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의 새해 첫 대규모 투자는 수소 기술 확보였다. 미국 수소 전문기업 플러그파워에 1조6000억원을 투자, 지분 9.9%를 취득해 최대주주가 된다. 반도체, 통신, 정유가 주력사업인 SK가 낯선 신사업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제 막 시장 창출 단계인 수소 에너지 산업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선도적으로 투자에 나섰다는 게 시장의 평가다.
SK, 올 첫 투자는 '수소 에너지'…글로벌 그린시장 영토 넓힌다

수소 신기술 확보…“주도권 잡자”

7일 SK가 투자하기로 한 플러그파워는 매출만 보면 중소기업이다. 2019년 2억3000만달러(약 2500억원)의 매출을 거뒀고, 작년에는 3억달러(약 3300억원)를 기록한 것으로 추산된다. 그럼에도 기업가치는 약 16조원(작년 말 시가총액 기준)에 달한다. 투자자들이 수소기술을 상용화한 세계적으로도 드문 플러그파워의 성장성에 주목한 결과다.

플러그파워의 핵심기술은 자동차 연료전지(PEMFC) 분야와 관련돼 있다. PEMFC는 전류 밀도가 큰 고출력 연료전지다. 큰 힘이 필요한 다양한 산업에 에너지원으로 이용될 수 있다. 플러그파워는 이 연료전지 기술을 활용해 수소 지게차를 생산, 미국 아마존과 월마트 등에 공급한다. 미국 수소 지게차 시장에서 독보적 입지를 점유하고 있다. 최근에는 수소 트럭, 수소 드론, 수소 발전 등으로 활용 범위를 확대하는 중이다.

플러그파워는 ‘그린수소’ 생산에 필요한 설비 기술도 보유하고 있다. 지금은 정유·제철공장에서 부산물로 나오는 것을 활용하는 ‘부생수소’, 천연가스를 개질해 얻는 ‘블루수소’ 등이 주로 활용된다.

그린수소는 생산 방식이 전혀 다르다. 물에 강한 전기를 흘려주면 수소가 떨어져 나오는데, 이 수소를 모아서 얻는다. 생산 과정 중 탄소가 전혀 배출되지 않기 때문에 그린수소로 불린다. 플러그파워는 그린수소 생산에 반드시 필요한 전해조 제조기술을 보유하고 있어 주목받고 있다.

플러그파워는 올 하반기 미국 뉴욕에 1.5GW 규모의 세계 최대 연료전지 생산 공장을 짓는다. 플러그파워의 핵심 기술을 총동원해 기존 생산 방식 대비 원가를 크게 떨어뜨릴 방침이다.

중국, 베트남 등에도 진출

SK는 플러그파워의 수소 기술을 활용해 국내뿐 아니라 아시아 시장에서도 수소 에너지 생태계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SK는 지난달 SK(주), SK이노베이션, SK E&S 등 계열사가 협업하는 구조로 ‘수소 사업 추진단’을 구성했다. 그룹 내 관련 사업을 하는 계열사들이 시너지를 내 수소 사업에서 성과를 내라는 최태원 SK 회장의 의지가 담겼다. 수소 생산과 유통사업에 관한 밑그림도 이때 나왔다.

하지만 핵심인 연료전지 기술, 그린수소 생산 등은 장기 과제로 남겨놨다. 그룹 내에서 이 기술을 가진 곳이 없다. SK는 플러그파워의 기술을 활용해 정부의 수소 생태계 구축 사업에 적극 참여한다. 수소 연료 전지 시스템, 수소 충전소, 전해조 등을 공동으로 개발하고 공급할 계획이다.

중국 베트남 등 SK그룹이 이미 진출해 있는 해외 시장에서도 수소 에너지 시장 진출을 추진한다. 이를 위해 SK와 플러그파워는 내년 중 합작법인(JV)을 설립하는 데 합의했다. 앤디 마시 플러그파워 최고경영자(CEO)는 “SK와의 JV를 통해 적극적으로 아시아 수소 에너지 시장을 공략하기로 했다”며 “2024년부터 본격적으로 수익을 창출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