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이 올 상반기 유통 부문 5개 회사를 합병한다. 하나로마트의 판매 효율성을 높이고 불필요한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서다. 농협은 이를 통해 이마트·홈플러스·롯데마트 등 대형마트 3사와의 경쟁을 본격 시작한다는 계획이다.

이성희 농협중앙회장(사진)은 12일 기자와 만나 “올해 상반기까지 유통 부문 5개 회사의 합병 작업을 마무리할 예정”이라며 “농산물 구매 부문을 일원화한 데 이어 판매 부문도 통합해 유통 단계를 줄이겠다”고 말했다.

매출 5조원 통합회사 탄생

농협, 유통조직 통합…"마트 빅3와 경쟁"
농협경제지주 산하에서 지역별 하나로마트를 운영하는 회사들이 합병 대상이다. 농협하나로유통, 농협유통, 농협대전유통, 농협충북유통, 농협부산경남유통 등 5개 회사다.

각 회사는 하나로마트 출점 과정에서 지역별로 설립됐다. 마트를 운영하며 농산물 판매·마케팅 등 비슷한 업무를 하는데도 별도 회사로 운영돼 비효율이 크다는 게 농협중앙회의 판단이다. 특히 농협하나로유통 외에는 직접 농산물을 사들일 권한이 없어 유통 단계가 복잡해지는 원인이 됐다는 설명이다.

합병은 주력 계열사인 농협하나로유통이나 농협유통 가운데 한 곳을 중심으로 계열사 지분을 통합하는 방식으로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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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장은 이런 합병 작업을 위한 사전 포석으로 통상 농협경제지주 임원의 퇴임 직전 자리로 여겨졌던 각 유통회사 대표에 계속 일할 수 있는 젊은 인재를 배치하는 방안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통합 유통회사 매출 규모는 5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2019년 기준으로 하나로유통은 3조1195억원의 매출을 거둬 합병 대상 5개 자회사 중 외형이 가장 컸다. 22개 하나로마트를 운영하는 농협유통은 1조1907억원의 매출을 올려 두 번째 규모였다. 나머지 계열사 세 곳은 매출이 각각 1000억원대였다.

업계에선 이들 5개 유통 계열사가 통합 시너지를 바탕으로 사업을 확장하면 대형 유통업체인 홈플러스(7조3002억원) 롯데마트(6조3306억원) 등과 본격적인 경쟁을 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두 번째 도전, 성공할까

농협 유통 계열사의 통합은 2016년부터 추진돼왔다. 당시 컨설팅 기업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는 농협 유통 계열사를 통합하면 신용카드 수수료, 정보기술(IT) 시스템 운영·구축, 상품, 마케팅, 구매 등 분야에서 5년간 454억원의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유통회사 간 급여 차이 등으로 인한 노조 반발, 인력 재배치의 어려움 등 난관에 부딪쳐 성과를 내지 못했다.

농협은 이 같은 점을 고려해 이번 통합 추진과정에서는 각 계열사 구성원과 노조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듣고 소통하겠다는 계획이다. 농협 관계자는 “경제지주가 각 계열사에 관련 내용을 설명하는 자리를 마련할 것”이라며 “계열사 의견을 적극 수용해 타협점을 찾겠다”고 말했다.

이 회장이 리더십을 발휘해 농협 유통 계열사 통합에 성공하면 취임 직후부터 추진하고 있는 농산물 유통 혁신에도 힘이 실릴 전망이다. 이 회장은 농산물 유통 단계를 줄여 농민과 소비자에게 모두 이익이 되는 방향의 유통 혁신을 추진하고 있다.

이 회장은 지난해 말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2023년까지 전국 당일배송 체계를 확립해 국내 농산물 유통시장에서 농협의 점유율을 50%까지 끌어올리겠다”며 유통 혁신 의지를 강조했다.

일각에선 유통 계열사 합병이 완료되더라도 농협의 판매 부문 통합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한계로 지적한다. 농협중앙회 소속이 아닌 지역농협 소속 하나로마트 2000여 곳은 합병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마케팅 효과 및 판매 극대화를 위해선 지역농협 소속의 소규모 하나로마트까지 아우르는 통합 유통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