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정치권이 “제발 경제계의 목소리도 들어달라”는 호소를 외면한 채 노동계·시민단체 의견이 대거 반영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법) 처리를 강행하자 경제계는 충격과 좌절에 빠졌다. 중소기업중앙회 등 16개 중소기업단체는 7일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역시 “유감스럽고, 참담함과 좌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는 입장을 냈다.
경제계 마지막 호소까지 걷어찬 국회, 中企 "분노·좌절…한국 떠날 일만 남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여야가 합의한 중대재해법은 경제계의 ‘사업주 처벌의 하한제 폐지’ ‘사업주가 지켜야 할 의무규정 구체화와 일부 면책’ 등 요구를 모두 거부했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이 마지막까지 “사업주 처벌 조항의 하한만이라도 상한으로 바꿔달라”고 호소했지만 이 또한 수용하지 않았다.

중소기업 단체들은 이날 논평에서 “만약 이대로 법이 시행된다면 원·하청 구조 등으로 현장의 접점에 있는 중소기업은 당장 범법자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에 늘 시달려야 한다”며 “코로나 사태로 직원들을 지켜낼 힘조차 없는 상황에서 사업의 존폐를 심각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남은 입법 과정에서라도 사업주 징역 하한규정을 상한규정으로 바꾸고, 사업주 처벌을 ‘반복적인 사망재해’로 한정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아울러 “50인 이상 중소기업도 산업안전 실태의 열악함을 고려해 최소 2년 이상 준비 시간을 줘야 한다”고 요청했다.

유예제도 역시 현장에선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다. 한 중소기업인은 “원청 업체가 50인 미만 근로자의 하청 업체를 쓰다가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3년 유예가 사실상 의미가 없다”며 “하청 업체 역시 1년 안에 준비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도 논평을 내고 “중대재해법은 우리 경제와 기업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법률임과 동시에 명확성 원칙, 책임주의 원칙 등 법 원칙에 위배될 소지가 큰 법률임에도 충분한 논의 시간을 두지 않고 성급히 처리됐다”고 지적했다.

산업 현장에 있는 기업인들의 반발은 더욱 거세다. 수도권 제조업체 700여 곳을 회원으로 둔 한 중소기업협동조합 이사장은 이날 중대재해법이 국회 법사위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했다는 소식을 듣고 “코로나 사태만 잠잠해지면 국내 사업을 접고 베트남으로 이전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일자리를 창출하는 기업을 죄인 취급하는 나라에 더 이상 있을 필요가 없다”며 “주변 중소기업 대표들도 대부분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 건설플랜트업체 사장은 “중대재해법에 따른 절차를 따르느라 시간과 인건비가 두 배 가까이 늘어나게 됐다”며 “원청 업체에 대한 처벌 부담으로 대기업의 하도급 물량도 대폭 감소할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중대재해 발생 시 뒤따르는 막대한 벌금과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에 변호사 선임 비용 등으로 중소기업의 비용 부담은 상당히 커질 전망이다. 양옥석 중기중앙회 인력정책실장은 “중대재해법의 모태가 된 영국 법인과실치사법 역시 시행 후 처벌받은 기업의 50%가 파산한 것으로 조사됐다”며 “앞으로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기업 파산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많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중대재해법 제정 반대 청원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국내 선두권 간판업체를 20년간 운영해왔다고 밝힌 60대 한 기업인은 청원에서 “중대재해법이 통과되면 사업을 계속할 수 없을 것”이라며 “이 법 때문에 어떤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고, 어떤 기업이 도산하게 되는지 고려해달라”고 촉구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