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미래 먹거리' 파운드리 추격 가시밭길

TSMC, 올해 62% 늘려 280억弗 투자…격차 확대 나서
국가적 지원·오너 리더십 등 앞세워 또 '퀀텀 점프' 예고

삼성, 규제리스크로 '시스템반도체 생태계' 구축 무산 위기
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업체 대만 TSMC가 올해 설비투자(CAPEX)에 역대 최고 수준인 30조원을 쏟아붓는다. 삼성전자 파운드리 투자액(10조원)의 세 배 수준이다. 최신 기술투자와 극자외선(EUV) 장비 도입 등을 통해 세계 2위 삼성전자와의 격차를 더 벌리겠다는 의도다. 경쟁사들의 견제와 사법 리스크 등에 발목 잡힌 삼성전자로선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시장 예상 뛰어넘은 ‘통 큰 투자’
TSMC, 30조 투자로 '독주 체제'…삼성은 사법 리스크에 '발목'

15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TSMC는 지난 14일 열린 2020년 4분기 실적설명회에서 올해 설비투자액 전망치를 최대 280억달러로 제시했다. 원화로 환산했을 때 30조원에 달하는 역대 최고 금액이다. 작년(172억달러)보다 62.8% 증가한 수치로 시장 컨센서스(전망치 평균)인 190억달러보다도 47.4% 많은 액수가 발표되자 시장에선 “TSMC가 확고한 시장 우위 전략을 밝혔다”는 평가가 나온다.

TSMC는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 업체)의 주문을 받아 반도체를 생산해 납품하는 것을 주요 사업으로 한다. 파운드리업계에선 선폭(트랜지스터 게이트의 폭)을 좁혀 초미세·저전력·고효율 반도체를 생산하는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기술 수준은 선폭 5㎚(나노미터, 1㎚=10억분의 1m) 정도까지 좁혔는데 이 공정이 가능한 업체는 TSMC와 삼성전자 두 곳뿐이다.

공정 개발을 위해선 EUV로 회로를 새기는 네덜란드 ASML의 노광장비와 대규모 기술투자가 필요하다. TSMC는 현재 세계 1위(2020년 기준 54%) 파운드리업체지만 삼성전자(17%)의 거센 추격을 받고 있다. TSMC는 올해 10조원으로 예상되는 삼성전자 파운드리 투자금액의 세 배에 달하는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격차를 벌리겠다는 계획이다.
삼성전자 가시밭길 예고
삼성전자는 향후 파운드리 시장에서 TSMC와 힘든 경쟁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적인 반도체 공급 부족 현상으로 올해 파운드리 물량은 채웠지만 내년 이후가 걱정이다.

시장 상황도 TSMC에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인텔의 유력한 파운드리 파트너로 TSMC가 꼽히고 있다. 로이터는 “인텔이 GPU(그래픽처리장치)부터 TSMC에 맡기고 2023년 이후엔 CPU(중앙처리장치) 물량도 넘길 것”이라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인텔이 경쟁사인 삼성전자를 견제하기 위해 TSMC 쪽으로 기울었다고 보고 있다.

대만 시스템 반도체 산업 생태계가 점점 굳건해지는 것도 삼성전자엔 부담이다. 대만 정부는 지난해 ‘대만반도체연구센터’란 국가기관을 출범시키고 차세대 반도체 등과 관련해 팹리스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 9월 키스 크라크 미국 국무부 경제담당 차관이 대만을 방문했을 땐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모리스 창 전 TSMC 회장(창업주)을 만찬에 초대하고 만남을 주선하는 등 정부 차원의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대만 업체들의 ‘강력한 오너십’도 강점으로 꼽힌다. TSMC 지분 0.48%를 보유한 창 전 회장은 2018년 공식 은퇴했지만 막후에서 대규모 투자 결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법 리스크 현실화 때 충격 클 것
삼성전자의 상황은 녹록지 않다. 파운드리 분야에선 대만 업체들과 어느 정도 경쟁이 가능하지만 전방산업인 팹리스와 후방산업인 ‘패키징’(칩을 전자기기에 넣을 수 있게 가공하는 사업) 역량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시스템 반도체 사업은 ‘팹리스-파운드리-패키징’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각 분야에서 기술력이 뛰어난 업체가 함께 있어야 수주 가능성이 높아진다.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에 따르면 글로벌 팹리스 시장의 국가별 점유율(2019년)은 대만이 17%, 한국은 1%로 집계됐다. 패키징 시장에서도 대만 업체들은 1위(ASE), 4위(SPIL), 5위(파워텍)를 기록 중인데 한국 업체는 한 곳도 없다.

‘2030년 시스템 반도체 세계 1위’를 선언하고 133조원 투자계획을 발표할 정도로 반도체 사업에 적극적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생태계 조성에 대한 의지가 굳건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이 부회장의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할 경우 투자 계획은 물론 생태계 조성도 물 건너갈 것이란 위기감이 반도체업계에 상당하다.

반도체 사업 경영진을 상시적인 형사처벌 위험에 노출시키는 중대재해법 같은 규제법도 부담 요인으로 꼽힌다. 삼성전자는 경기 용인, 평택, 화성 등에 대규모 반도체 사업장을 운영 중이다. 평택엔 2~3공장을 건설 중이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법 조문의 위험방지 의무가 추상적이고 불명확하기 때문에 사업주가 완벽히 준수하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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