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균 국무총리가 28일 서울 목동의 한국예술인센터에서 열린 방송기자클럽 토론회에 참석해 물을 마시고 있다. 2021.1.28 [사진=연합뉴스]
정세균 국무총리가 28일 서울 목동의 한국예술인센터에서 열린 방송기자클럽 토론회에 참석해 물을 마시고 있다. 2021.1.28 [사진=연합뉴스]
정세균 국무총리(사진)는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 간의 2차전지 소송전에 대해 "낯부끄럽다"고 언급하며 조속한 해결을 촉구했다.

그간 양사 간 소송과 관련해 청와대 정책실장이 주재하는 5대 기업 정기 모임에서 조율이 이뤄진다는 이야기는 있었지만 정치권 언급은 자칫 부당한 압력으로 비칠 수 있어 공개적인 발언은 거의 없었다. 때문에 정세균 총리의 이번 발언은 무게감이 다르다는 분석이다.

"미국에서도 제발 좀 빨리 해결하라더라"

서울 여의도 LG 트윈타워 모습 [사진=연합뉴스]
서울 여의도 LG 트윈타워 모습 [사진=연합뉴스]
정세균 총리는 28일 서울 양천구 한국예술인센터에서 열린 방송기자클럽 토론회에 참석, 'SK와 LG가 배터리 특허를 놓고 해외에서 소송을 벌이고 있는데, 정부가 직접적으로 나설 의향이 있는지 궁금하다'는 질문에 "미국 정치권에서도 제발 좀 빨리 해결하라고 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LG와 SK, 대한민국의 대표 기업들이 3년째 소송 중이고 소송비용이 수천억원에 달한다고 한다"며 "경제적인 것뿐만 아니라 양사가 싸우면 남 좋은 일만 시키는 것으로, 남이 누군지는 제가 거론하지 않더라도 다 아실 것"이라고 했다.

정세균 총리가 말한 '남'은 중국과 일본 배터리 업체를 빗댄 것으로, 전기차 시대를 맞아 폭발적인 성장이 예상되는 배터리 시장에서 두 회사 간 소모적 다툼이 해외 라이벌 업체에만 득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특히 "제가 양사 최고 책임자와 연락도 해봤고 만났다"며 "좀 낯 부끄럽지 않느냐, 국민에게 이렇게 걱정을 끼쳐드리면 되느냐, 빨리 해결하시라고 권유했는데 아직 해결이 안 되고 있다"고 안타까워 했다.

이어 "양사가 나서 빨리 이 문제를 해결했으면 좋겠다"며 "K-배터리가 앞으로 미래가 크게 열릴 텐데 작은 파이를 놓고 싸우지 말고 큰 세계 시장을 향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상황을 빨리 만들었으면 한다"고 희망했다.

정세균 총리 발언, 막판 합의 영향 줄까

SK이노베이션 전기차 배터리 [사진=SK이노베이션 제공]
SK이노베이션 전기차 배터리 [사진=SK이노베이션 제공]
2019년 4월 LG화학이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미국국제무역위원회(ITC)에 영업비밀 침해 소송을 제기한 뒤 양사는 국내외에서 배터리 영업비밀, 특허를 두고 여러 분쟁을 벌이고 있다.

햇수로 3년차에 접어든 지금까지 정부나 정치권이 물밑에서 중재 역할을 한다고 알려지긴 했지만 정부 최고위 관계자가 공식적으로 합의를 촉구하는 발언을 한 것은 정세균 총리가 처음이다.

특히 양사 분쟁의 가장 핵심인 ITC 영업비밀 침해 소송의 결과가 나오는 시점(2월10일)을 코 앞에 두고, 국무총리의 이 같은 발언이 나와 양사의 막판 합의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LG에너지솔루션에 유리한 예비 판결이 나와있는 가운데 SK이노베이션의 영업비밀 침해 혐의가 최종 인정되면 미국 내 전기차 배터리 사업이 사실상 어려워진다. 이에 따라 미국 내에서도 여러 이해당사자들의 갑론을박이 이어져 왔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은 그간 "합의를 위한 대화의 문은 열려 있다"면서도 합의·배상금 규모나 SK이노베이션의 영업비밀 침해 여부를 둘러싸고 평행선을 달리며 번번이 합의에 실패했다. 또한 양사의 수위 높은 공방전도 계속됐다.

이날 정세균 총리의 발언이 전해진 후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은 일제히 원만한 합의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LG에너지솔루션은 "합의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경쟁사가 진정성을 갖고 문제 해결에 나선다면 언제든 대화의 문은 열려 있다"고 밝혔다.

SK이노베이션은 지동섭 배터리 사업 대표 명의의 입장문을 내고 "모든 소송 과정에 성실하게 임해왔음에도 원만하게 해결하지 못해 국민들께 매우 송구하다"며 "정세균 총리의 이날 우려 표명은 국민적인 바람이라고 엄중히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강경주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