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운성 씨유박스 사장이 자사의 ‘셀프체크인 키오스크’ 옆에서 새로운 도약을 다짐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남운성 씨유박스 사장이 자사의 ‘셀프체크인 키오스크’ 옆에서 새로운 도약을 다짐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기록적인 장마가 이어지던 지난해 7월 얼굴인식 보안 전문기업 씨유박스(CUBOX)의 남운성 사장(51)에게도 짙은 먹구름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국내 공항들이 자동출입국 심사대 발주 계획을 전면 취소하면서다. 코로나19 사태로 하늘길이 막힌 공항이 사실상 셧다운에 들어가자 예산 집행을 미룬 탓이었다. 매출 대부분을 안정적인 공공발주 물량에 의존하던 씨유박스로선 존립을 위협받는 상황이었다.

씨유박스는 최첨단 인공지능(AI) 기반의 알고리즘 기술력으로 국내 공공 분야 얼굴인식 시스템 시장을 100% 장악한 업체다. 국내 공항과 항만의 얼굴인식 출입국 심사대엔 모두 씨유박스 제품이 설치돼 있다. 독보적인 기술력을 바탕으로 승승장구하던 차에 코로나19가 발목을 잡았다.

남 사장은 당황했다. 말레이시아를 상대로 2019년부터 준비했던 키오스크와 자동출입국 심사대 수출사업도 성사 단계에서 막혔다. 회사 창립 이래 가장 큰 1200억원 규모의 수출계약 건이었다.

문득 10년 전 아픈 기억이 스쳤다. 교육용 소프트웨어업체를 운영하다가 성공의 문턱에서 고배를 마셨던 때다. 회사는 공중분해되고 수억원의 채무를 떠안은 채 한동안 신용불량자로 살았다. 그는 닥치는 대로 일하며 버텼다.

“고민만 한다고 해결되는 일은 없습니다. 무엇이든 부딪히고 누구든 만나다 보면 해결책이 나온다는 사실을 부도를 극복하며 배웠죠.”

매출 끊겨도 'R&D 열정'…안면인식 테스트, 네이버·카카오도 제쳤다
남 사장은 좌고우면하지 않고 돌파구를 찾는 데 주력했다. 일단 공항을 제외한 공공건물의 출입통제 시스템 등 비주력 분야 매출을 높이는 데 드라이브를 걸었다. 수십억원을 쏟아부어야 하는 연구개발(R&D) 투자도 이어갔다. 남 사장은 “어차피 글로벌 무대에서 승부를 걸려면 기술 개발은 멈출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씨유박스는 올해 재도약 꿈에 부풀어 있다. 지난해 말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가 시행한 안면인식 테스트(FRVT)에서 글로벌 24위에 오르는 성과를 거뒀다. 네이버 카카오 등도 참여한 테스트에서 국내 기업 가운데 최고 순위를 기록했다.

비대면 시스템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얼굴인식 기술의 활용 범위가 확대되는 점도 호재다. 씨유박스는 지난해 폐지된 공인인증서 제도를 대체할 얼굴인식 인증 사업을 새로운 먹거리로 삼고 있다. 비대면 본인인증에 활용되는 사설 인증 수단인 DID(분산신원인증), 재택근무에 많이 쓰이는 VDI(데스크톱 가상화) 솔루션 등도 폭발적인 성장 조짐을 보이고 있다.

국내외 공항들 역시 사용 연한이 만료된 자동출입국 심사대의 전면 교체를 미룰 수 없는 상황이다. 씨유박스는 차세대 시스템으로 꼽히는 ‘원아이디(One-ID)’ 솔루션 개발을 마쳤다. 여권과 본인의 얼굴을 최초 한 번 등록해 공항 내 여러 절차를 단축하는 기술이다. 원아이디 시장이 가세하면서 공항 자동출입국 심사대 시장 규모는 지난해 2억6000만달러에서 2023년엔 4억7000만달러로 확대될 전망이다.

남 사장은 “AI 얼굴인식 기술을 기반으로 기업가치가 1조원에 달하는 글로벌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이정선 기자 leeway@hankyung.com