 전기차 배터리 공장 전경. /SK이노베이션 제공
유럽이 세계 전기자동차 배터리 시장의 패권을 둘러싼 한·중·일 업체의 격전지로 부상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이 헝가리에 역대 최대 규모의 공장 신설에 나선 가운데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도 잇따라 증설에 들어갈 계획이다. 중국과 일본 업체들도 공장 설립을 예고했다.

최대 전기차 시장으로 떠오른 유럽

증설…증설…유럽서 펼쳐지는 한·중·일 '배터리 삼국지'
29일 업계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 SK이노베이션 삼성SDI 등 국내 배터리 3사는 모두 올해 유럽 공장의 생산능력을 대폭 확대할 계획이다. SK가 먼저 청사진을 내놨다. SK는 이날 헝가리 이반차시에 30GWh(기가와트시) 규모의 배터리 공장을 신설한다고 밝혔다.

LG에너지솔루션도 폴란드 코비에르지체 공장의 생산능력을 현재 70GWh에서 100GWh로 확대할 예정이다. 전기차 약 200만 대에 공급할 수 있는 규모다. 삼성SDI도 헝가리 괴드 공장의 생산능력을 30GWh에서 40GWh로 늘릴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과 일본 배터리 기업들도 현지 공장 설립에 나섰다. 중국 CATL은 독일 에르푸르트 인근에 공장을 짓고 이르면 올 하반기부터 배터리 생산을 시작할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파나소닉은 노르웨이 에너지 기업과 손잡고 현지 생산을 검토하고 있다.

배터리 업체들이 앞다퉈 유럽 투자를 늘리는 까닭은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웨덴 시장조사업체 EV볼륨에 따르면 작년 유럽의 전기차 판매량은 전년 대비 137% 늘어난 139만5000대를 기록한 것으로 추정됐다. 11.8% 증가하는 데 그친 중국(133만7000대)을 제치고 세계 최대 시장으로 떠올랐다. 업계 관계자는 “유럽 각국이 환경 규제를 강화하고 폭스바겐 BMW 등 현지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 신모델을 출시하면서 시장 규모가 급격히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유럽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업체는 LG에너지솔루션으로 현지 시장 점유율은 70%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후발주자인 SK이노베이션과 CATL 등이 뛰어들며 치열한 수주전이 펼쳐질 것으로 예상된다.

치킨게임 들어가는 배터리 시장

지금까지 배터리 공장 투자는 ‘선(先)수주 후(後)증설’이 대세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기류가 바뀌면서 공장부터 짓는 업체들이 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의 헝가리 3공장도 마찬가지다.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유럽 시장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전략이다. 회사 관계자는 “완성차 업체들의 수주를 소화할 수 없을 정도로 배터리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다”고 말했다.

전기차 배터리 시장의 경쟁은 2000년대 중반 메모리 반도체 시장과 비슷한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배터리 시장 규모는 2025년 180조원으로 메모리 반도체(150조원)를 뛰어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최근 기술혁신 속도를 감안했을 때 반년만 투자가 뒤처져도 선두권 업체들을 따라갈 수 없는 상황”이라며 “반도체처럼 배터리 시장도 상위 7~8개 업체들의 과점 시장으로 재편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생산 규모를 늘려 원가 경쟁력을 높이고 대규모 물량 작전에 나서 상대를 고사시키는 ‘치킨게임 전략’이다.

최만수 기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