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확산으로 전시회가 취소돼 설치하지 못한 전시부스 자재가 창고에 그대로 쌓여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코로나19 확산으로 전시회가 취소돼 설치하지 못한 전시부스 자재가 창고에 그대로 쌓여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어떻게든 버티려고 사무실도 뺐는데, 면허가 정지되면 회사 문을 닫을 수밖에 없어요.”

전시·컨벤션 등의 행사에 전시 부스와 무대 같은 장치물을 설계·시공하는 한 회사 대표는 지난 26일 이렇게 하소연했다. 설립 15년 가까운 회사가 졸지에 건설업 면허를 잃을 위기에 처했다는 것. 코로나19 사태로 행사가 줄줄이 취소돼 실적이 줄어든 탓이라고 사정을 설명해도 정부에선 “예외를 둘 수 없다”는 답변뿐이라며 답답해했다.

전시디자인설치업계 전체가 면허정지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자금 압박에다 밥줄과도 같은 면허까지 정지될 상황이 겹치면서 “어렵게 1년을 버틴 결과가 결국 폐업”이라는 탄식이 나온다.

마이스(MICE:기업회의·포상관광·컨벤션·전시회) 중 전시산업은 산업통상자원부 소관이다. 하지만 전시 부스와 무대 등 임시 구조물을 설계·시공하는 디자인설치 업종은 국토교통부의 관리·감독을 받는다. 건설산업기본법에 따라 디자인설치 회사는 매년 최소 자본금 1억5000만원, 전문기술인력 2인 이상 보유 등의 기준을 충족해야 실내건축공사업자 면허를 유지할 수 있다. 이 가운데 하나라도 미달하면 ‘3개월 면허정지’ 처분을 받는다. 이성우 한국전시디자인설치협회 사무국장은 “면허가 정지되면 일감이 들어와도 일체 공사를 할 수 없어 개점휴업 상태가 된다”고 설명했다.

전시 줄취소…설치대행사들 면허까지 날릴 판
전시디자인설치업계는 지난해 대규모 행사 취소로 연 1조원이 넘던 매출이 20~30%로 쪼그라들었다. 지난해 전국 16개 전시장에선 288건의 행사가 열렸다. 2019년 650건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2019년 1000여 건에 육박하던 정부·지방자치단체 등 공공 부문의 전시장치 관련 입찰은 지난해 90% 가까이 줄어 127건에 그쳤다. 그나마 열린 행사들은 규모가 줄거나 장치공사가 필요없는 온라인 행사로 대체돼 일감은 가뭄에 콩 나듯 했다.

한 전시디자인설치회사 관계자는 “디자인설치와 서비스 등 지원 업종은 각종 정부 정책과 지원에서 항상 찬밥 신세”라며 “지난해 정부가 전시업계 지원에 60억원을 투입했지만 대상을 전시장과 전시주최사로 한정해 디자인설치 업종은 단 한 푼의 직접 지원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자본금 기준 완화와 1년 단위인 면허갱신 기간을 3년으로 연장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지금 기준대로면 560여 개 디자인설치 회사 대부분이 한꺼번에 면허를 잃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국토교통부는 기술인력 기준만 한시적으로 예외를 허용하기로 했을 뿐, 자본금 기준 완화와 면허갱신 기간 연장은 “선례가 없다”며 난색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양은석 한국전시디자인설치협회 회장은 “디자인설치 회사 대부분이 종사자 10인 이하, 연매출 10억원 안팎의 영세한 중소기업”이라며 “건설업 자본금 기준 완화와 면허갱신 기간 연장은 기업 존속을 위한 최소한의 요구”라고 강조했다.

이선우 기자 seonwoo.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