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정위원장, 배민 교육장 방문 >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이 배달앱 배달의민족의 서울 석촌동 교육장을 방문해 회사 경영진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앞줄 왼쪽 두 번째부터 조 위원장, 김범준 우아한형제들 대표,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이사회 의장.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 공정위원장, 배민 교육장 방문 >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이 배달앱 배달의민족의 서울 석촌동 교육장을 방문해 회사 경영진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앞줄 왼쪽 두 번째부터 조 위원장, 김범준 우아한형제들 대표,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이사회 의장.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지난달 23일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 전원회의실에서는 공정위 조사관과 딜리버리히어로(DH·요기요 운영사) 측 변호사들 사이에 치열한 논리싸움이 벌어졌다. DH와 우아한형제들(배달의민족 운영사)이 합병하면 시장점유율이 95%를 넘어서는 가운데 네이버의 배달앱 시장 진출 가능성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DH는 “네이버가 이미 일본 1위 배달앱을 인수했고, 이를 바탕으로 국내 시장에 진입하면 95%의 점유율은 허물어진다”고 주장했다. 조사관들은 “네이버의 여력 등을 감안할 때 수년 내 진출은 없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위원들은 조사관들의 손을 들어주고 DH에 우아한형제들은 인수하되 요기요를 매각하도록 했다.

혁신 촉진 위한 M&A 규제 완화

인수합병(M&A)에 따른 시장 지배력 판단에서 잠재적 경쟁자까지 포함하기로 한 22일 공정위의 발표는 이 같은 공정위 판단과 배치되는 방향으로 고시를 개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고시가 개정된 이후 DH가 우아한형제들 인수와 관련된 합병 심사를 받았다면 결과가 달라졌을 수 있다. 심사 이전에 미처 생각지 못한 문제를 반영해 시대 흐름에 뒤처진 기준을 수정했다. 다만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경쟁 사업자를 인수하는 행위에 대한 심사는 강화한다”고 밝혀 잠재적 경쟁자 인정은 세밀한 검증을 통해 이뤄질 것임을 시사했다.

구조조정이 예상되는 항공·조선·기계 분야의 M&A는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합병의 경우 특별팀을 꾸려 소비자 피해 우려 등에 대해 점검하기로 했다.

벤처지주회사의 설립기준을 5000억원에서 300억원으로 낮추고, 벤처 자회사의 대기업집단 편입 유예기간을 7년에서 10년으로 완화한다. 중소기업 사업활동에 과도한 부담을 주는 규제도 손볼 예정이다. 항공기 없이 드론만 보유해도 항공촬영업을 할 수 있도록 규정을 완화한 게 대표적이다.

갑질 플랫폼에는 과징금 두 배 부과

네이버, 쿠팡 등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가 입점 업체와 소비자를 상대로 ‘갑질’을 하면 법 위반액의 두 배에 달하는 과징금을 물도록 규제를 강화하기로 했다. 관련 내용을 담은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 제정안’이 다음주 국회에 제출된다. 경쟁 플랫폼 업체에 입점을 금지한 불공정 계약서를 손보는 등 플랫폼 업체의 독점력 남용을 집중 감시할 계획이다. 플랫폼 사업자에게 소비자 보호 책임을 부여한 ‘전자상거래 소비자보호법’도 전면 개정해 이르면 이달 발표할 계획이다. 플랫폼 사업자의 법 위반 행위의 판단기준을 명확히 한 ‘온라인 플랫폼 분야 단독행위 심사지침’은 올 상반기 중 제정하기로 했다.

플랫폼 사업자가 입점업체에 각종 책임을 떠넘겨 소비자 피해를 방치하는 행위도 개선토록 했다. 온라인쇼핑몰 G마켓, 11번가 등 오픈마켓 업체는 현행 전자상거래법상 ‘통신판매중개업자’로 분류돼 계약 당사자가 아님을 고지하기만 하면 소비자 피해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았다.

“온라인 할인, 대리점 동의 필요”

대기업이 자사 제품을 온라인에서 할인 판매하는 것과 관련해 관련 대리점주를 보호하는 법 개정도 이뤄진다. 대기업은 온라인 판매 비중과 공급가를 정보공개서에 기재하고 대리점과 공유해야 한다. 본사의 온라인 판매 증가로 가맹점 매출이 떨어졌을 경우 위약금을 내지 않고 폐업할 수 있도록 표준가맹계약서도 바꾼다. 대리점에 공급하는 가격보다 더 낮은 가격으로 대기업이 온라인 제품 판매를 할 때에는 대리점 측에서 가격을 올릴 것을 요구할 권리가 생긴다.

다만 이 같은 규정은 온라인 판매가 늘고 있는 화장품과 가전, 가구 업체들에 불이익을 줄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비대면 거래가 대세가 된 것과도 역행한다. 화장품업계 관계자는 “불황으로 매출 유지를 위해 온라인 판매를 늘리고 있는 화장품 업체들이 어려움에 빠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지훈/민지혜 기자 liz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