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걸음 더

'불씨'는 노예 아닌 관세였다
‘작은아씨들’에서 네 자매의 아버지는 한동안 전쟁터에서 돌아오지 않는다. 어머니는 아들 둘을 전쟁터로 보냈다가 잃었다는 다른 노인의 말을 듣고 눈시울을 붉히며 자신의 목도리를 풀어서 둘러 준다. 이 전쟁은 100만 명 넘게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미국 남북 전쟁이다. 노예 해방 전쟁으로 흔히 알려져 있지만, 이면에는 상이한 산업 구조와 관세 갈등 등 경제적 이유가 있다는 분석이 많다.

영화 배경이 된 1860년대 미국은 북부와 남부가 각기 다른 산업 구조를 갖고 있었다. 북부는 신흥 자본가들을 중심으로 빠르게 산업화를 진행했고, 남부는 대규모 농장과 노예를 소유한 귀족 중심의 농업이 주된 산업이었다. 여기에 미국 정부가 제조업 중심의 산업화 정책을 추진하면서 북부로 자본 투자가 몰렸다. 이 때문에 북부의 경제 성장 속도가 남부보다 훨씬 빨랐다.

남부 농장주들의 주된 수입 기반은 담배와 목화였다. 당시 영국 상류층에서 흡연 문화가 퍼지면서 담배 수요가 크게 늘자 남부의 대농장주들은 큰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조면기(목화씨를 빼는 기계)가 발명되면서 목화 수출 역시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노예 제도는 목화와 담배 농장 운영을 위한 기반이었다. 남부에서 노예 해방에 반대한 것도 이런 이유였다.

결정적인 문제는 관세였다. 수출입 물품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는 ‘모릴 관세법’을 계기로 남부의 불만이 커지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아도 남부가 내는 세금이 월등히 많았기 때문이다.

작은아씨들과 아버지를 '4년 생이별' 하게 한 남북전쟁

<그래프1>을 보면 1791년부터 1845년까지 남부가 낸 관세는 7억1000만달러였지만 북부가 낸 관세는 2억1000만달러에 불과했다. 반면 관세로 거둬들인 연방 예산은 북부에 배정된 비중이 네 배가량 많았다. 목화와 담배 수출을 주로 하면서 다른 생필품이나 사치품은 영국에서 수입해 사용하는 비중이 높던 남부는 관세 문제에 예민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남북은 4년에 걸쳐 치열하게 싸웠고, 남부의 패배로 끝을 내렸다. 산업 구조상 이기기 어려운 전쟁이었다는 해석이 많다. 노예를 모두 포함해도 북부 인구가 두 배 이상 많았고, 전력에서도 뒤졌다. 전쟁 무기 등을 제조하는 시설도 대부분 북부에 몰려 있었다.

‘작은아씨들’의 네 자매 아버지는 북군으로 전쟁에 참여했다. 그 덕에 승전고를 울리고 무사히 돌아온다. 그러나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작은아씨들’은 조금 더 행복한 유년을 보낼 수 있지 않았을까.

정소람 기자 ra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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