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형 감사원장 "고용·건강보험 걱정"…원전 이어 감사 예고
정부가 2025년 전 국민 고용보험 도입 및 건강보험 보장을 확대하는 이른바 ‘문재인 케어’를 강화하고 있는 가운데 최재형 감사원장(사진)이 이들 기금의 건전성을 우려하며 감사를 예고하고 나섰다. 감사원장이 지난해 ‘월성 1호기 조기폐쇄 타당성 감사’에 이어 현 정부의 핵심 정책에 대한 감사를 예고하자 관가에서는 진의 파악에 주력하는 한편 후폭풍을 우려하는 분위기다.

최재형 감사원장 "고용·건강보험 걱정"…원전 이어 감사 예고
최 원장은 지난 4일 신년사에서 “국가재정이 건전하고 효율적으로 운용되도록 점검·보완하겠다”며 “장기적 재정 관리가 필요한 고용보험기금과 건강보험 등에 대해서는 건전성 위협 요인을 깊이 있게 분석하고 적절하게 예측, 관리해 나갈 수 있도록 보완하는 데 힘쓸 것”이라고 했다.

“고용보험기금, 장기 재정 관리 필요”

감사원이 고용보험기금을 ‘감사 대상 1호’로 선정한 데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실업급여 지출이 급증한 데다 고용보험 적용 대상 확대 정책에 따라 기금 건전성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고용보험 적용 대상은 지난해 12월 예술인을 시작으로 오는 7월 보험설계사, 대리운전기사 등 14개 직종의 특수고용직 종사자에 이어 내년 플랫폼 노동 종사자, 이후 자영업자까지 지속적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하지만 정부가 지난달 발표한 로드맵에는 적용 대상별 ‘시간표’만 있을 뿐 실제 적용 시 기금 사정이 어떻게 될지에 대한 시뮬레이션은 거의 없다.

고용보험기금 실업급여 계정은 이미 사실상 고갈 상태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실업급여 계정 적립금은 2018년 5조5201억원에서 2019년 4조1374억원, 2020년 2조6830억원(9월 말 기준)으로 줄었고, 올해는 2조8022억원에 그칠 전망이다. 보험료 수입에서 지출을 뺀 재정수지는 지난해 -1조4544억원을 기록했으나 올해는 1192억원 흑자로 전망됐다.

그러나 이는 공공자금관리기금(공자기금)에서 빌려온 돈을 감안한 수지로, 이를 제외하면 실제로는 지난해 9월 말 기준 4조7371억원 적자가 났고 올해도 2조3744억원 적자가 예상된다는 게 예산정책처의 설명이다.

특고 종사자에 국한된 시뮬레이션이지만 정부 연구기관의 재정추계 전망도 밝지 않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7월 특고 고용보험이 시행되면 5년차인 2025년에 176억원의 적자가 날 것으로 전망됐다. 하지만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는 “고용보험 적용 확대와 재정건전성은 별개”라는 입장이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고용보험기금은 다른 사회보험과 달리 평상시 적립했다가 비상시에 지출이 급증하는 특성이 있다”면서도 “하지만 복수사업장 보험료 징수 시스템, 이직률 실태조사 등 정교한 시뮬레이션 없이 실업급여 지급 대상만 늘리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최재형 감사원장 "고용·건강보험 걱정"…원전 이어 감사 예고

지난해 건보 적자 ‘역대 최대’ 가능성

건강보험 재정에도 ‘빨간불’이 들어왔다. 급속한 고령화로 의료비 지출 증가 속도가 빠른 데다 문재인 케어가 더해져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문재인 케어 효과로 가격이 비싼 자기공명영상(MRI)·초음파 검사, 상급종합병원 입원 등 의료 서비스 문턱이 낮아져 관련 건보 지출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1~2017년 줄곧 흑자를 기록한 건보는 문재인 케어가 본격화된 2018년 1778억원 적자로 돌아섰다. 2019년 적자는 2조8243억원으로 역대 최대였다. 지난해에도 1~3분기에만 2조6294억원 적자를 기록해 연간 최대 기록을 갈아치울 가능성이 크다.

이런 탓에 2017년 말 20조7733억원에 달했던 건보 적립금은 작년 3분기 기준 15조1418억원까지 줄었다. 이런 추세라면 3~4년 뒤 적립금이 고갈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예산정책처는 건보 적립금이 2023년 7000억원으로 쪼그라들고 이듬해 소진될 것으로 내다봤다. 감사원이 올해 건보 재정을 들여다보겠다고 밝힌 배경으로 풀이된다.

적립금이 고갈되면 건강보험급여 지급에 차질을 빚고 의료 공백 사태까지 벌어질 수 있다.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한 해법은 건보료 인상밖에 없다. 홍석철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국민 반발을 감안하면 보험료를 급격히 올리는 건 어렵고 의료비 지출을 적절히 제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모든 의료 서비스에 건보 혜택을 주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정하고 적정 의료 보장을 추구하는 쪽으로 정책 목표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승현/서민준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