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평가에서 한국을 최고 등급인 1등급으로 평가했다. 미국은 2등급, 일본과 중국은 3등급으로 평가했다. 무디스는 지난 18일 세계 144개국에 대한 ESG 평가 보고서를 발표했다. 무디스가 세계 국가들의 ESG 수준을 평가해 보고서를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보고서는 각국의 환경(E), 사회(S), 지배구조(G)를 평가한 뒤 각국의 ESG 요소가 국가신용등급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ESG 신용영향 점수(CIS)’를 산출했다. CIS는 최고 등급인 1등급부터 가장 낮은 5등급까지 5개 등급으로 나눴다.
한국은 환경과 사회 분야에서 2등급, 지배구조 분야에서 1등급을 받았다. 환경 분야에선 탄소전환, 기후변화, 수자원관리, 폐기물 및 공해, 자연자본 등 다섯 가지 세부항목에서 모두 2등급으로 평가됐다. 정부 관계자는 “이번 평가에서 환경 분야 1등급을 받은 국가는 없다”고 말했다.
사회 분야의 경우 교육, 보건 및 안전, 기본 서비스 접근성에서 모두 1등급을 받았지만 빠른 고령화 현상으로 인구 분야에서 낮은 평가를 받아 종합적으로 2등급을 받게 됐다.
지배구조는 제도, 정책 신뢰성 및 효과성, 투명성 및 정보공개, 예산관리 등 네 가지 세부항목에서 모두 1등급을 받았다.
ESG 각 요소를 종합적으로 반영한 CIS에서는 한국이 1등급으로 평가받았다. 무디스는 한국의 ESG 요소가 국가신용등급을 결정할 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봤다.
CIS 1등급을 받은 건 총 11개국이다. 한국 외에도 독일, 스위스, 뉴질랜드, 덴마크, 룩셈부르크, 스웨덴 등 모두 선진국이 받았다.
현대제철이 친환경 경영의 일환으로 발행한 녹색채권이 흥행에 성공했다.현대제철은 지난 18일 총 2500억원 규모의 녹색채권 발행에 대한 기관투자가 대상 수요 예측을 진행한 결과 예정 금액을 8배나 초과한 총 2조700억원이 몰렸다고 19일 밝혔다. 이에 따라 회사채 발행 규모를 5000억원으로 늘리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채권 발행은 현대자동차그룹 내에서 금융사를 제외하고는 현대제철이 처음이다.녹색채권은 환경·사회·지배구조 개선 등 사회적 책임투자를 목적으로 발행되는 ESG채권 중 하나다. 탄소감축·건물 에너지 효율화·신재생에너지·전기 자동차 등 친환경 활동과 신재생에너지 프로젝트 자금 지원 등 녹색산업과 관련한 용도로만 사용할 수 있다.현대제철은 채권의 목적에 맞춰 만기까지 조달금액 전부를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대규모 투자 및 기술개발 등 친환경 프로젝트에 투입할 예정이다. 현재 계획 중인 코크스 건식냉각설비(CDQ) 도입 및 배기가스 탈황 탈질 및 품질개선 작업도 조달자금을 사용한다.CDQ는 제철공정 중 석탄원료로부터 코크스를 생산한 후 냉각하는 설비다. 현대제철은 지금까지 냉각수를 이용한 습식냉각설비(CSQ)를 활용했지만 냉각 과정에서 발생하는 폐열을 활용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었다. 현대제철은 이를 건식냉각설비로 대체하면서 환경 리스크를 줄이고 에너지 효율까지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CDQ는 냉각가스를 순환시켜 수증기 배출을 억제하고 폐열도 회수할 수 있다.이번 녹색채권 발행을 위한 ESG 인증은 한국신용평가사가 진행했다. 현대제철은 평가 기준 가운데 최고인 GB1등급을 받았다. 한국신용평가는 “현대제철의 관리, 운영체계가 분명하게 정비돼 있고 투명성도 높다”며 “회사의 프로젝트 평가 및 선정 절차, 자금관리, 사후보고 및 공시, 회사의 환경 및 사회적 논란 등 녹색채권 관리체계가 국제자본시장협회(ICMA) 원칙에 모두 부합한다”고 평가했다.현대제철 관계자는 “전사적 차원에서 친환경 경영을 강화하고 있다”며 “ESG 채권 발행은 이 같은 회사 의지를 반영한 것”이라고 말했다.최만수 기자 bebop@hankyung.com
SK그룹은 2019년 초 “계열사 성과평가제도(KPI)에 사회적 가치(socail value) 창출액을 50% 반영하겠다”고 발표했다. 사회적 가치 창출은 SK가 추구하는 ‘바람직한 돈 버는 방식’이다. 매출과 이익이 아무리 늘어도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활동이 미흡하면 평가 시 ‘A’(우수)를 받을 수 없다는 강력한 메시지였다. ESG 활동 측정 위해 산식 개발19일 컨설팅업계에 따르면 SK는 각 계열사의 ESG 활동을 ‘금액화’해 평가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매출, 영업이익처럼 화폐 단위로 ESG를 측정한다. 금액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고, 실제 규모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ESG 전문가들은 “국내 기업들이 SK처럼 ESG 활동을 평가에 전면적으로 적용하지 못하는 주된 이유 중 하나는 누구나 공감할 만한 측정 방식이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국내 주요 기업이 경쟁적으로 ESG 활동을 강화하고 있지만, SK처럼 KPI 비중에 절반이나 반영한 곳은 없다는 점도 같은 이유에서다. SK 각 계열사는 이 같은 측정 방식에 근거해 사업 구조를 ESG 중심으로 바꾸기 위한 조직 개편과 인력 재배치 작업을 하고 있다. SK 관계자는 “말로만 ESG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평가 항목을 뜯어고친 것”이라며 “SK에선 ESG 활동을 못하면 경영을 못하는 기업인으로 간주된다”고 했다.SK의 구체적인 측정 방식은 이렇다. SK텔레콤은 내비게이션 앱 ‘T맵’이 안전 운전을 유도하고 사고율을 낮추는 데 기여한 것으로 보고 있다. SK는 이를 금액으로 산정하기 위해 산식을 개발했다. T맵 사용자와 미사용자 간 평균 사고율 차이를 구해야 한다. 손해보험사 통계치 기준 2019년 T맵 사용자 사고율은 4.91%였다. 미사용자 5.81%에 비해 크게 낮았다. 이 차이를 T맵 서비스 가입자 수(약 58만 명), 교통사고 피해 평균 처리비용(약 930만원) 등과 곱하면 금액이 산정된다.계산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SK텔레콤이 사고율 감소를 포함해 사람들의 삶의 질 개선에 기여한 것까지 수치화해 나온 값은 약 1618억원이었다. 이런 식으로 SK텔레콤이 환경 분야에선 오염 물질 배출을 얼마나 줄였는지, 협력사와 동반 성장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등을 금액으로 산정했다. SK텔레콤은 2019년 총 1조8709억원어치에 해당하는 사회적 가치를 창출한 것으로 나타났다.일각에선 이 같은 측정 방식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자의적이고, 정교하지 않은 데다 모든 사람의 눈높이를 충족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SK그룹의 ESG 강화 방침에 대한 의지는 확고하다. 다소 부정확해도 방향성이 맞다면 강력하게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측정→평가→지원이 핵심SK가 ESG를 평가에 넣은 것은 최태원 회장의 강력한 의지 때문이었다. 시작은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 회장은 1998년 SK그룹 회장에 오른 뒤 회사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재정립하는 작업을 했다. 그 결과가 2004년 발표한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행복 극대화’란 지향 가치다. 기존의 ‘이윤 극대화’에서 주주, 직원, 협력사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만족시키기는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최 회장이 본격적으로 사회적 가치란 용어를 쓴 것은 2012년께다. 사회적 기업에 대한 대대적 지원을 결정하면서다. 당시 사회성과인센티브(SPC)란 것도 도입했다. 사회적 기업은 매출, 이익 같은 일반 기업에 적용하는 숫자로 평가하기 어려우니 이들을 위한 별도 측정 도구를 개발한 것이다. 이를 토대로 인센티브를 차등적으로 줬다.2018년에는 SPC를 응용, SK 각 계열사에도 적용했다. 사회적 기업처럼 SK 계열사들도 사회적 가치를 많이 창출하면 인센티브를 차등적으로 줬다. SK가 KPI에 50% 비율로 사회적 가치 창출을 반영할 수 있었던 것도 사회적 기업에 대한 지원 노하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SK의 ESG 강화 노력은 젊은 층의 인식 개선에도 기여했다. 자유기업원이 작년 11월 26일~12월 11일 전국 대학생 100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38.6%가 SK(주)를 ESG 우수 기업으로 꼽았다. 국내 대기업 중 가장 높은 비율이었다.안재광/이선아 기자 ahnjk@hankyung.com
기업의 매출과 자산, 부채 등이 빼곡히 기록된 재무제표. 앞으로 여기에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정보가 추가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국제회계 표준인 ‘IFRS’를 제정한 국제회계기준위원회(IASB)가 ESG 지표의 표준화를 추진하고 있어서다.19일 회계학계에 따르면 IASB는 최근 대형 회계법인과 학회 등에 SSB(지속가능성 표준위원회) 설립과 관련한 의향서를 보냈다. 올해 상반기 새로운 단체인 SSB를 출범시켜 새로운 ESG 회계 표준을 제정한다는 것이 골자다.IASB는 세계 회계 기준인 IFRS를 제정한 국제 회계단체다. 한국 기업들도 2011년부터 IFRS에 따라 재무제표를 작성하고 있다. 회계학계는 IASB의 제안을 반대할 곳이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회계법인과 학계의 영역을 넓힐 수 있어서다. 이미 영국의 옥스퍼드대는 SSB 설립을 돕겠다는 답변서를 IASB의 하위조직인 IFRS파운데이션 측에 전달했다. 국내에선 삼정회계법인이 이 같은 추세에 발맞춰 새로운 ESG 감사 방안을 준비 중이다. 기존 지속가능경영보고서 감사보다 정량정보 기준을 높이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지금까지 기업들은 자율적으로 공시 여부를 선택할 수 있는 지속가능보고서를 통해 ESG 관련 정보를 공개했다. 유엔환경계획(UNEP) 산하 자문기구이자 비영리단체(NGO)인 글로벌리포팅이니셔티브(GRI)와 미국의 지속가능회계기준위원회(SASB)의 표준을 쓰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자체적인 기준으로 보고서를 작성한 곳도 적지 않았다. 기준이 제각각이다 보니 같은 기업들의 ESG 성과를 비교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IASB는 SSB의 기준이 표준으로 자리 잡으면 글로벌 기업의 ESG 점수 비교가 용이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기업들은 이런 변화에 긴장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다. 공시 의무가 없었던 온실가스 감축, 노사관계 등 민감한 정보를 올려야 해서다. 경쟁사와 동일선상에서 ESG 점수를 비교당한다는 점도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한 기업 관계자는 “앞으로는 자체 검사 등으로 ESG 정보를 꾸며내는 게 불가능해진다”며 “미리 사업장 환경기준을 높이는 등 변화가 예상된다”고 말했다.이수빈 기자 ls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